영화

하트의 전쟁(Hart's War, 2002)

Whitman Park 2022. 2. 17. 10:05

영화 포스터를 보면 <하트의 전쟁(Hart's War)>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전쟁영화 같지만, 실은 '하트'라는 도련님(미 상원의원 자제)이 2차 대전 때 서부전선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포로수용소에서 명예와 용기, 의무, 희생이라는 고귀한 덕목을 배우게 되었다는 성장소설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포로수용소 안에서의 인종차별과 군사재판이 또 다른 주제를 이루고 있어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사고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고, 다른 하나는 4천억원 대북 송금 건으로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까지 연 뒤라 사건 추이가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

노르만디 상륙작전 성공 후 파죽지세로 독일로 진격하던 연합군은 1944년 12월 독일군의 반격에 직면한다. 바로 벨기에 아르덴느 숲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공방전이다. 대대본부에서 행정장교로 복무하던 하트 중위(콜린 파렐)는 장군에게 전할 축배용 샴페인 박스를 지프에 싣고 가다가 매복한 독일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당시 독일군이 미군으로 변장하고 실정을 모르는 미군 장병들을 공격한 것은 많은 영화에서 다루었던 유명한 일화이다.)

하트는 독일군으로부터 포로심문을 받으면서 사흘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연료 보급기지의 위치를 자백하고 만다. 연료부족으로 기계화부대를 가동조차 못하고 있던 독일군은 연료를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다. 상원의원 아버지를 둔 덕분에 후방에서 비교적 편하게 지내던 터라 외투도 군화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포로가 된 하트는 군용열차에 실려 포로수용소로 가던 중 미군기의 공습을 받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도보로 행군하여 포로수용소에 도착한다.

장교 막사로 배정된 하트는 포로 중 최고계급인 맥나마라 대령(브루스 윌리스)으로부터 간단한 조사를 받은 후 사병들의 막사로 재배치된다. 주로 미군 포로를 수용하고 있는 스탈락 VI-A 수용소의 소장은 미국 유학 경력이 있는 베르너 비써 대령이다. 장교 막사에 빈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지만 한 달 가까이 포로심문을 받았던 맥나마라 대령으로서는 3일 만에 포로심문을 끝낸 하트 중위가 군사정보를 순순히 자백한 용기 없는 젊은이로 비쳤던 까닭이다.

하트가 들어간 제27 막사의 고참은 빅 베드포드 중사(콜 하우저)이다. 그는 독일군 경비병들과 뒷거래를 하면서 포로수용소에 만물상을 차려놓고 포로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상당한 대가를 받고 공급하고 있었다. 빅은 하트에게 새 군화를 지급하고 그 대가로 하트가 차고 있던 고급시계를 요구한다.

그때 흑인 조종사 둘이 포로로 잡혀 온다. 장교들이지만 역시 빈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하트의 막사에 배정된 흑인 장교들은 백인 병사들로부터 노골적으로 따돌림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센트루이스에서 경찰생활을 했던 빅의 흑인에 대한 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빅에게 찍힌 흑인 장교가 흉기를 침대 밑에 은닉하였다는 죄목으로 한 밤 중에 끌려나가 총살을 당한 후 인종차별의 벽이 높아간다. 며칠 후 한밤중에 밖에 나간 빅이 살해되고 현행범으로 흑인인 링컨 스코트 소위(테렌스 대션 하워드)가 체포된다. 한사코 자기가 죽인 게 아니라고 부인하는 링컨을 보고 맥나마라 대령은 수용소장에게 전시 군사법정을 열겠다고 제안한다. 수용소장은 미군포로들이 후송되어 오는 주말 이전에 재판을 끝내는 조건으로 이를 허락한다. 맥나마라 대령은 하트를 링컨 소위의 변호인으로 임명한다. 하트는 예일 로스쿨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터라 변호사가 아니라고 고사하지만 그 밖에는 맡을 사람이 없다는 말에 링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고심한다.

하트는 수용소내 영창으로 링컨을 찾아가 동료를 죽게 만든 것에 분개하여 빅과 싸우다가 잘못해 죽인 것이라고 하면 과실치사가 될 수 있다고 제의한다. 이에 링컨은 코웃음을 치며 백인을 죽이고 싶었으면 고향에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 하고 현장에 가보니 그가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한다. 링컨은 재판장인 맥나마라 대령이 심한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만큼 과실치사는 씨도 안 먹힐 것이라며 고개를 가로 젖는다.

맥나마라 대령으로서는 순진해 보이는 하트가 군사법정에서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하다. 조용히 하트를 불러낸 맥나마라는 링컨의 변론을 하더라도 다른 포로들에게 화가 미칠 수 있는 진술은 하지 말도록 종용한다. 예컨대 막사를 빠져나갈 때 난로 밑으로 빠져나갔다고 해야지 화장실 변기통으로 나갔다고 하면 많은 포로들이 다친다고 주의를 준다.
수용소장도 하트를 그의 사무실로 데려가 자신도 예일에서 공부를 했다면서 호의를 보이는 척하다가 미 육군의 전시법정 매뉴얼을 건네준다. 소장은 바그너의 음악보다도 흑인 재즈를 즐겨듣는다고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하트는 수용소장이 건네준 매뉴얼을 보고 군사법정이 규정대로 구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피고인이 기피하는 사람은 인종주의자인 맥나마라 대령이라는 것이다. 물론 재판장인 대령은 이를 기각하고 휴정을 한 다음 하트를 밖으로 불러내 그러한 행위는 규정상으로 법정모독이 되고 의도적 소송지연으로 처벌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적군인 수용소장 말을 듣고 자신을 조롱거리로 삼지 말라고 하트에게 일침을 가한다.

바깥에서는 전선이 교착상태를 보이는 사이 수용소 내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항전의지를 다지는 맥나마라 대령과 조용히 포로생활이나 하고 있으라는 소장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 하트 역시 맥나마라는 미군 상관이지만 웬지 자신을 따돌리는 것 같고, 수용소장은 적군이지만 예일 동창이고 미국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머리가 혼란스럽다. 빅의 침대에서 독일 신분증과 마르크화를 찾아낸 하트는 증인으로 수용소장을 신청하여 빅이 경비병들과 밀거래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다그친다. 빅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장교 막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밀작업을 밀고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야심한 시각에 막사를 황급히 빠져나가는 누군가를 따라가 보니 극장 뒤켠에서는 비밀지하 통로를 파는 작업이 한창이다. 극장에서 군사법정을 연다고 하여 독일 경비병들의 관심이 소홀해진 틈을 타 맥나마라 대령의 지휘 하에 수용소 밖으로 나가는 탈출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 평결을 위해 배심원들이 모인 시각에 35명의 특공대가 수용소를 빠져나가 수용소 인근의 무기공장을 폭파한다는 것이 비밀작전의 요지였다.

 

말하자면 군사법정은 쇼 무대였고 링컨 소위는 가엾은 희생양이었다. 하트가 이러한 사실을 링컨에게 고하자 자신이 명예롭게 죽은 것임을 가족에게 알려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희생되겠다고 말한다. 마지막 공판이 열리는 날 맥나마라 대령은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재판을 속개한다. 검찰관은 흑인의 명예로운 참전을 허용할 때 그들이 포로로 잡혔을 때의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결과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하고 배심원들에게 살인죄에 따른 사형을 요구한다. 이어 최후 변론을 하게 된 하트는 링컨을 변론하다 말고 빅을 살해한 장본인이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무고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없고 독일군에게 연료 보급기지의 위치를 알려준 데 대한 죄책감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자 수용소장은 하트를 끌어내 처형준비를 하라 이르고 포로들을 연병장으로 불러 내 인원 점호를 한다. 수용소를 빠져나간 특공대가 인근 무기공장을 폭파하는 동안 처형대 위에 선 하트 앞에 독일군 장교 복장을 한 맥나마라 대령이 홀연히 나타난다. 부하들이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수용소장의 총구 앞에 당당하게 나선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픽션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영화 같이 멋있는 장면이 어디서 벌어지지 않을까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대북 송금 사건만 해도 그렇다. 영화 속의 하트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이 비밀스러운 작업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열어야 하겠고 북한 사람들은 막대한 현금을 요구하고, 자금을 댈 사람은 대북사업에 관심이 있는 H그룹이었기에 그와 같은 배역이 정해졌던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고 협력을 거부하였다면 빅처럼 온갖 불명예스러운 죄를 뒤집어쓴 채 무대 뒤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특검제다 뭐다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비밀작업에서 소외되었던 것에 앙갚음을 하는 것이거나 전혀 이와 무관한 사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은 영화 속에서 하트가 행하였던 그대로일 것이다. 처음에는 법규정대로 할 것을 주장하지만, 엄청난 대의명분 앞에서 스스로 굴복하고 나중에 자신이 법을 지키지 못하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보통사람은 이런 일에 말려들지 않았음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인가. 다시 영화로 돌아가 만일 맥나마라 대령이 수용소로 귀환하지 않았더라면 하트는 처형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대령이 몸소 보여준 명예와 용기, 의무감과 희생정신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군사재판은 대규모 탈출을 은폐하기 위한 하나의 쇼였다. 그렇다면 2002년 12월 의정부 미군 부대 안에서 벌어진 군사법정은 왜 쇼처럼 열리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을 비롯하여 한국민의 관심이 온통 재판결과에 쏠려 있음에도 재판부는 사려 깊지 못하게 미군 관측병과 운전병 모두에게 성급히 무죄평결을 내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모두 군인들이기는 하지만 미군 병사에게 죄가 있는지 매우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거나 미군 사령관이 다른 관련자까지 처벌하는 등 모션을 취하였다면 한국민들이 그처럼 민족적 자존심이 상했다며 촛불시위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흑인이 백인을 잘못해서 죽였을 때 과실치사가 인정된 예가 없었다는 링컨 소위의 말처럼 미군이 주둔지의 현지인(그것도 미성년자인 여중생)을 과실로 역살(轢殺)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미국의 형사판례법(case law)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작업(예컨대 자동차운전) 중에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사람을 죽였다 하더라도 무죄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동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미국 시민들은 모두 전과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당연하다 해도 미군 당국이 정치적인 고려 없이 사건을 처리한 것은 마치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러니칼하게도 대북 송금 사건을 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 사건을 법적으로만 처리하려 들 경우 누군가(북한 당국자?)가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며 사태를 처음으로 되돌려놓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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