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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욤나무에 접 붙인 감나무

Whitman Park 2024. 5. 1. 16:55

진안에서 감농사를 짓는 친구가 봄에 고욤나무에 접 붙인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뿌리가 실해야 하는데 척박한 땅일 수록 고욤나무 같이 생장력이 좋은 나무뿌리에 감나무 접을 붙여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할 수록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같다.

 

*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 붙이면 감나무 작은 눈이 새로운 줄기로 성장하고 접수 가지는 흔적만 남게 된다. 사진제공: 유양수

 

역사적으로 보면 순혈주의(純血主義, consanguineous marriage)가 자주 많이 행하여졌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유럽과 북미의 특권층에서는 사촌간의 결혼(first-cousin marriage)이 허용되고 권장되기도 했다. 자기네 가문, 혈통의 순수성을 지킴으로써 부와 권력, 종교를 오래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으로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는 장기간에 걸쳐 혈친 사이의 결혼을 행하였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골품제도를 기반으로 한 신라는 성골(聖骨)을 유지하기 위해 왕족끼리 통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 폐해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자녀가 단명하거나 발달장애 등 각종 유전적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생물학적 지식이 없어도 경험상으로 근친혼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배우자는 멀리서 얻어야 한다는 믿음도 생겨났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근친혼이 이루어지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유전적 검사와 상담(genetic screening and counseling)이 널리 권장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교가 국민의 윤리의식을 지배하게 되면서 8촌 이내의 혈족 사이(민법 809조 1항)는 물론 동성동본인 경우에도 결혼할 수 없었다. 동성동본 결혼이 무효라는 민법 조항은 1997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2005년의 민법 개정으로 폐지되었다.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하더라도 이를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한 민법 규정은 2022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24년 말까지 개정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혼인 금지의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는 법무부 용역보고서 안에 대해 유림(儒林)에서는 사회 근간의 가족윤리를 해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 튀르키에 제작 대하드라마 〈위대한 세기 〉의 타이틀. 출처: Netflix

 

그와 반대로 신부를 납치하여 결혼을 하는 약탈혼(掠奪婚, marriage by capture)의 전통도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족이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층에서 성행하였다.

헝가리를 정복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쳐들어 갔던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Süleyman I, 1494 - 1566, 재위 1520 - 1566) 의 궁중비화를 다룬 Neflix 대하 드라마 "오스만 제국의 꿈"(Magnificent Century)을 보면 술탄의 하렘은 우크라이나 등 정복지에서 납치해온 젊은 여인들로 넘쳐났다. 쉴레이만은 하렘의 빨간 머리 록셀라나를 사랑한 나머지 오스만 제국의 관례를 무시하고 그녀를 황후(휘렘 술탄)로 책봉하기까지 했다.

 

구약 성경의 사사기 마지막 장인 21장을 보면 기이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세워지지 않았을 때 부족간의 갈등으로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베냐민 지파가 크게 패퇴하여 남자가 600명 밖에 남지 않았을 때 휴전이 성립하고 이 지파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책을 마련했다. 자기네들은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하였으므로 다른 길르앗 부족을 쳐서 처녀 400명을 포로로 잡아다 베냐민 남자들이 배필로 삼게 했다. 나머지 신부감은 실로에서 포도주 축제가 열릴 때 그곳에 춤추러 온 젊은 여자들을 납치하여 채우도록 했다. 아직 왕이 없어 하나님께 방법을 묻지도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했다(사사기 21:25)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비신자(非信者)와의 결혼을 어떻게 보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계보에 여리고 성의 창기 라합과 모압족의 여인 룻이 올라있는 만큼 민족이나 피부색을 가리는 것 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미디안 부족의 십보라를 아내로 맞았듯이 유대교나 기독교나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한 이방인(gentiles)이라고 하여 결혼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도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정략 결혼을 하면서 그네들의 신앙에 휩쓸려 여호와를 멀리하고 급기야 우상숭배를 한 것을 경계(신명기 7:4)할 뿐이다. 

 

다만, 기독교의 종파에 따라서는 근친결혼을 금하고 그들의 결혼식을 교회에서 올리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음악사적으로는 러시아의 작곡가 및 피아노 연주자였던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 -1943)의 결혼식 사례가 유명하다. 그는 고종사촌동생인 사티나(Natalya Satina)와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올릴 성당을 찾아봤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에서 율법으로 금지하는 사촌간의 결혼인 데다 그는 교회 출석도 잘 하지 않고 고해성사도 하지 않은 터라 성당 예식은 가망이 없었다. 신랑・신부(사진)가 모두 귀족 신분이었으므로 신부의 모친이 차르 황제에 탄원하여 황제의 재가를 받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병영 안의 군대 교회에서 1902년 5월 간단히 식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그리하여 많은 비가 내리던 날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수많은 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대 교회 안으로 입장하는 장면이 벌어졌던 것이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인 감나무에서 탐스런 감이 많이 열리는 것을 알아낸 농부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욤나무에서 열리는 고욤은 맛이 떫고 크기도 작아서 상품가치가 없다. 감나무는 병충해에 약해 많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고욤나무와 감나무는 같은 과(科)에 속하여 접이 잘 붙는다. 그러므로 봄에 생장력이 좋은 고욤나무 대목에 감나무 가지를 접목하여 맛좋은 감 열매를 많이 수확하는 것은 서로 윈-윈하는 관계이다. 각자의 비교우위, 장점을 살려 더 큰 성과를 올리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고욤나무에 접을 붙인 감나무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 하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근친혼과 약탈혼까지 생각이 미쳤다. 진안의 산골에서 감농사를 잘 지으려면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고욤나무도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에 비추어보면 일견 모순이 되고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지구라는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지켜내려면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성경 사사기 마지막 장에 벌어진 일, 즉 베냐민 지파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그들을 적대시하였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들의 집단결혼을 추진했던 사건도 수긍이 간다.

 

* John Everette Millais, "실로의 축제에서 처녀들을 잡아가는 베냐민 지파 젊은이들", 1847 (MutualArt.com)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 이후 선지자 사무엘로 하여금 베냐민 지파의 후손 중에서 인물 좋고 현명한 청년 사울을 찾아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우게 하셨던 게 아닐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온갖 피조물들에게 뭔가 존재의의를 부여하신 것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또 우리 인간에게 부과된 중대한 사명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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