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트 인 아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 2001)

Whitman Park 2022. 2. 17. 10:15

영화 <하트 인 아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 감독 스콧 힉스, 각본 윌리엄 골드먼)는 원작자가 스티븐 킹임을 알아야 이해하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된 그의 소설은 이 영화말고도 <미저리>, <캐리>, <샤이닝>, <스탠드바이 미>, <돌로레스 클레이본>,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을 꼽을 수 있으며 최근에는 <드림캐쳐>까지 개봉되었다.

미국 북동부 메인주의 뱅고르에서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며 어느 서점에서나 한 쪽 코너는 그의 소설책만 쌓아놓게 만드는 스티븐 킹의 모습을 보노라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그의 소설에는 대중의 인기를 흡인하는 신비스러운 마력이 있다. 문학적 향기를 잃지 않으면서 괴기스러운 공포감을 자아내고 특이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탁월하게 묘사하면서 한결같이 초능력자인 듯한 별난 인물을 플롯의 중심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

사진작가 바비 가필드(데이빗 모스)는 육군 소령인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 설리반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그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간다. 그에게 전해진 유품은 낡은 야구 글러브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옛날 살던 집을 찾았을 때 오랫 동안 잊혀졌던 유년 시절이 되살아난다.

설리반, 캐롤과 어울려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던, 일생의 마지막 유년기였을 그 해 여름 바비는 엄마(호프 데이비스)와 둘이서 어렵게 살았다. 11살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선물로 받고 싶었던 바비는 엄마가 그 대신 마을 도서관 대출증을 주자 실망한다. 엄마는 죽은 남편을 원망하며 아빠가 도박이나 일삼고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이라고 푸념한다. 엄마는 직장생활도 힘들고 30대의 한창 나이에 어린 아들을 돌봐야할 뿐만 아니라 하나 뿐인 아들의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비의 집 윗층에 테드 브로티건(안소니 홉킨스)이라는 낯선 노인이 세를 들어온다. 소지품이라곤 쇼핑백에 든 옷 몇 가지가 전부인 노인을 엄마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바비에게 주의를 준다. 그러나 바비는 할아버지의 온화함과 인자함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다.

테드로서도 심심풀이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바비가 좋은 말벗이다. 이 고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묻기도 하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때 벤 존슨이라는 작가가 "시간은 늙은 대머리 사기꾼"이라고 말한 것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소설에서 그러하듯이 이 마을에도 위험한 인물이 사람을 찾으러 올 터이니 잘 살펴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할아버지는 바비에게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준다. 눈이 어두운 자신을 위해 신문기사를 읽어주면 1주일에 1달러씩 주겠다고 제의한다. 바비는 할아버지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드리고 재미있는 미식축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매주 1달러씩 돈을 모아 자전거를 사는 꿈에 부풀어 있다.

어느 날 바비는 할아버지로부터 여자 친구 캐롤하고 키스를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지만, 캐롤과 함께 놀러간 놀이공원에서 탈 것이 고장나 잠깐 멈춘 사이에 캐롤한테 입맞춤을 한다. 바비는 할아버지가 사람을 꿰뚫어보는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할아버지는 누구나 마음 속에 '아틀란티스 같은 낙원'을 꿈꾸지만 나이가 들면 아틀란티스를 잊어버린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엄마가 업무관련 세미나로 주말에 집을 비워야 할 때 2층의 할아버지에게 어린 바비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바비는 엄마가 아들은 내팽개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불만이지만 테드 할아버지와 주말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영화도 보고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할아버지가 뒷골목 술집에서 권투시합 결과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도 구경한다. 술집의 여자는 바비의 아버지를 기억한다고 하면서 엄마와는 달리 좋은 분이었다고 말해 준다.

바비가 할아버지를 보고 동네에 사람인지 애완견인지 찾는 이상한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내일 도박에서 돈을 따면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에 엄마는 테드 영감님이 우려한 대로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해 쫒겨오듯이 집에 돌아온다. 바비는 갑자기 테드 할아버지가 캐롤을 급히 찾아보라고 말하는 바람에 자주 다니던 숲 속 계곡을 찾아간다. 가서 보니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캐롤이 동네 불량배에게 구타를 당해 쓰러져 있다. 가까스로 캐롤을 업고 집에 오자 할아버지는 캐롤의 어깨가 탈구가 되었다며 응급처치를 해준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이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할아버지가 캐롤을 추행하는 줄 알고 할아버지보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테드 영감님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던 엄마는 FBI에 신고한다. 바비는 할아버지를 쫓아 나가 스포츠 도박에서 딴 돈을 찾아다 드리려 하지만 이미 FBI 요원들이 할아버지를 압송해간 뒤이다. 직장을 새로 구해야 했던 엄마는 바비를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바비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 너무도 컸다. 다른 고장에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에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은 잊어버리고, 고향의 친구 캐롤과 설리번도 망각 속에 묻힌다.

폐가로 변한 옛 고향집을 둘러보는 바비에게 그 옆을 지나가던 마을 소녀가 이곳은 위험하다고 주의를 준다. 말하는 품이 캐롤의 딸임을 직감으로 알아차린 바비는 수첩 속에 고이 간직했던 어렸을 적 캐롤의 사진을 건네준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 속에서 어린 바비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테드 할아버지는 1950년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FBI가 고용했던 초능력자(psychic)로 그려져 있다. 그는 사람의 눈을 응시만 하고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려는지 꿰뚫어보는 초감각적 지각능력(extrasensory perception: ESP)을 갖고 있었다. 바비 일행을 골려주려는 동네 불량배를 내쫓을 때도 그러했고 바비가 캐롤과 키스하려는 것, 엄마가 출장 가서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 당하리라는 것, 캐롤이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것 등을 테드 할아버지는 미리 내다 보았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는 바비를 보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려고만 드니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과연 미국의 정보기관, 수사기관은 이러한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였던가?
실제로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1960-70년대부터 심령술사를 이용하여 적국의 첩보를 수집하는 비밀작업을 해온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심령술사, 최면술사를 동원하여 연합군의 심리교란 작전을 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 원작(영화)의 소재가 되었다시피 연방수사국(FBI) 역시 후버 국장 재직 시에 거짓말탐지기로도 가려낼 수 없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해 심령술사, 독심술사 등의 초능력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전해온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존 내쉬 같은 천재 수학자도 미국 정보기관의 부탁을 받고 소련 공작원들이 신문·잡지를 통해 교신하는 암호를 분석하는 일에 골몰했었다고 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그룹이 비밀리에 거액을 북한에 송금한 사건을 둘러싸고 특별검사가 나서서 국가정보원 간부들을 소환해가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정보기관, 수사기관의 은밀한 공작(clandestine projects)은 이른 바 "X 파일"로 덮어두고 깊이 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것이 '음모론'(conspiracy theory)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지만, 누가 맡더라도 진실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고 설령 밝혀본들 국가안보나 공공질서라는 초법규적 면책사유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목격한 바와 같이 선량한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위험에 빠졌을 때에는 누군가 그를 도울 수 있게 기가 발산된다는 것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11살 소년과 노인의 우정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듯이 "유년시절의 한 때를 소중한 추억으로 여기고 이 세상을 살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평생 고이 간직할 보석상자와 같은 게 아닐까.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의 동명의 원작소설에 수록된 4편의 중편소설과 한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첫 번째 중편(Low Men in Yellow Coats)과 마지막 단편(Heavenly Shades of Night are Falling)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원작소설은 월남전이 주된 토픽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바비의 옛친구 설리번이 육군 소령이고 월남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았다는 것 정도로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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