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릉에 공공미술관이 산뜻한 모습으로 개관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바로 강릉 市가 솔올('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 지구에 아주 멋있는 솔올미술관(Sorol Art Museum: S를 고딕체의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 5OROL AM)을 세운 것이다.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가 설계하고 4년 여의 준비 끝에 높은 언덕 위에 순백색의 건물이 들어섰다.[1]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현대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보여주고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개관전(2024. 2.14 ~ 4.14)으로 아르헨티나 출신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의 공간주의(Spatialism) 대표작들이 전시[2]되고 있다기에 주말에 표를 예매하고 찾아갔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미술과 조각을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한 루치오 폰타나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전통적인 예술을 극복하여 새롭고 다차원적인 미술 형식을 제안했다. 1946년 백색선언을 발표하고 그 이듬해 ‘공간주의(Spatialism)’를 선언하였는데, 화폭에 칼자국을 내거나 구멍을 낸 3차원 작품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솔올미술관 개관 전시회는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을 주제로 1947년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문’ 발표 이후 제작된 대표작 21점을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회화 작품인 ‘베기(Tagli)’ 연작, 캔버스에 구멍을 뚫은 ‘뚫기(Buchi)’ 연작, 돌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을 베거나 뚫은 ‘자연(Natura)’ 연작을 감상할 수 있다. 2층 제3 전시실에서는 폰타나와 작품 경향이 비슷하고,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화가 곽인식(郭仁植, 1919 ~ 1988)의 작품을 'In Dialog'라는 제목으로 전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근자에 드물게 모든 전시실에서 사진촬영을 일체 금지하였다. 그리고 2층의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나 덧신을 신게 하였다. 주최 측의 설명은 없었지만, 사진을 찍거나 신발을 신고 다니며 감상하는 것이 전시작품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모든 전시물 자체가 예술작품이기 때문인지 이것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인 것처럼 여겨졌다.
다른 전시회와는 달리 사진을 남긴 게 없고 전시작품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웬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1층 로비에 앉아 카페 라떼를 마시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벽체 없이 시원하게 뚫린 전면 유리창 밖으로 강릉시의 외곽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보였다.
이렇게 빌려온 경치(한국 정원의 특색인 '借景'이라 함) 자체가 솔올미술관의 자랑거리 전시작품이라 할 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술관 현관 앞이나 1층 로비는 젊은 남녀 미술 애호가들로 넘쳐 났다.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주변을 왔다갔다 하니 마치 대학 캠퍼스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직 조경 공사가 진행 중인 미술관 뒤 정원으로 나갔다.
바로 앞에 뒷뜰의 수문장인 양 아주 커다란 배롱나무가 서 있었다. 옛날 서원 앞에도 일편단심의 상징인 붉은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어놓곤 하였다.
해자(垓子)처럼 물을 채운 얕은 수반(水盤) 둘레에 배롱나무와 여러 조경수, 잔디가 심어져 있었다. 원경으로 솔밭이 펼쳐져 있으므로 새봄을 맞아 여기저기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3] 미술관 건물 자체가 조만간 시민들의 힐링 파크로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였다.
Note
1]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하였으며,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로스앤젤레스 게티 뮤지엄(1997) 등을 설계했다.
2] 개관전 소개 팜플렛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KORICA)의 기획과 루치오 폰타나 재단(Fondazione Lucio Fontana)의 협력,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Ambasciata d'italia Seoul),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Istituto Italiano di Cultura di Seoul)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3] 내일 모레가 4월임에도 강원 산간 지방에는 폭설이 내렸다.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好雨知時節) 봄이 되어 내리네(當春乃發生)"라고 했는데 두보가 살았던 고장에서는 겨울에도 눈이 오는 곳이 아니기에 눈(雪)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해마다 발생하는 산불이나 봄 가뭄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봄 소식을 볼 수 있으려나 찾아간 평창(대관령면)에서는 산마다 흰눈이 쌓여 있고, 자정 무렵이 되자 풍력발전기 서 있는 산등성 위로 하현달이 솟아 올랐다. 알펜시아 리조트에서는 스키장 문을 닫았다가 개장 이래 처음으로 3월 말임에도 시즌 마지막 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스키장을 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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