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꽃길만 걸으세요

Whitman Park 2024. 4. 15. 09:00

* 경희대 서울 캠퍼스에서 벗꽃은 이미 졌고 붉은 겹벗꽃이 한창이었다.

 

"꽃길만 걸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게 축복일까?

꽃길만 걷는다면

예쁘고 진기한 꽃도 보고

꽃향기도 그윽하겠지.

하지만

떠들썩 구경하는 사람도

훼방꾼도 적잖을 거야.

무엇보다도

그 꽃길에서는 누가 물을 주며

가루받이할 벌 나비는 

어떻게 끌어 모을까!

  

* 대관령을 지나 영동 고속도로 변에는 여전히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지난 3월 말 강원도에 갔을 적엔 봄꽃이 아닌 눈꽃송이를 보아 전혀 뜻밖이었다. 그렇기에 강릉 경포호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로 떠났다.

진부 오대산역에 내렸을 때 진부택시의 안희진 기사가 4월 14일까지 삼척 맹방리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고 귀띔해줬다.  근덕 IC로 나가면 도로변의 가로수 벚꽃도 아주 볼 만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아침 맑은 날씨임을 확인하고 처음 가보는 삼척 맹방리로 떠났다.

 

 

과연 삼척 근교의 맹방리에서는 벚꽃이 만발한 가로숫길 옆 너른 밭에 샛노란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이것을 보러 온 승용차와 관광버스들이 도로변에 줄지어 서있었다.

우리도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사장으로 갔다.

 

* 눈길을 주는 곳마다 유채꽃이요 벚꽃, 그리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밝은 미소가 활짝 피었다.
* 유채밭 가장자리에는 두릅 새 순도 돋아났다.
* 지역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자랑 무대의 초청가수 공연
* 맹방 유채꽃 축제에서는 남미 인디오의 전통음악도 흘러나왔다.

 

소란스럽고 붐비는 축제 행사장을 벗어나 이제 절정이 지난 가로수 벚나무를 한 번 올려다 보고 맹방리를 떠났다.

여기까지 왔으니 삼척 추암 촛대바위를 볼 차례였다.

마침 동해 킹크랩 마을에서 크랩킹 페스타가 열려 역시 많은 사람이 몰려와 있었다. 그러나 동해 해변의 바닷가에는 촛대바위 같은 기암괴석을 보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 삼척항 진입로 산 위의 야생 벚나무 숲
* 삼척 추암 촛대바위 입구
* 관동8경의 하나로 애국가 동영상의 일출장면에 자주 등장했던 추암바위
* 삼척 추암 해변 둘레길의 출렁다리

 

그 이튿날 어제보다 시계(視界)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하늘은 아주 맑았다.
당초 계획했던 경포호반의 벚꽃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서울 경희대 캠퍼스나 여의도의 벚꽃은 이미 진 뒤였으므로 긴가민가 하는 심정이었다.

 

* 경포호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위치한 경포대 누각
* 경포호 호반에서는 4륜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가족 나들이객이 많았다.
* 강릉 스카이베이 호텔을 배경으로 만개한 경포호의 벚꽃. 사진제공: 박윤재
* 경포호에서 북강릉 IC로 가는 길목의 벚나무 가로숫길

 

촛대 바위를 보고 나오는 길 북평산업단지  L사의 케이블 공장에 우뚝 서 있는 타워가 눈에 띄었다.

해저에 설치할 長케이블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런 이색적인 고층 타워가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바닷속 장애물이나 어류의 공격, 높은 수압도 견뎌낼 수 있고 수 킬로씩 끊김 없이 장거리를 시공해야 하는 케이블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극한 조건에서 테스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해안지대에 100m 가까운 창문도 없는 타워형 건축물이라니~?

 

강릉 강문해변 백사장에 앉아서 잔잔한 바다 물결을 멍 때리며 바라보았다.

나도 팬데믹 이후에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멍 때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옆에서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볼 때 그들의 넘치는 젊음이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 젊은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모터보트를 타고, 두 젊은 남녀는 곡예사 같은 포옹을 하였다.

 

연속 이틀 꽃길만 걷다가 (드라이브 포함) 젊음의 활력(energy, vitality)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젊은이에게는 꽃길만 걷는 기회를 주어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가 백영옥 씨가 쓴 글이 생각났다.

 

빛이 환하면 그림자가 짙다. 입에 쓴 약이 효과가 큰 것처럼 말이다. 마감이나 발표 날짜가 여유로우면 더 좋은 결과를 낼까. 그렇지 않다. 시간, 인원, 날씨, 비용 같은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촉발할 때도 많다.

타노스 없는 어벤저스를 상상할 수 있을까. 조커 없는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건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세심히 헤아려야 한다. 사계절 내내 피어 있는 꽃은 없다. 꽃길만 걷자는 말은 판타지다.

삶에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만 이어지면 땅은 사막이 된다.  출처: 조선일보, "꽃길과 사막", [백영옥의 말과 글  284], 2022.12.31.

 

맞는 말이다. 

나같은 은퇴한 사람 말고 젊은이들에게 "꽃길만 걸어라" 하는 것은 축복(blessing)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나아가라고 격려(encouragement) 해줘야 한다.

그런 빈 말보다는 힘을 낼 수 있는 맛있는 밥을 사주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만일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사도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며(사도행전 14:22) 꽃길이 아님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 삼척횟집에서 먹은 가성비 좋은 물회 백반. 고등어구이, 튀김에 디저트용 떡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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