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음식점에 가면 내 앞에 놓인 음식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아도 간혹 블로그에 음식 사진을 올려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언제 어디서고 마음놓고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폰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 중에서 따로 표시를 해놓은 것도 아닌데 '음식' 사진만 골라내는 AI 기능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마침 내가 즐겨먹는 호박죽에 관한 시를 영어로 옮기게 되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감동적이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식구들 몫까지 / 식탁 가득 붉은 호박죽 / 우주로 창을 낸 저녁이다"
잘 익은 단내와 구수한 맛을 풍기는 호박죽을 이 자리에 없는 식구들 뿐만 아니라 창문을 통해서는 우주의 생명체들과도 공유한다니 얼마나 자비롭고 스케일이 큰가!
호박죽(粥) - 김복연
Pumpkin Porridge by Kim Bok-yeon
늦여름 저물녘 호박죽을 끓인다
부엌창에 내린 노을
겉보다 속이 더 붉은 노을 한 자락
쓰-윽 베어다 죽 솥에 넣은 것 누가 알까
하늘 한 귀퉁이가 풀어지고 엉키고
붉게 솟구쳐 올라
나무주걱 쥔 내 손도 붉고
몰려드는 어둠 죽 솥에 눌어 붙을까
걱정하시는 칠순 어머니도
한 십 년은 붉은
잘 익은 단내가 온 집안 진동이다
마당가에 엎드린 개와
어깨 갈기에 앉은 어스름 손질하던 나무도
지금은 다 부엌 쪽 향해 경배 중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식구들 몫까지
식탁 가득 붉은 호박죽
우주로 창을 낸 저녁이다
Pumpkin porridge is made at sunset in late summer.
The sunset glowing through the kitchen window,
The sunset which is redder on the inside than the outside,
Who knows what I put in the porridge pot?
A corner of the sky was unravelled and tangled.
The red one rises up sporadically.
My hand holding the wooden spatula is red too.
I’m afraid the rushing darkness could be pressed into the porridge pot.
My seventy-year-old mother worries too.
It must be the ten-year old red one.
The ripe sweetness vibrates through the whole house.
The dog lying down in the yard, and
The dusk-trimmed tree sitting on its shoulder mane.
Now they're all worshipping toward the kitchen.
For the family members who haven't returned yet,
Red pumpkin porridge has been prepared on the table.
It'll be a dinner with a window toward the universe.
그 동안 맛있게 먹었던 음식 사진을 TPO (시간, 장소, 상황)를 되새기듯 여기 올리기로 한다.
물론 사진만으론 그때의 분위기나 음식 맛을 전하기 어렵다. 하지만 폭염 속에 외출하기도 어려운 터에, 특히 다시 가보기 어려운 해외 음식점이야 사진이 최선의 솔루션이다.
무엇보다도 요즘같이 무더울 때에는 막국수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거나 비빔냉면, 중국냉면을 찾게 된다.
복날에는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먹기도 하고 생선 매운탕의 매운 맛으로 땀을 흘리며 더위를 쫓기도 한다.
그러나 사철 변함없는 맛은 전주 콩나물국밥이나 소호정의 사골 칼국수를 따라갈 음식이 없는 것 같다.
한국 사람 치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만, 여기 소개하는 대관령 김치찌개집은 여러 모로 특색이 있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IC 출구에서 24시간 문을 열고 있는 이 음식점은 메뉴가 김치찌개 한 가지인데 주인장은 훨씬 고가의 레드와인 추천 리스트를 벽에 붙여놓았다. 반찬이라고는 전주 거꾸로콩나물 무침과 감자 한 알뿐이다. 그럼에도 2년간 숙성시킨 묵은지와 각지게 썰어놓은 삼겹살이 어우러져 끓인 김치찌개 맛은 어디 비할 데가 없다.
그 맛은 아주 오래 된 순대국밥집에서 인심 좋게 돼지고기와 순대를 많이 넣고 푸욱 끓여서 내놓는 순대국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들깨가루와 후추가루를 적정량 투하하면 더 쌈박하고 감칠 맛이 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대관령은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근대적인 레저 스포츠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본래 고랭지 채소와 겨울철 스키로 유명한 곳이지만 요즘처럼 무더울 때에는 해발 700m 고지의 시원함을 찾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전지훈련 온 운동선수들이 많이 눈에 띈다.
대관령 찬바람에 건조시킨 황태를 넣고 끓인 국밥도 맛있지만 아주 이색적인 음식이 우리의 발길을 끈다.
그것은 타지 않는 석쇠에 구운 돼지고기를 온갖 산채와 특수 소스로 버무린 야채 무침과 함께 만두피처럼 얇은 메밀전병에 싸서 먹는 그 맛이 일품이다. 대관령 자연애라는 음식점에서만 그 맛을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스태미너식을 먹기로 한다면 돼지 족발이 우리의 입맛을 돋군다.
비용을 업그레이드 할 경우에는 스테이크용 등심을 전복 새우와 함께 불판에 구워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그 칼로리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어 특별한 오케이전이 아니면 시켜 먹기가 주저되는 음식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이런 견지에서는 오마카세로 먹는 모듬회가 우리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일식점 주방장은 미적 감각이 뛰어 나야 할 것 같다.
생선회를 색색깔로 구비하여 거기에 어울리는 받침 위에 올려놓을 뿐만 아니라 화룡점정이랄까 센스 있게 서양난 꽃잎을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짐하고 맛있기는 한식 요리의 모듬전을 따라갈 음식이 없을 것이다.
소고기 육전 뿐만 아니라 흰살생선에 튀김가루를 입혀 튀기고 고추, 호박, 깻잎, 양송이도 같은 방식으로 튀김을 만들어 둥근 접시에 올려놓으면 어느 잔치상도 부럽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디저트 후식도 녹차 아이스크림과 단팥떡, 과일이 어울린다고 하겠다.
지금부터는 지난 5월 이탈리아 여행 중에 먹었던 이태리 음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패키지 투어였던 만큼 메뉴를 직접 고를 수는 없었으나 각 지방의 천연 식재료로 만든 고기와 생선, 채소가 점심, 저녁 때면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 같았다.
전식으로는 피자나 파스타, 리조토가 나왔고 메인 디시는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이 번갈아 가며 테이블에 올랐다.
후식은 거의 일률적으로 티라미슈가 나왔다. 티라미슈는 베니스 옆 운하도시 트레비소의 한 음식점에서 나온 이태리 국민 디저트이다. 주방장이 유리 컵에 액체 성분이 많은 케이크를 담고 그 위에 커피 가루를 뿌려 달콤함과 고소함, 씁쓰레한 맛을 냈던 것이 사람들의 호평을 받아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으로 가는 국적기에서 먹었던 제육볶음 쌈밥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이다.
제육볶음이야 그렇다 쳐도 여러 채소를 골고루 담아 쌈장과 함께 억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는 지금은 인기가 수그러들었다지만 하늘 위에서 먹는 비빔밥을 능가한다고 여겨졌다. 그때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하여 와인과 함께 콜라를 청하여 식후에 입가심으로 마셨다.
귀국할 때도 그와 같은 쌈밥이 나오려나 기대했지만 로마발 항공편에 싱싱한 야채를 조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는지 일반적인 소고기와 닭고기로 만든 기내식이 나왔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먹었던 티라미슈 디저트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번갈아 마신 일이었다. 아메리카노는 뜨거운 것도 아이스를 넣은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 잘 먹는 게
삶의 보람
Eating well good food -
What can replace it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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