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꽃 한 송이 드리리다

Whitman Park 2023. 11. 29. 23:30

연말연시를 맞아 친한 친구나 지인들에게 보낼 연하장에 새해 복을 빌어주는 어구(Season's greetings)는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친구가 황금찬(1918~2017) 시인이 임술년(壬戌年 1982)을 맞아 독자들에게 축복을 전하였던 시 한 편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엔 말 그대로 생화(生花) 한 송이를 선물 받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어로 옮기면서 곱씹어 볼수록 내가 받고 싶은 꽃 한 송이는 과연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 서울 시내 모 호텔 日식당 앞에 놓인 산앵두꽃(아스라지) 화분

 

꽃 한 송이 드리리다  - 황금찬

A Flower for You  by Hwang Geum-chan

 

꽃 한 송이 드리리다.

복된 당신의 가정

평화의 축복이 내리는

밝은 마음 그 자리 위에

눈이 쌓이듯 그렇게 --

A flower for you.

Blessed be your home

Where the blessing of peace falls

On the place of your bright heart

Like snow piling up on the ground . . .

꽃 한 송이 드리리다.

지금까지 누구도

피워본 일이 없고

또한 가져본 일도 없고

맑은 향기 색깔 고운

I'll give you a flower.

No one has ever

Made it bloom before,

Nor has anyone ever held it

With clear scent and fine color.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밀고

계절이 놓고 가는 선물처럼

Quietly,

With no one noticed

Pushing open the door of your heart

Like a gift seasons have left behind.

 

잎이 살고

줄기가 살아나며

죽어가는 뿌리,

그리고 기후도 살게 하는

신기한 꽃

The leaves are restored,

The stem stays alive.

Dying roots, and

Climate will be revived.

It's an extraordinary flower.

어린 행복 위에

성장한 정신 위에

가난한 금고 안에

땀 흘리는 운영 위에

꽃이여, 피어나라

Upon young happiness,

On a growin-up spirit,

In a poor safe,

Over sweaty operations,

Bloom, flower, bloom.

임술년

새날 아침부터

이해가 다하는 끝 날까지

피기만 하고

언제나 지는 날이 없는 꽃

In the Year of Imsul,

From the New Year's morning

Until the end of this year,

Only blooming,

The flower never fades.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 또한 높아

하늘의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그 꽃 한 송이를

축원의 선물로

드리렵니다

The most beautiful flower in the world, and 

Highly fragrant one,

The angels of heaven envy

That one flower.

As a gift of blessing

I'd like to give it to you.

 

처음에는 연인들이 주고 받는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연상했다.

그러나 이맘때면 꽃이 절정에서 내려온  국화, 향기 좋은 프리지아 꽃 또는 풍성해 보이는 안개꽃다발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꽃송이를 연상하다가 진심으로 축복(祝福, Blessing)을 가득 담아 전해주고 싶은, 맑은 향기 색깔 고운 꽃이란 받아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말' 또는 '마음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시인은 그리움 같은 상념이나 관념어를 눈에 보이는 듯한 이미지로 바꿔 보여주는 데 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움은 일견 바람과 나무, 파도 같은 말과 한참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시인이 詩로 엮어놓으면 그 이상으로 표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 구름을 빠져나온 보름달은 어떤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가? 

 

* 11. 27 낮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하늘이 밤이 되자 밝은 보름달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움  - 황금찬

Longing by Hwang Geum-chan

 

바람이 불어도
눈뜨지 않는
나무여.

Even when it's windy,
It wouldn't open its eyes.
A tree's here.

파도로 출렁이는
그리움으로
네 앞에 서 있다.

Out of longing
Wavering in waves,
I'm standing in front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