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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

Whitman Park 2024. 3. 1. 06:30

정봉렬 시인이 새봄을 맞아 시 한 수를 보내주셨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니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영어로 옮기기 위해 여러 가지 표현을 시도해 보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봄이 오는 길   - 정봉렬

The Way Spring Comes Along   by Chung Bong-ryeol

 

봄은 길을 따라 오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 올 때도

뱃길 따르지 않고

산맥을 넘을 때도

바람에 몸을 싣지 않는다

 

봄이 오는 길은 따로 없다

언 땅 밑으로 흐르는 물에나

깊은 잠 속의 짧은 꿈에서도

아지랑이로 살아오고

만나고 헤어지는 정류장을

아무도 모른다

 

Spring doesn't come along the road.

Even when it comes across the sea,

It does not follow a sea route.

Even when it comes over the mountain range,

It does not ride the wind.

 

There is no way for spring to come.

In the water that flows beneath the frozen earth,

Or in a short dream in a deep sleep,

It has been living in the spring haze.

Where to meet or part with someone,

Nobody knows.

 

* 김원희, 봄. 사진 출처: 아산뉴스 2011. 3. 22.
* 봄 기운이 완연한 호숫가. 사진제공: 박하

 

왜 봄이 오는 길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것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봄이 와 있기 때문이다.

나무도 숲도 죽은 것 같이 보여도 어디선가 새싹이, 꽃봉오리가 움트고 있는 것처럼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 속에선 이미 봄맞이 채비가 되어 있다. 만나고 헤어지는 정류장이 필요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봄이 여름으로 바뀔 때, 또 여름이 가을로 바뀔 때에는 골방에 넣어두었던 선풍기를 꺼낸다거나 이부자리를 두툼한 것으로 바꾸는 등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봄은 바람결은 여전히 차가워도 지나칠 뻔한 나무가지에 움튼 꽃망울을 보고 새삼 깨닫게 된다. 

 

* 김원희, 봄 풍경. 사진 출처: 아산뉴스 2011.3. 22.

 

봄꽃의 대명사 격인 진달래, 개나리, 벚꽃은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특히 성질 급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 같다. 

전에 소개한 바 있는 "강 건너 봄이 오듯" 노래 가사에서도 앞 강에 살얼음이 낄 정도로 추위가 남아 있지만 강 건너 산에는 연분홍 (진달래) 꽃이 활짝 피어 있어 봄이 왔음을 노래하고 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 송길자 작시, 임긍수 작곡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성악곡이 서양에도 있다.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민요를 캉틀루브가 채보하여 연작곡으로 만든 "바일레로"이다.

봄이 되자 얼음이 녹은 계곡물이 불어서 위험하다며 목동을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소프라노의 고음 파트로 그처럼 길게 부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 로즐랑 호수의 풍경. 출처: Google maps.

 

그럼 우리의 가곡 "봄이 오면"을 들어볼 차례이다.

이흥렬 곡도 있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한 김동진 곡을 수원시립합창단(지휘 민인기)의 담백한 합창곡으로 들어보기로 한다. 

 

봄이 오면  - 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

When Spring Comes  - Words by Kim Dong-hwan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When spring comes, azaleas bloom in the mountains and fields.

Where the flowers bloom, my heart blooms too.

A young lady from across town comes to pick flowers.

Please, not just flowers, but my heart too.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When spring comes, a lark cries high in the sky.

Where the lark cries, my heart cries too.

Oh, herb picking lady, as you hear that sound,

Please, don't just listen to the birds, listen to my voice, too.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 꽃 되어서 웃어 본다오

I miss you when spring comes.

I'll be a lark and talk to you.

I'll miss you when spring comes.

I smile like an azalea flower.

 

* 사진 제공: 유양수

 

그러나 봄이 오는 길은 농부가 제일 먼저 알아본다.

그는 봄기운이 서린 밭에 나가 땅을 갈아업고 두엄을 뿌린다. 그리고 파종할 준비를 한다. 

예전처럼 소를 부리지 않고 그 대신 경운기를 운전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