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롯데에서 열리는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롯데 민속박물관을 찾아 갔다.
마침 시간여유가 있어 3층 엘리베이터 홀 앞에 있는 금아 피천득 기념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하면 그의 수필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기에 '인연', '5월', '청자 연적(靑瓷硯滴)', '파격' 같은 말부터 연상되곤 한다.
그런데 식민지 시대와 건국 시기를 살았던 지식인이자 영문학자로서 그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아파트 크기의 전시실에는 그의 전 생애가 일목요연하게, 또 아기자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유명 인물의 기념관을 나름대로 많이 찾아다닌 바 있다. 얼핏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조지 워싱턴(Mount Vernon), 더글러스 맥아더(Norfolk), 아이젠하워(Denison, Gettysburg), 요하네스 브람스(Vienna) 등인데 모두 그들이 오래 살았던 집 같이 연고(緣故)가 있는 곳이었다. 금아 기념관처럼 재벌 기업의 어드벤처 몰에 마치 보물 찾기하듯이 차려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금아 선생과 롯데 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우선 금아(琴兒)란 아호는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피천득의 집안은 대대로 의원(醫員)을 지내며 부를 축적한 서울의 엄청난 땅부자였다는데 일찍 부모를 여읜 피천득에게 춘원은 거문고를 즐겨 탔던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라고 당부하면서 상하이로 유학 가는 것을 추천했다.
피천득은 춘원의 말을 따랐다. 실제로 그는 상하이의 명문 호강(滬江)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도산 안창호 같은 애국지사를 만났다.
또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평생 어머니, 아사코[1], 서영이[2] 같은 여성성(女性性)[3]을 찬미하는 글을 많이 썼다.
금아 선생의 자택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코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창문은 바깥 풍경이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 놓아 책을 보시던 선생님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시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고증을 거쳐 꾸며 놓은 것이겠지만 서가와 사진, 장식품은 선생의 기호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이것만 가지고도 1960~70년대 대학교수 자택의 서재를 실감할 수 있게 해놓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생의 아주 소박한 침상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온돌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자는 게 보통이었는데 오랜 해외 유학생활의 영향이랄까 일찍부터 침대 생활을 하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코너에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금아 선생의 시 몇 편이 벽에 걸려 있었다.
"창 밖은 오월인데"란 시는 아마도 공부 잘하는 따님 서영이가 꽃 피는 계절임에도 방안에 틀어박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워 쓰신 것이라 짐작되었다. 서정적인 문학인으로서 안타까운 부정(父情)이 느껴졌다.
창밖은 오월인데 - 피천득
It's May Outside the Window by Pi Chun-deuk
라일락 꽃길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美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아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2]도 너도 고행의 딸.
*출처: 피천득 시집, 창밖은 오월인데, 민음사, 2018.
Lilac flower road over there,
It's May outside the window.
You are solving calculus problems.
It's a moment too good to paint even a picture.
The lilac scent is getting stronger.
But you don't know it yet,
That the shape of lilac leaves is like a heart.
We call mathematics crystal-like beauty.
It's a joy higher than passion.
But math is more like the mother superior of a convent.
Roses bloom from thorns.
But a 'computer' has no smile.
Marie Curie and you too are daughters of asceticism.
그러다가 그 다음 코너에서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금아 선생이 사랑하는 딸 서영이가 입었던 옷, 그녀가 가지고 놀았던 서양 인형이 곱게 놓여 있었다.
딸이 다 성장하도록, 해외 유학을 떠나 있는 기간 중에도 '서영이 동생 난영이'라 이름 붙여 놓고 애지중지 보살폈을 금아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제로 그녀는 미국에서도 인정 받는 물리학자가 되어 아버지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2]
짧은 시간 피천득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현재의 '나'와 비교해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학자가 논문이나 저술, 학계에 발표한 이론 같은 학문적 업적이 아닌 것으로도 평가를 받을 수 있구나.
* 나는 은행원으로 21년, 대학교수로 19년을 보내면서 해외 생활 등 남보다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는데 이 같은 기록물로 남길 만한 게 무엇이 있는가.
* 나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추념(追念)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 왔는가.
* 금아 선생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영문학자 중에 따로 기억할 만한 분은 누가 있던가. "신록 예찬"을 쓴 이양하 교수, 수많은 영미 소설을 번역 소개한 장왕록 교수 등?
* 금아 선생은 단독주택에 살면서 이사를 다니지 않으셨기에 기념관을 꾸밀 정도의 오래된 물건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나보다.
Note
1] 아사코는 피천득이 젊어서 만났던 일본 여성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첫사랑의 상대는 아니었다고 한다. 마침 기념관의 한 코너에서 금아 선생의 육성을 들려주는 방송대담이 들렸다. 진행자가 아사코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선생이 이렇게 답했다.
"오래 전 친구나 은사를 만나게 해주는 KBS TV 프로의 담당자가 내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를 일본에 가서 찾아냈다는 거야. 만나보겠냐고 묻길래 '절대로 안돼'하고 거절했지."
이것은 '첫사랑은 만나보면 실망'이라는 속설을 입증한 것이라기보다 금아 선생이 '인연'이라는 주제에 맞게 수필을 쓰다 보니 독자들에게 다소 과장되어 전달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2] 피서영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마치고 미국 NYU 스토니브룩에 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대 물리학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피천득의 장남 피세영은 7080세대의 사춘기 시절 라디오 팝송 프로 DJ로서 인기를 끌었으며, 차남 피수영은 서울의대를 나와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과장, 울산의대 교수로서 이름을 떨쳤다. 피서영이 MIT 교수 로먼 재키브와 결혼하여 낳은 스테판 재키브는 하버드 대를 나온 바이올린 영재로서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앙상블 DITTO를 결성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3] 피천득은 그의 나이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기에 바르고 지혜로운 여성으로서 모친과 영특한 딸 서영이가 대표하는 여성성을 존대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솔선하여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금아 선생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60은 넘길 수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너무 멀리한 나머지 90까지 살게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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