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갤럭시폰 S-22에도 인공지능(AI)의 여러 기능이 새로 추가되었다.
그 전에도 트리밍, AI지우기 등을 즐겨 사용했는데 사진 속의 인물만 빼내는(抜/ぬき) 기능을 써서 다른 배경사진 속에 넣는 콜라주(photo collage)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많이 찍어놓았음에도 거기에 어울리는 피사체(사람이나 반려동물)가 없어 어디 내놓지 못하고 있던 사진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위의 사진도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지만 여인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해지는 들녘 풍경이 왠지 스산해 보이다가도 묘령의 여인이 등장함으로써 갑자기 활기를 띠고 오만 가지 스토리가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What's interesting?
지난 8월 해운대에 놀러가서 테양이 작열하는 멋있는 풍경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해수욕장이니 비키니 입은 멋진 여성이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치한(癡漢)으로 몰리기 십상이고 설령 좋은 앵글로 찍었다 해도 초상권 침해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돈 주고 모델을 쓸 수 있는 형편도, 또한 그럴 계제도 아니므로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YouTube를 통해 갤럭시폰의 콜라주 기능을 알게 되었고 해운대 비치 사진과 애교 만점의 비키니 걸을 합성해 보았다. 결과물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태양의 각도나 인물과 배경의 조화도 그럴 듯해 보였다.
사실 철 지난 해운대 비치에서 나같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가고는 있었지만 무엇이 이곳을 와이키키나 칸쿤 같이 유명한 비치임을 보여줄 것인가! 그것은 애교 만점의 비키니 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합성 사진인 줄 알아차리겠지만 재미있는 사진이라고 웃으면서 보아넘기지 않을까?! [1]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잘 그렸는데 . . . . 내 그림 속에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정적이라고 하던 심사의견이 생각났다.
앞으로 언제 기회가 있을 때 유화나 수채화로 그려보고 싶은 풍경이 있으면 지금도 예외 없이 카메라에 담아 놓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진에는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에 블로그에 올리지 못하고 사장(死藏)해두기 일쑤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10월 초 여의도 세계불꽃축제에서 온갖 종류의 폭죽이 터지면서 형형색색의 그림을 밤하늘에 수를 놓았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려면 사진을 찍어놓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그 정지된 순간의 사진은 너무 밋밋하고 단조롭다. 여기에 다정한 커플이나 매력적인 여성이 화면 속에 나온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디카폰 갤러리에 들어 있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나 SNS에서 화면캡쳐한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콜라주의 후보가 될 만한 인물사진을 스티커로 따로 저장해 놓았다.
What's the problem?
마침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고층 건물에서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여성의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람이 들어가면 불꽃 사진을 찍는 각도나 촬영자의 위치가 자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여름에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길을 보는 서양 여자의 사진을 SNS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스티커로 만들어 불꽃이 터지는 사진 위에 놓고 크기와 각도를 이리저리 조절해 보았다. 강변의 아파트 창문의 불빛을 가릴 수 있게 구도를 잡았으나 여성의 시선이 불꽃을 향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 갤럭시폰의 스티커는 좌우를 바꾸는 기능도 있지 않은가! 만일 이것을 포토샵으로 일일이 고치기로 한다면 몇 시간 걸릴 텐데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마음 먹은 대로 수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국(時局)이 시국인지라 사진을 합성하는 것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연일 신문에서는 딥페이크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왔기 때문이다.[2]
대형 IT기업들이 자체 포털에서 딥페이크 사진을 곧바로 삭제하지 않고 있다는 둥, 중고교 교사들이 딥페이크 악용이 우려되어 학교 졸업 앨범 사진을 찍거나 자기 사진을 올리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등의 기사를 매일같이 내보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올해부터 교사 사진 대신 만화로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를 싣기로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비록 내가 선의로 합성사진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해도 자칫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살 우려가 커진 것이다.
그래서 새로 재미를 붙인 콜라주를 그만 두기도 뭣하고 신중한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을 거쳐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1]
What to be cautious
개인 블로그에 합성한 사진을 올릴 때 주의할 점
# 영상 촬영물에 어린이나 연예인, 스포츠선수, 정치인 등 공인(public figure)이 나오는 것은 피할 것
# 공인(公人)의 사진을 실어야 할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를 받도록 할 것
# 해당 인물에게 모욕을 주거나 괴롭힐 의도(intent to defame or harass)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영상은 배제할 것
# 필요에 따라서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Midjourney 등 AI 도구로 생성한 모델 이미지를 쓸 것
# 누가 되었든지 해당 인물이 성적 수치심(sexual humiliation)을 갖거나 그에 대한 성적 욕망(sexual desire)을 자극하는 것은 절대로 올리지 말 것
요컨대 어린이나 유명 인사의 사진은 일체 올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성적인 느낌을 갖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후자의 기준은 인터넷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준(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보다 약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진 자체에서 또는 기사의 문맥상 합성사진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사진 캡션에 이 점을 밝히기로 했다.
What's the story?
비주얼의 시대라고 하지만 안구정화(眼球淨化, eye purifying?)용 사진이나 늘어놓는다면 그건 엉터리 화보집일 뿐이다.
뭔가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 그림을 본 심사위원들이 "어린애답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그림에 나타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파리 여행 때 화재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노트르담 사원 앞에서 찍은 사진도 '나도 거기 가보았다'는 일종의 기록으로서의 의미밖에 없다. 뉴스에 나오는 보도사진이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한 안타까운 표정의 사람의 모습을 사진 속에 배치한다면 여러 가지 스토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몇 년 후에 와야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 오늘날의 기술로 제대로 옛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첨단기술(state-of-the-art)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
- 빅토르 위고 역시 이곳에서 곱추 집사가 종을 울린 것을 상상하며 소설을 썼다지. 화재 사건 후에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 오늘날에는 에스메랄다가 어떤 직업의 여성으로 등장해 뭇 남성의 애간장을 태울지 자못 궁금해졌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첫 머리에 나오는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s, 노래 노윤)를 아니 들어볼 수가 없다.
Note
1] 사진합성(photo collage)은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합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그 기법이 비교적 단순하여 주의해서 보면 합성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AI)을 써서 정교하게 사실적인 이미지나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얼굴표정이나 말투, 동작을 주의깊에 관찰하더라도 조작한 것임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합성사진과 딥페이크의 차이점은 비교적 명료하여, 만든 사람의 의도(intent)가 대상인물을 해치거나 성적 욕망을 자극하려는 것인지, 주제(subject matter)가 제작자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지, 결과물로 인하여 해당 인물이 해로운 영향(impact)을 받게 되는지, 아니면 일반공중을 이롭게 하는 공익(public interest)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2] 그동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나 지인 능욕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이러한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여기에는 해당 포털 사이트의 늑장 대처, 단순 소지 처벌 불가, 솜방망이 형량 등 처벌규정의 미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지금까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에 따라 "반포 등을 목적으로 피해자 동의 없는 영상 촬영물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도록 편집‧합성‧가공하거나, 동의 없이 반포했을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 조항은 2020년 6월부터 시행됐지만 단순 소지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반포가 목적이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기소된 71건 중 절반에 가까운 35건이 집행유예에 그쳐 실제 처벌도 약하다는 말이 많았다.
이에 국회는 지난 9월 26일 본회의를 열고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만든 성착취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정형도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되었다. 개정법률은 10월 16일부터 시행된다.
P S
사후관리의 철저를 기하기 위해 합성사진이 들어간 인터넷 사이트 목록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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