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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책 읽기, 괜찮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그러나 독서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할까?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은 반드시 성당에 가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든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그곳이 바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마찬가지로 독서도 서재나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나이가 들어 노안이 오면 집안 여기저기에 돋보기를 놓는 것도 그곳에서 신문이든 잡지든 활자매체를 보기 위해서 아닌가!  마침 조선일보 News English 윤희영 에디터가 독서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팁(tried-and-true tip)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원문의 주요 구절에는 (  ) 안에 영어 실력을 절로 키..

Talks 2024.10.15

말러의 '가을에 고독한 자'

늦더위 뒤에 찾아온 가을이어서인지 사방에서 가을을 그리워하고 기다렸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KBS 1FM에서도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제2악장에 나오는 가곡 "가을에 고독한 자"(Der Einsame im Herbst)를 음악과 함께 소개했다.그리고 "대지의 노래"에 들어 있는 여섯 곡의 노래가 모두 이백의 비가행(悲歌行) 같은 중국 당시(唐詩)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가을에 고독한 자"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전기(錢起, 722~780?)의 효고추야장(效古秋夜長)이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한시(漢詩)의 제목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效古'란 옛것을 본 받는다는 뜻이니 아마도 그 전에 내려오던 '긴 가을밤(秋夜長)'이란 시를 조금 ..

공연 2024.10.06

나이듦과 은둔, 천산둔(天山遯)

대학 동창회(회장 김종인 변호사)에서 2025년이면 졸업 50주년이라면서 몇 가지 행사를 기획했다.처음엔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추진했으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행은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그래서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고 우리의 나이에 걸맞는 문화ㆍ예술 이벤트를 곁들인 국내여행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또 회장단이 준비한 것은 동창회 기금을 가지고 회원들에게 기념품과 선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회원들의 주소록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회장 비서가 연락을 취하니 보이스 피싱으로 오인을 받아 통화 자체가 안된다는 말에 허무정 동기가 자원봉사를 하여 주소록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우리 회원들의 반응이었다.물론 그간 동창 모임과의 소통 연락에 소홀했다면서 서로의..

Talks 2024.09.24

시민 덕희 (2024)

이 영화는 2024년 초에 개봉되었는데 한예종 영화과 출신의 신예 박영주 감독이 보이스 피싱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하여 여러 가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같은 해 9월 추석 특선영화로 KBS 2TV에서 방영되었다.이 영화는 경찰은 물론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에서도 보이스 피싱 피해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전화금융사기 사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찌보면 과거 보이스 피싱 수사를 하는 경찰의 무능을 고발하고 피해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했던 현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보이스 피싱을 당하지 않고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떻게 대허해야 하는지 교과서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어린 자녀를 키우며 세탁소를 운영하던 덕희(라미란 扮)는 화재 사건으로 인해 ..

영화 2024.09.16

부산 해운대의 버스커와 1만 시간의 법칙

8월 말 간만에 부산 해운대에 놀러갈 일이 있었다.부산시에서 폭염 경보를 내릴 정도로 더위가 계속되자 해운대 해수욕장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바닷물 속에 뛰어드는 내외국인 수영객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가을 절기가 시작되어서인지 아침 저녁으로는 소슬바람이 불었다.밤이 되자 백사장에 마련된 버스커 공연무대에서는 여기저기서 버스킹을 하는 가수들이 공연을 하여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기타를 치며 혼자 또는 듀엣으로 노래하는 가수도 있고 MR 반주음악을 틀어놓고 간이 드럼을 두드리며 신나게 부르는 가수도 있었다. 흥겨운 나머지 청중석에서 뛰어나와 모래밭에서 함께 춤을 추는 관광객들도 있었다.한국의 제일 유명한 피서 관광지에서 한여름밤에 일어날 수 있는 유쾌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

공연 2024.08.31

The End of August

8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로 시달렸기에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소슬바람이 반갑기 그지없다.그러나 내 기억 속에 8월의 마지막은 반갑기보다 아쉬움과 쓸쓸함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야니(Yanni)의 명곡 "The End of August" 때문이다.1994년 미국 유학생활을 거의 마칠 때쯤 그 연주 실황을 미국의 공영방송 PBS 채널에서 아주 인상깊게 보았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의 야간 공연,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열띤 청중의 반응,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가 영화배우 같은 야니의 제스처와 함께 가슴 속에 각인되었다. 만학(晩學)에 힘들었던 로스쿨 공부가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함께 또 언제 이렇게 자유로운 학창생활을 해볼 것인가 하는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가 낳은 세계적인 ..

공연 2024.08.26

얼마나 맛있을지 사진만으론

언제부터인가 음식점에 가면 내 앞에 놓인 음식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인스타그램은 하지 않아도 간혹 블로그에 음식 사진을 올려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그보다는 언제 어디서고 마음놓고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덕분이라고 생각한다.폰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 중에서 따로 표시를 해놓은 것도 아닌데 '음식' 사진만 골라내는 AI 기능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마침 내가 즐겨먹는 호박죽에 관한 시를 영어로 옮기게 되었다.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감동적이었다."아직 돌아오지 않은 식구들 몫까지 / 식탁 가득 붉은 호박죽 / 우주로 창을 낸 저녁이다"잘 익은 단내와 구수한 맛을 풍기는 호박죽을 이 자리에 없는 식구들 뿐만 아니라 창문을 통해서는 우주의 생명체들과도 공유한다니 얼마나 자비롭고 스케..

전시 2024.08.18

홍유손, 모래밭에 누워 (題江石)

얼마 전 강릉 경포대 바닷가에 놀러 갔다.백사장에는 폭염이 작열하고 있어서인지 비치 파라솔 아래나 바닷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나도 바람이 살랑거리는 솔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하늘과 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물멍 때리기를 하고 있었다.사고(思考)의 정지 - 그 순간 현재와 과거, 미래를 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런데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속세을 벗어나 칠언절구로 사고의 정리를 한 선인(先人)이 있었다.  題江石  -  篠叢 洪裕孫 濯足清江臥白沙心神潛寂入無何天敎風浪長喧耳不聞人間萬事多 강가의 돌에 적다  - 소총 홍유손 맑은 강에 발을 씻고 모래밭에 누우니 심신이 고요해지며 무아지경이 되었네바람 소리 물결 소리만 귓전에 울릴 뿐속세의 부질없는 일은 들리지 않는구나 홍유손(洪裕孫 호는 篠叢, 狂..

Talks 2024.08.13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폭염(暴炎)이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열대야로 시달리는 가운데 입추를 맞았으니 가을을 더욱 고대하게 된다.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잘 모르는 일기도를 보면서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밀어낼  시원한 기단(氣團)이 언제쯤 나타날까 찾아본다. 그렇다고 슈퍼 태풍이 몰려와 피해를 줘도 곤란하지만 지금의 기상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태풍 밖에는 없을 듯 싶다. 오래 지속된 긴 장마가 속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한시(漢詩)가 위의 폭염 속에 가을을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十日長霖  (열흘씩 가는 긴 장마)- 一朵紅 (일타홍) 취연 (翠蓮)十日長霖若未晴鄕愁蠟蠟夢魂驚 ..

공연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