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시골에서 감 농사를 짓는 친구가 단톡방에 한 편의 시(詩) 같은 글[1]을 올렸다.
간밤에 내린 보슬비에 풀섶에 맺힌 물방울이 수천 수만의 수정(水晶) 꽃 같다고 여러 장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장마철에 동이 트기도 전에 일을 나선 친구가 시인과 같은 감성으로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해 준 것이 고마웠다.
친구는 제초를 뿌려놓은 풀섶에 맺힌 물방울들이 마치 수정 꽃이 핀 것 같다고 하면서 아침 햇살이 비치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아름다운 것들"[2] 가사의 한 소절도 덧붙였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데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그런데 제초제가 뿌려진 잡초들은 이내 고사할 것이고 풀잎에 맺혀 있는 물방울들도 아침이 되면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릴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아침 이슬이 그러하고, 아침 안개, 하늘에 뜬 구름이 그러할 것이다.
선인들도 우리 삶이 초로인생(草露人生: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인생)이라고 하였다.
똑같이 잠시 후에 사라질 자연현상이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무지개, 별똥별(유성, shooting star), 극지방 밤하늘의 오로라 등이 그것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문열의 〈들소〉가 생각났다.
그의 소설집 〈젊은 날의 초상〉 뒷 부분에 실려있는데 나에게는 그의 대표작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성년식 후 들소 사냥에 나갔다가 겁이 나서 도망친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음식 배분에 뒤로 밀리는 것보다 힘든 것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들소 사냥에 나섰다가 들소에 받혀 부상을 입고 만다. 들소 사냥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 그는 신비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 그는 더 많은 들소를 잡고자 단순한 묘사로 그리기보다는 생동하는 모습의 들소를 그리는 일에 열중한다.
그의 부족 중에 간교한 자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세력을 넓히기 위해 이웃 부족과 싸움을 벌인다. 이웃 부족에 밀리게 되자 그는 협상을 벌여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이웃 부족에 시집을 보내기로 한다. 눈물 속에 그녀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애증이 섞인 들소를 새로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그 안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것처럼 금방 뛰쳐 나갈 것 같은 살아움직이는 들소를 그린다.
작가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소설은 역사 속에서 누가 최종 승리자인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간교한 지혜로, 또는 무력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자는 일시적으로 승자(勝者)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패배자(loser)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길이 남을 작품 - 그것이 그림이든, 음악이든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역사에 이름(어떤 형태로든 생존의 자취)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잠깐 있다가 사라져버릴 물방울을 흑백의 사진으로 남겨 나같은 사람에게도 감동을 안겨준 친구야말로 진정 예술가의 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크리에이터'라고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도 일시적으로 '좋아요(Like)'를 많이 받고 적잖은 수입을 올릴지라도 한때의 유행이 지나면 그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만의 원칙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3]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Note
1] 어김없이 아침 6시면 동창 카톡방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유양수는 별명이 '부착'(부지런하고 착한) 농부다. 은퇴 후 진안 산골에 집을 짓고 감나무 과수원을 일구어 가을에 곶감을 만들어 판다. 동창들 사이에 '농촌 시인'으로 통하는 그가 올린 글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밤새 부슬비로 왼통 젖은 세상, 오늘도 ; 농원 한 바퀴로 하루를 시작ᆢ
누군가가 뿌린 제초제로 生氣를 잃은 풀섶에도 이 아침 흑백의 생명이ᆢ
풀죽은 앉은뱅이 낮은 풀들이, 내리는 부슬비를 용케 한알 한알 부여 잡은ᆢ
수천 수만의 水晶꽃을 피우고선 새 생명인양 움직임없는 黑白의 群舞ᆢ
요란한 폭우는 감히 피우지 못할 수정꽃, 부드럽게 내린 부슬비들이 연출ᆢ
비록 빛내줄 아침햇살이 없는 아쉬움속에 곧 불어올 微風에 사라질 생명들ᆢ
얘들에게 양희은의 젊을적 풋한 목소리로 '아름다운것들'을 들려 주고픈ᆢ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 비~야~ᆢ"
그 맑음속에 내 모습까지도 품어주는ᆢ
좋은 아침임다ᆢ
2] 1970년대를 풍미했던 통기타 포크송 가수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은 1972년 말 발매된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2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원곡은 스코틀랜드 민요로, 미국의 포크 가수 Joan Baez의 Mary Hamilton에 싱어송라이터인 방의경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방의경이 1971년 이화여대 재학시절 서울대 문리대 축제에 이화여대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서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 가사의 1절은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이슬 방울, 2절은 엄마 잃은 작은새, 3절은 숲속에 홀로 남아 있는 잎새들이 곧 사라져버릴 텐데 비와 바람에게 이들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묻는 내용이다.
존 바에즈의 원곡 Mary Hamilton은 'The Four Maries'로 알려진 16세기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같은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시녀 메리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프란시스 차일드(Francis James Child)의 민요집 Child Ballad에 수록되어 있는데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버젼으로 불려졌다. 가사는 대체로 궁중에서 허용되지 아니한 임신과 낙태, 유아 살해, 여왕 모독, 억울한 처형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희은의 청아한 목소리로 듣는 아름다운 것들과 판이한 다소 살벌한 내용이다. 참조: Naver 블로그 The Landscape in my mind, "존 바에즈, 메리 해밀턴"
3] 마침 라디오에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음악이 흘러나왔다. 슈베르트는 수많은 교향곡, 협주곡, 가곡(Lied)를 남겼지만 베토벤 같은 인기를 누리지도 못하고 요절했다.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소개하였던 빈센트 반 고흐는 그가 살아 생전에 돈 받고 팔았던 그림은 단 한 점에 불과했다.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테오의 지원을 받아 그린 수백 점의 그림과 테오와 나누었던 편지는 형을 따라 요절한 테오의 부인(Johanna van Gogh-Bonger, 애칭은 '요')이 애를 써서 세상에 알린 덕분에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 되었다. 이문열의 〈들소〉에서처럼 일견 루저의 또 다른 '알타미라 동굴 벽화'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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