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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간다커늘 ‥‥ 서럽구나

Whitman Park 2024. 4. 9. 16:00

꽃샘추위가 오래간다 싶더니 이내 봄기운이 온누리에 가득찼다.

잠시 지체되었던 화신(花信)이 일제히 당도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탓인지 전에는 일주일씩 간격을 두고 순차로 피던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거의 동시에 피고 지는 것 같다. 5월이 되어야 피던 라일락 꽃도 피어나 지금 '벚꽃 엔딩'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윤봉길 의사의 "장부가 집을 나셨으면 뜻을 이루기 전엔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지하철역의 흉상
* 양재 시민의 숲에서는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연초록 새잎이 돋고 있다.

 

그렇기에 옛부터 시인은 가는 봄을 서러워말라고 일렀나보다.

봄은 낙화를 남기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餞送) 가니

낙화(落花) 쌓은 곳에 간 곳을 모르노니

유막(柳幕)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

They say spring is leaving, so I bring bottles of wine to see it off.
From the piles of fallen flowers, I couldn't tell where spring had gone.
In the willow grove, a yellow bird said, "It left yesterday."

 

* 가는 봄을 열심히 화폭에 담고 있는 그림 동호회 회원들
* 양재천에는 낙화한 벚꽃잎들이 물길 따라 흘러가고(落花流水) 있었다.

 

요즘 시인들은 봄에 꽃을 보고 즐기는 것은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바람결이 따스해지면 봄꽃을 같이 볼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등을 떠미는 것 같다.

경제 원리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는 달리 함께 감탄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감동이 커진다는 '감동지수 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 봄 - 이채

Spring, the Season Hopefully to Meet Someone   by Ichae

 

봄은 꽃이 피고 

바람이 따스해서 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Spring is, because flowers bloom,
because the wind is warm -
It's the season when I want to meet someone.

소박한 삶의 가치를 알고 

한줌이라고 진실을 건네고 

봄비처럼 촉촉한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The person who knows the value of a simple life,
Hands out the truth by the handful, and
Makes a smile as moist as spring rain -
I'm waiting for such a person.

떠나가는 겨울 속에

묻어야 하는 하얀 이야기를

잠시라도 그것이 그리워

봄빛에 여린 눈물이 비치는

사람의 가슴에서

초록의 풀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Into the departing winter,
The white story that needs to be buried -
I miss it even for a moment.
Tears shine in the spring light
In a person's chest.
I want to smell the scent of green grass.

겨울을 떠나 보내고 

또 오는 봄을 맞이하고 

함께 떠나 보낸 것들을 채 잊기도 전에 

바람의 노래에 실려오는 봄

I want to leave winter behind, and
Greet the coming spring
Before I forget the things I have left together -
It's spring that comes in the song of the wind.

산다는 것이 어쩌면 

보내고 만나고 

그리고 또 보내야 하는 

그러나 결국 홀로 남겨지는 

쓸쓸한 것이라는 사실에도 

새로운 무엇을 만나고 싶어하는 

굴레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Maybe to live a life is
To see off and to meet
And again to see off,
But eventually being left alone -
It's a lonely thing.
What I want to meet something new may be
to repeat such a cycle for good.

계절의 꽃이 아름답고 향긋한 것은 

보내고 만나는 존재들 사이에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What makes the flowers of the season so beautiful and fragrant is -
It's because there is still love
Between those who see off and meet.

또 다른 계절이 오는 것이 반가운 것은 

떠나고 남겨진 것들 사이에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coming of another season is welcome is -
It's because there is still longing
Between those who have left and remained.

봄은 꽃이 피고 

바람이 따스해서 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Spring is, because flowers bloom,
because the wind is warm -
It's the season when I want to meet someone.

 

* 늦은 점심을 먹을 때 창밖으로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 청계산이 바라다 보였다.
* 가는 봄을 서로 이야기할 말벗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것을 . . .

 

문득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윤봉길 의사의 "丈夫生不還"이란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양재천에서 '떠나가는 봄'을 만났던가?

낙화유수(落花流水)에 떠나는 봄, 남아 있는 봄, 다가오는 초여름도 다 보았다.

그러나 이 계절의 순환을 혼자만 보고, 또 맛있는 식사도 혼자서 한다는 게 뭔가 부족하고 서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까 양재천변에서 그림을 그리던 여인들 역시 그림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끝난 뒤에 함께 식사하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면 멋있는 풍경을 사진 찍어가지고 집에 가서 화면을 보면서 그려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 우리 아파트 단지에 만개한 라일락 꽃

 

그런데 막상 집에 당도했을 때에는 그윽한 향기에 먼저 취했다.

피천득의 시 " 창밖은 5월인데"에 나오는 라일락 꽃이 한 달 앞서 만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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