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1999)

Whitman Park 2022. 2. 18. 09:05

오늘날 TV나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작중인물과 하나가 되어 간접체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보는 잠깐 동안이나마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한 요즈음에는 가상현실 속으로도 넘나들 수 있다. 그러므로 TV나 영화 드라마 속에서는 무수한 'If'의 답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내가 만일 백만장자라면 ······ "
"내가 만일 여주인공(유명한 여자배우 ○○○)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다면 ······ "
이러한 가정법은 상상력의 날개를 타고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영화 <리플리>(원제 "The Talented Mr. Ripley")는 그 가정법의 결말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았던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불어: Plein Soleil, 영어 Purple Noon)를 리메이크한 영화라거나,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연출·각색한 안쏘니 밍겔라 감독이 동명의 원작소설(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작 <The Talented Mr. Ripley>을 색다르게 각색하였다거나, 남자 주연을 디카프리오가 거절하여 맷 데이먼이 맡게 되었다거나, 이 영화가 금년도 국제영화제의 유력한 수상후보로 떠오른 가운데 전세계 게이(동성애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영화의 줄거리

부잣집 파티 석상에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반주를 하는 톰 리플리의 직업은 콘서트홀의 피아노 조율사이지만 화장실 보이 노릇도 해야 한다. 재능이 많은 그는 고아인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기가 빌려 입은 프린스턴 유니폼을 보고 자신을 프린스턴 음대 출신으로 간주하는 부호의 말을 그대로 시인한다. 뉴욕의 선박부호인 허버트 그린리프(제임스 리브혼)는 리플리를 보고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고 이태리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프린스턴 출신의 아들 디키 그린리프(쥬드 로)를 데려오라고 부탁을 한다.

다재다능한 리플리는 수고비가 천 달러나 되는 이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재즈를 좋아하는 디키와 친해지려고 재즈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쌓은 후 이태리로 간다. 로마에 도착하였을 때 미국 섬유재벌의 딸 메레디스 로그(케이트 블랑셰)를 우연히 만나 자신을 디키 그린리프라고 소개한 것이 그대로 굳어진다.

이태리 남부의 해변 마을로 디키를 찾아간 리플리는 자신이 "성대묘사를 잘 하고 서명도 감쪽같이 위조할 수 있다"고 태연히 이야기하는데 부유한 환경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디키에게는 꼰대 아버지 흉내를 잘 내는 리플리가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다. 디키의 연인 마지 셔우드(기네스 팰트로)와도 가까워진 리플리는 어느 새 자신도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이를 즐기게 된다.

리플리는 천부적인 말주변으로 마지와 여행담을 늘어놓는가 하면, 디키와 함께 나폴리로 놀러 가서 자신의 재즈 실력을 과시하듯 디키의 색소폰 반주에 맞춰 "날마다 발렌타인 데이(Each day is my Valentine's Day)"라는 노래를 부른다. 로마로 기차 여행을 떠난 디키와 리플리는 분수가 쏟아지는 시내 광장에서 디키의 친구 프레디 마일즈를 만난다. 프레디의 눈에는 어쭙지 않게 부자 티를 내는 리플리가 촌스럽게 보인다. 그는 노골적으로 리플리를 무시하려 들고 리플리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온다.

프레디의 차로 뒤따라 온 디키는 프레디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자기 방에서 자신의 양복을 걸치고 있는 리플리를 보고 크게 화를 낸다. 그리고 스키 여행에서 리플리를 빼기로 했다고 말한다. 마을의 가톨릭 축일 날 디키와 모종의 관계가 있던 마을 여인이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여 디키가 심난해 한다.

 

 

디키를 미국으로 데려가는 데 실패한 리플리는 그의 아버지와의 계약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든, 이태리에 눌러 살든 결정을 내려야 할 판이다. 마지막으로 이태리 북부의 산레모 음악제에 함께 구경을 간 디키와 리플리는 그곳에 집을 구해 함께 살자고 하다가 심한 말다툼을 벌인다. 디키는 리플리더러 "프린스턴 동창답지 않고, 너무 속물스러울 뿐만 아니라 찰거머리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 싫증 난다"고 내뱉는다. 모욕을 받고 격분한 리플리는 보트 위에서 벌어진 격투 끝에 그만 디키를 살해하고 만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고였다. 그렇지만 리플리는 철저하게 디키 행세를 하기로 작정한다. 우선 마지에게 향수 선물과 함께 절교편지를 보내고, 두 군데의 로마 호텔에 디키와 리플리를 가장하여 투숙한다. 로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난 재벌 딸 메레디스에게는 디키가 되어 스페인 광장의 디날리 카페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마지한테는 리플리로 되돌아가 디키가 같은 카페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더라고 전한다. 디키는 살아 있지만 두 연인의 틈바구니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꾸미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리플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프레디가 "디키가 자신의 방을 벼락부자같이 천박하게 꾸미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디키의 실종을 놓고 그를 추궁하자 리플리는 서슴치 않고 제2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프레디의 오픈카와 시체가 교외에서 발견되면서 경찰은 리플리의 주변으로 수사망을 좁혀 온다. 리플리는 마지에 대해 디키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데, 산레모에서 디키가 빌렸던 보트가 발견되면서 그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처럼 꾸민다.

베니스로 마지의 친구 피터를 찾아 간 리플리는 자수하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로마 형사가 로마에서의 수사관과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마음을 바꾼다.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듣고 허버트 그린리프는 미국의 사설탐정을 고용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다. 그러나 리플리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이태리 경찰이 디키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알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사건을 덮어버리고 베니스를 떠난다. 그러나 리플리의 거동이 수상쩍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린 마지는 리플리를 보고 "난 네가 죽인 것을 안다"며 부르짖는다.

마침내 사건에서 해방된 리플리는 아테네로 공연을 떠나는 피터와 함께 배를 탄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갑판에서 또 다시 메레디스를 만난다. 자신을 여전히 디키로 알고 있는 메레디스와 키스하는 모습을 본 피터에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났다고 생각하고 피터 뒤에 누워 자신의 장점을 말해보라면서 서서히 피터의 목을 조른다.

 

감상의 포인트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학생과에는 가짜 학생에게 온 편지가 수북히 쌓이곤 했다. 심지어 어떤 가짜 학생은 교수님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꿈은 크지만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에 열등감을 갖는 사람은 곧잘 꿈과 현실을 뒤바꾸려 든다. 영화 속 주인공의 독백처럼 '가짜라도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못난 자신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To be faked somebody is better than real nobody).

헐리우드 영화 <서머스비>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거니와, 다른 사람의 거짓 행세를 하는 것(mistaken identity)은 그것이 다른 범죄행위로 연결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 서울법대생 행세를 하더라도 그가 고시준비한다고 속이고 여자에게 돈을 빌리거나 몸을 빼앗지 않는 한 사기죄나 혼인빙자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서머스비가 재판을 받은 것도 그의 정체가 타운센드라서가 아니라 서머스비로서 살인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알랭 들롱 주연의 오리지널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소설을 1960년에 처음 영화화한 프랑스의 르네 클레망 감독은 리플리(<태양은 가득히>에서는 필립)가 디키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는 방법, 그의 연인과 가까워지는 관계설정 등에서 원작과 차이를 두면서 기막힌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40년 후에 안쏘니 밍겔라 감독이 리메이크한 이 영화에서는 보다 원작에 접근(원작에서는 리플리가 완전범죄에 성공하여 환호하는 것으로 끝난다)하면서도 리플리가 자신의 범죄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살인을 하는 것으로 설정해 이를 모방 내지 간접체험하려는 관객들에게 섬찟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40년의 시간차(time gap)를 느끼게 하는 것은 원작과 영화 속에 감춰져 있는 동성애적인 요소이다. 60년대 초 르네 클레망 감독이 감히 영화로 나타낼 수 없었던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그 때문에 클레망 감독은 필립이 느끼는 사회적 모순, 계급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려 했었다.

그렇지만 원작소설이나 이 영화에서 디키가 첫 만남에서 리플리에게 끌리는 것은 명백히 동성애적 감정이고, 이것은 나폴리의 재즈바에서 디키가 색소폰으로 반주를 하면서 리플리가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을 부를 때 절정에 이른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리플리가 피터 옆에게 눕는 것도 동성애적인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리플리는 디키의 연인인 마지까지 차지하려는 양성애적인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차이는 범죄의 구성요건은 동일하더라도 위법성이나 책임의 검토에 있어서 시대·사회적 배경이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요즘에는 동성애가 사회통념상 크게 비난받는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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