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인 야드(The Whole Nine Yards, 2000)

Whitman Park 2022. 2. 18. 08:30

금전 기타 보수를 받기로 하고 특정인을 살해하는 것을 청부살인(hired to kill)이라 한다. 지난 2월초 서울고등법원은 법관인 사위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여대생 하 모 양을 살해할 것을 지시하고 범인들에게 해외도피 자금을 제공한 58세의 윤 모 여인에게 원심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윤 씨의 지시를 받고 하 양을 납치한 후 공기총으로 살해한 윤 씨의 조카와 그의 친구에 대해서는 모두 원심보다 형량이 높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평생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린 초로의 부인이 자기 딸도 똑같은 고생을 할까봐 주변정리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돈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 '청소부들'이 많다고 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전문 킬러가 돈을 목적으로 살인을 하지만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영화 <나인 야드>(감독 조나단 린)는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보다 훨씬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원제인 "The Whole Nine Yards"는 99999999...라는 엄청난 행운의 숫자를 의미한다. 주인공이 로또(Pick Six)에 1등 당첨이라도 된 것일까.

 

영화의 줄거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업 중인 치과의사 오즈(매튜 페리)는 아내와 장모한테 항상 시달린다. 여인 천하의 집안에서 그는 돈을 많이 못 벌어온다고 구박받기 일쑤이다. 거액의 생명보험에 들어 있으니 죽어야 돈이 나올 참이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치과의 여비서 질(아만다 피트)는 질 나쁜 부인하고 한시 바삐 이혼하라고 성화이다. 그러나 오즈는 이혼을 하면 그나마 모든 것을 털리고 거리에 나앉을 처지라 엉거주춤한 상태이다. 바로 그때 오즈네 집 이웃에 수상쩍은 남자가 이사 온다.

오즈는 그의 팔에 새겨진 튤립꽃 문신을 보고 신문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적이 있는 시카고 지역의 악명 높은 갱단의 간부 지미 "튤립" 투데스키(브루스 윌리스)임을 알아채고 혼비백산한다. 전문 킬러인 지미는 법정에서 보스를 배신하고 자신만 가볍게 형기를 치르고 난 후 이제 막 출감한 것이다. 그러나 시카고에서 치과를 동업하던 장인의 빚잔치를 하고 몬트리올로 이사온 오즈나 시카고 조직 갱단의 눈을 피해 캐나다의 한 도시로 피신한 지미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이웃집에 전문 킬러가 이사왔다는 말을 들은 오즈의 아내 소피(로잔나 아퀘트)는 반색을 한다. 남편을 닦달하여 시카고 갱 조직에 지미를 밀고하고 현상금을 타내라 이르고, 남편이 시카고로 떠난 사이에 의도적으로 지미에게 접근을 한다.

시카고에 간 오즈의 호텔 방에는 건장한 흑인 프랭키(마이클 클라크 던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지미가 배신하였던 갱단의 행동대장이다. 그는 오즈에게 지미의 소재를 밝히라고 협박하며 그를 야니 고골락의 집으로 데려간다. 오즈는 온갖 공갈 협박을 받으면서도 사람이 죽고 죽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함구를 한다. 그러나 그 집에 인질로 잡혀 있는 지미의 아내 신시아(나타샤 헨스트리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

호텔로 돌아온 오즈에게 돌연 신시아가 찾아온다. 남편이 과연 몬트리올 근교에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데 오즈는 아무도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오히려 신시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때 조직 내의 비밀스러운 내막이 밝혀진다. 야니 고골락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지미가 FBI의 눈을 피해 은행에 예치한 1천만 달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예금은 지미와 고골락, 신시아의 명의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명의인이 죽었다는 사망확인서가 없는 한 공동으로 사인을 해야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자기가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신시아는 그녀를 남편의 손에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오즈의 결의에 찬 말에 감동을 받는다. 험악한 조폭의 세계에서 모처럼 순박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즈는 프랭키와 함께 몬트리올로 돌아온다. 그러나 프랭키의 방에는 지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라이벌이 아니라 협조자였던 것이다. 아무 영문을 모르는 오즈에게 지미는 당신의 아내가 남편을 죽여주면 1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말하고, 아무 매력도 없고 인간성도 형편 없는 여자라 거절했으니 아내를 조심하라고 타이른다.

그 사이 오즈의 아내 소피는 정부인 경찰관에게 거금을 주기로 하고 남편을 살해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오즈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질은 지미를 찾아가 청부살인을 배우고 싶다며 떼를 쓴다. 지미로서도 야니와 아내를 함께 제거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진 셈이다.

오즈는 프랭키와 함께 공항으로 가서 야니 일행을 영접한다. 오즈의 집에 베이스 캠프가 차려지고 지미가 잠들 시각쯤 작전을 개시하기로 한다. 강도를 가장하기로 하는데 지미의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뜻밖에도 전라의 여인이다. 어리둥절한 사이에 지미가 나타나 침입자들을 깨끗이 처치한다. 그 사이에 오즈를 죽이러 온 경찰관도 영문을 모른 채 총격을 받고 쓰러지고, 소피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지미는 오즈가 시카고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는 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내라는 말을 듣고 격분한다. 오즈도 신시아와 함께 지미에게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진 것이다. 오즈는 신시아에게 2시간 후에 아무 연락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도망가라고 이르고서는 지미에게 생애 최대의 도박을 한다. 죽은 경찰관을 치과로 데려오라는 것이다. 죽은 경찰관에게 지미와 똑같은 치형을 만들어주고 야니와 경찰관을 화장(바베큐?)해버리면 경찰에서는 야니와 지미가 불에 타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즈와 지미가 의도한 대로 형사들이 오즈에게 찾아와 그의 차가 전소되었는데 사망자의 신원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유일한 증거인 치아의 모형이 야니와 지미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결국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신시아 한 사람뿐이다. 지미의 비서 일을 맡은 질은 신시아와 함께 은행을 방문하고 신시아에게 그 돈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자기가 그러한 입장이라면 돈을 갖고 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시아는 오즈와의 사랑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신시아의 태도를 확인한 질은 지미가 지시한 대로 전액 인출한다.

그 다음에 이 세상에서는 죽은 것으로 처리된 지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지미는 "내가 죽고 나니 변했나 보군"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사악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순진했던 우리의 주인공은 사랑과 돈 모든 것(the whole nine yards)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감상의 포인트

미첼 캐프너라는 시나리오 작가가 TV 뉴스를 보다가 "출옥한 갱 단원이 이웃집에 이사를 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데 착안하여 만들게 되었다는 이 영화는 허황된 스토리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는 심심찮게 '해결사' 사이트가 뜬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증오하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정색을 하고서 의뢰해온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배신한 옛 애인과 결혼한 여자를 살해해주면 1천만원을 주겠다", "병이 든 친모를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계모를 살해해 주면 보험금을 타 그 중 90%를 사례비로 지급하겠다"는 의뢰를 받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했던 지방의 어느 대학생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직당국에서는 이와 같이 돈을 받고 그가 특정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청부살인'이라 하는데, 첫머리에 소개한 여대생 공기총 살해 사건이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물의를 빚은 사례이다. 청부살인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의논하기만 하면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관련자들을 살인예비 또는 음모죄(형법 255조)로 처벌하며, 특히 돈을 주고 의뢰한 사람은 정범이 구체적인 실행에 착수하면 살인교사죄(형법 31조 3항)로 처벌하게 된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인터넷 카페의 '청소부' 사이트와 관련하여 2003년 2월 15일부터 3월 말까지 실시한 반사회적인 불법 사이트 일제 단속에서 적발된 사이트 중 청부살인을 목적으로 한 해결사 사이트가 무려 1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결사 사이트를 찾는 이들은 사회나 가정 학교 등지에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충동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짙다"며 "청부업자들은 돈만 있으면 손쉬운 해결방법이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의 공격심리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가장 유명한 살인청부 조직으로는 16-17세기 인도 사회를 공포에 떨게 만든 '떠기'(Thugee) 집단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돈을 받고 누구든 원하는 사람을 처치하는 전문 킬러들로서 힌두교의 파괴의 여신 '칼리'에게 사람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카드 빚 등 민생고가 쌓이면서 우리 사회의 도의·윤리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부살인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모두 늘어나고 있는데, 이처럼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만연되는 현상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갈수록 어두워지고 불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난 후에 국민소득이 2만불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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