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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에 숨은 코드

Whitman Park 2022. 2. 18. 00:40

※ 아래 글은 2001년 말 <반지의 제왕I - 반지원정대> 영화를 본 후 상법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IMF 위기 이후 회사의 기업지배구조 변화"를 설명한 것을 간추린 것이다. 

이것을 포함하여 여러 영화의 법률적 의미를 분석해설한 논문은 박훤일, "스크린 위의 법적 현실", 「경희법학」 38권 1호, 2003.10.15, pp.267~304 참조.

스크린_법적현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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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터지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영국의 언어학자 J.R.R. 톨킨(1892∼1973)이 쓴 원작의 스케일 그대로 영화(감독은 뉴질랜드 출신 피터 잭슨)로 만든 것이 흥행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아카데미상에서도 무려 13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다. 이 영화를 보면 팬터지 소설이나 컴퓨터 게임에 익숙치 못한 기성세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타락한 신 사우론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앞세워 다른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사우론은 거세되고 인간들은 무력화되었다는 드라마의 설정부터 괴기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소설이나 영화로 전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키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플롯상의 의문점

저자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교수이고 북구신화와 고대언어에 정통하였다는 점에서 원작에 감춰진 코드를 파헤쳐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타락한 신 사우론은 성경에 나오듯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부리다가 징계를 받은 천사 루시퍼(사탄)일 것이다. 그리고 신들의 싸움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중간계(Middle Earth)에서 힘은 약해졌으나 꾸준한 진화를 보이는 인간들, 단순하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낭만적인 소인족(호비트), 가끔은 초자연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마법사들, 고상한 삶을 영위하는 요정(엘프)들이 서로의 영토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은 각 대륙에서 발달한 인류문명의 특징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소인족에 속하는 빌보가 여행을 하다가 낡은 반지 하나를 우연히 손에 넣었는데 이 시기에 지상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찾아왔다는 설정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삼촌인 빌보로부터 반지를 물려받은 주인공 프로도는 스승인 마법사 갠달프의 설명을 듣고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절대반지를 없애기로 하는데 그는 정말 야심이 없단 말인가? 프로도는 왜 호비트족 친구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인간들, 엘프, 난쟁이들과 원정대(영화 제1 편의 원제가 "Fellowship"임)를 조직하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그리고 절대반지를 영원히 없앨 수 있는 길은 그 반지가 만들어진 불의 산, 현재 사우론이 은신해 있는 모르도르산의 분화구 속에 그것을 던져넣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영미식 기업지배구조

[반지의 제왕] 소설이나 영화를 '기호학'으로 풀면 이상의 의문들이 쉽게 풀린다. 알기 쉽게 드라마의 규모를 축소시켜 하나의 기업―주식회사로 옮겨놓고 보자. 회사의 절대권력을 오너 내지 지배주주 손에 두어서는 안되고 소수주주들에게 분산시켜야 한다는 영미식(Anglo-Saxon)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이론이 <반지의 제왕> 기본 줄거리와 아주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영미법에서는 회사의 권력이 소수주주들에게 분산되어 있을 때 회사가 평화롭게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통제형' 구조하에서는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당해 기업을 좋게 평가하면 주가가 상승하게 마련이고 그렇지 못하면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조달마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IMF에 대한 양해각서에서 약속한 바 있는 은행과 대기업의 감사제도를 소수주주들이 선임하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로 대치하고자 하는 것도 견제하고 감시하는 권력일 망정 집중되면 부패할 수 있다는 영미식 기본관념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도는 절대반지를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다른 소인족 친구, 인간들과 힘을 합쳐 한시 바삐 처치할 작정이다. 문제는 과거 세계를 지배할 꿈을 키웠던 인간들이다. 반지 원정대의 몇몇 사람은 프로도의 손에 있는 반지를 탈취할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된다. 그것은 기업조직에서 경영진과 노동조합·우리사주조합 등으로 조직화된 종업원 대표가 종종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에 있어서도 독일과 일본에서는 그 접근방법이 다르다. 주거래은행, 기관투자가 또는 종업원 대표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통제형' 구조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또는 기관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를 도모하고 구성원간의 형평의 유지, 상호협의에 의한 의사결정, 집단의 역할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둔다. 양자의 차이점은 사장통제형이 자본시장에서 주식이나 회사채와 같은 증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반면, 조직통제형은 주거래은행이나 기관투자가에 대한 차입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암흑의 제왕 사우론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11개의 중간반지를 끌어모으고 자신을 추종하는 흑기사들과 타락한 마법사 사루만을 내세워 사방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영국인의 관점에서 히틀러식 독재정을 연상하고 쓴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그 중심세력이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간부들을 중심으로 인사배치하는 것은 일사분란한 조직운영을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 주는 시사점

원작자가 영국인인 만큼 그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절대반지를 차지하려고 인간계의 영웅들이 발버둥치면 칠수록 이 세상에는 전쟁과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니 산의 분화구 속에 반지를 던져 넣듯이 절대권력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컨대 갠달프가 프로도를 보고 "절대반지를 악한 군주 사우론에게 빼앗기지 말고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한 임무부여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민주주의와 3권분립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여러 사람이 원정대를 구성(連帶)하듯 힘을 합치라는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반지의 제왕>이 단순한 팬터지 소설/영화가 아니라 앵글로 색슨의 사상관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외국의 팬터지 소설/영화에 무조건 열광하고 심취할 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설파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적합하고 효율적인 지배구조는 무엇인지 헤아려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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