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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농부, 기자

신문을 장기 구독하다보면 자연히 좋아하는, 믿고 읽는 기자가 생기게 마련이다.한국경제신문은 내 저서의 서평을 크게 실어준 인연으로 정년 퇴직할 때까지 오랜 기간 구독자였다.그때 문화부 기자였던, 나중엔 천자칼럼을 쓰던 고두현 기자가 생각난다.그가 시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시인 역시 남해의 섬 사람으로서 남해의 유배지(노도)에서 숨을 거둔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을 기리는 시였다.전례에 따라 "남해 가는 길"을 영어로 옮기는 동안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연륙교가 없을 때였으니 당연히 물살이 거센 노량 해협을 나룻배로 건너가야 했다.그의 유배지는 남해도에서도 한참을 들어가 백련 포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가야 하..

공연 2024.07.24

아침 이슬처럼 곧 사라질 것들

아침에 시골에서 감 농사를 짓는 친구가 단톡방에 한 편의 시(詩) 같은 글[1]을 올렸다.간밤에 내린 보슬비에 풀섶에 맺힌 물방울이 수천 수만의 수정(水晶) 꽃 같다고 여러 장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장마철에 동이 트기도 전에 일을 나선 친구가 시인과 같은 감성으로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해 준 것이 고마웠다.  친구는 제초를 뿌려놓은 풀섶에 맺힌 물방울들이 마치 수정 꽃이 핀 것 같다고 하면서 아침 햇살이 비치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아름다운 것들"[2] 가사의 한 소절도 덧붙였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데로 데려갈까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그런데 제초..

Talks 2024.07.20

007 카지노 로얄 (2006)

IP 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2006)을 후반부만 보게 되었다.아주 오래 전에 오리지널 (1967)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이언 플레밍 원작인 동명의 소설을 두 번째 영화한 것으로 남자 주연은 데이비드 니븐, 우디 앨런, 여자 주연은 어슐러 안드레스가 맡았 었 다. 그래서그런지 스파이 액션 영화라기보다 카지노에서 큰 돈을 걸고 포커 게임을 하는 희극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반면 2006년 리메이크판은 근육질의 뇌섹남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데뷔작이고 아주 재미가 있어서 처음부터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어디서도 VOD를 찾을 수 없었다. 따로 DVD를 소장하지 않는 한 다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다니엘 크레이그가 (2021)를 끝으로 007 영화에 더 이상 출..

영화 2024.07.14

짝사랑을 다룬 시나 소설, 영화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 - 1805)이 연애시(戀愛詩)를 썼다니~!조선 후기에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강조한 실학자요 청나라에 다녀온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와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같은 소설을 쓴 근엄한 선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한 여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곡진(曲盡)하게 표현한 것이다(안대회, 《조선의 명문장가들》, Humanist, 2016에서 인용). '썸' 타는 사람의 마음은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대는 오지 않고 [1] 저물어 용수산(龍首山)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소.강물은 동쪽에서 흘러왔지만 그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더이다.밤이 이슥하여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는데,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하얀빛을 띠며 사람처럼..

드라마 2024.07.05

Aquarius - Let the Sunshine in

지난 4월부터 온누리교회에서는 전 교인이 순예배(구역예배) 때마다 퐁당 앱으로  "바울로부터" 10부작 다큐 영상을 함께 보면서 QT를 해왔다. 이와 함께 주일예배에서도 사도행전의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중심으로 이재훈 위임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였다.나 역시 온누리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이 교회를 창립하신 故 하용조 목사님이 생전에 강조하시던 "사도행전 29장을 써나가는 교회"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바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형편이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모델(사도행전 13:1-3)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6월 16일 주일예배에서도 양재온누리 강부호 담임목사님은 사도행전 12장 1~7절을 가지고 "하나..

공연 2024.06.17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결말을 AI가 맺는다면?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 를 은퇴 후에 다시 보고 나름대로 결말을 추측해 본 적이 있다.그런데 MS Copilot이나 Google Gemini 같은 인공지능(AI) 검색엔진은 나의 궁금증을 어떻게 풀어줄지 호기심이 발동했다.왜냐하면 생성형 AI 검색기는 인터넷 상의 수많은 영화 스토리와 결혼ㆍ이혼 같은 인간관계의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 학습했을 터이므로 영화 속의 주인공과, 그로부터 4년 만에 이혼서류를 전달 받은 텍사스 목장의 여주인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경쟁관계에 있는 Copilot과 Gemini가 이 문제에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알고 싶어졌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deep learning)을 한 후 AI 운영자..

영화 2024.06.06

故 신경림 시인을 애도하며

민중시인이라 불리우던 신경림 시인이 별세하셨다. 향년 88세.이 블로그에서도 고인의 시 여러 편 (돌 하나, 꽃 한 송이, 이태원 사건 당시의 갈대)을 영어로 번역한 바 있기에 고인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를 대표하는 다른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Poor Love Song    by Shin Kyeong-nim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 소리..

Talks 2024.05.27

고욤나무에 접 붙인 감나무

진안에서 감농사를 짓는 친구가 봄에 고욤나무에 접 붙인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뿌리가 실해야 하는데 척박한 땅일 수록 고욤나무 같이 생장력이 좋은 나무뿌리에 감나무 접을 붙여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었다.생각할 수록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순혈주의(純血主義, consanguineous marriage)가 자주 많이 행하여졌다.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유럽과 북미의 특권층에서는 사촌간의 결혼(first-cousin marriage)이 허용되고 권장되기도 했다. 자기네 가문, 혈통의 순수성을 지킴으로써 부와 권력, 종교를 오래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으로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는 장기간에 걸쳐 혈친 사이의 결혼을..

Talks 2024.05.01

꽃길만 걸으세요

"꽃길만 걸어라"고 말하지만과연 그게 축복일까?꽃길만 걷는다면예쁘고 진기한 꽃도 보고꽃향기도 그윽하겠지.하지만떠들썩 구경하는 사람도훼방꾼도 적잖을 거야.무엇보다도그 꽃길에서는 누가 물을 주며가루받이할 벌 나비는 어떻게 끌어 모을까!   지난 3월 말 강원도에 갔을 적엔 봄꽃이 아닌 눈꽃송이를 보아 전혀 뜻밖이었다. 그렇기에 강릉 경포호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로 떠났다.진부 오대산역에 내렸을 때 진부택시의 안희진 기사가 4월 14일까지 삼척 맹방리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고 귀띔해줬다.  근덕 IC로 나가면 도로변의 가로수 벚꽃도 아주 볼 만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아침 맑은 날씨임을 확인하고 처음 가보는 삼척 맹방리로 떠났다.  과연 삼척 근교의 맹방리에서는 벚꽃이 만발한 가로숫..

전시 2024.04.15

봄이 간다커늘 ‥‥ 서럽구나

꽃샘추위가 오래간다 싶더니 이내 봄기운이 온누리에 가득찼다. 잠시 지체되었던 화신(花信)이 일제히 당도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탓인지 전에는 일주일씩 간격을 두고 순차로 피던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거의 동시에 피고 지는 것 같다. 5월이 되어야 피던 라일락 꽃도 피어나 지금 '벚꽃 엔딩'을 함께 부르고 있다. 그렇기에 옛부터 시인은 가는 봄을 서러워말라고 일렀나보다. 봄은 낙화를 남기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餞送) 가니 낙화(落花) 쌓은 곳에 간 곳을 모르노니 유막(柳幕)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 They say spring is leaving, so I bring bottles of wine to see it off. From the..

Talks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