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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로사 커피 이야기

Whitman Park 2024. 8. 2. 09:00

G : 오늘은 커피에 관해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P : 네, 커피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한국인의 커피 사랑, 커피 소비량이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한국을 다녀간 외국 사람들도 "아-아", "얼죽아"라고 하면 한국 젊은이들이 겨울에 얼어죽어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지요?

 

G : 저는 '커피'하면 영화 Out of Africa에서 여주인공 카렌이 케냐로 가서 커피 농장을 하다가 커피 공장과 창고에 불이 나고 자유로운 영혼의 데니스도 사고로 죽자  아프리카 생활을 청산하고 쓸쓸히 떠나는 장면, 고종 황제가 식혜보다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P : 커피의 역사와 효능을 압축하여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커피 나무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가 원산지라고 합니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25도에서 남위 25도까지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며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할 때 그들이 좋아하는 커피나무를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 콜롬비아 등지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등이 커피 수출국으로 유명해졌지요.

 

* 영화 Out of Africa에서 카렌이 케냐의 커피 농장에서 생두를 말리는 장면

 

G : 실크로드에선 중국의 비단이, 지중해 무역에선 동양의 후주와 향신료가, 또 식민지 개척 시대에는 아라비카 커피와 인도의 홍차가 상인들의 인기품목이었다고 들었어요.

P : 네, 맞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17세기 말 오스만 튀르크의 비엔나 포위 공격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비엔나가 오스만 군대에 함락될 위기에 처했지만 폴란드와 신성로마제국(독일) 군대가 도우러 와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가 퇴각한 후 그들이 남기고 간 원두 커피를 가공해서 먹기 시작한 게 비엔나 커피의 원조(元祖)가 되었다지요. 

 

G : 아하, 커피가 그처럼 귀하고 값비쌌기에  바흐가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고, 베토벤은 매일 아침 커피 원두 갯수를 세어가며 커피를 마셨던 거로군요! 

P ; 그 때 커피의 카페인 효과가 유럽 각지로 퍼지면서 비엔나는 유럽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도시마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고 합니다. 카페인 성분의 각성 효과 때문에 특히 예술가, 작가 등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애용하게 되었다고 해요.

 

G : 커피는 커피나무의 열매인 생두와 로스팅한 원두, 여러 산지의 원두를 갈아서 독특한 맛으로 블랜딩한 커피 모두 'Coffee' 한 가지로 불리고 있어요. 

P : 그러므로 커피 애호가들은 와인 소믈리에처럼 산지에 따른 쓴 맛, 신 맛, 고소한 맛, 아로마(과일향), 버디감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해요. 일반 사람은 역사 공부, 지리 공부 하듯히 커피를 기억하기도 합니다만. 이를테면, 아프리카 산 커피를 유럽으로 수출하던 항구가 예멘의 모카 항이었기 때문에 모카 커피라는 이름이 붙었고, 인도네시아 루왁 커피는 사향 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생두로 만든 것이 맛이 순하다고 하여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블루 마운틴은 자메이카 산이고요. 우리나라에는 구한말에 선교사와 외교관을 통해 들어와서 널리 보급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커피는 근대를 의미하는 Modern과 상통하는 고급 기호품이었습니다. 

 

G :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도 그와 같은 커피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특별할 것도 없네요. 거리마다 동네마다 커피 프랜차이즈 점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전문가들은 시장이 포화 상태(saturation)에 이르렀다고 진단했지만 "The Sky is the limit." 상황이 아닌가요?

P :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南강릉에 있는 테라로사(TERAROSA, 본래 terra rossa는 지중해 연안의 붉은색 석회암 토양을 가리키며 배수성이 좋아 포도 재배에 적합함) 본사 매장에 들어가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 강릉에 있는 테라로사 본사 및 뮤지엄, 건물 뒤로 공장처럼 1,2층이 뚫린 매장과 아트숍이 있다.

 

G : 무슨 특이한 점이라도 있었나요?

P : 스타벅스 같이 도심에 매장이 있는 게 아니예요. 강릉 외곽의 논밭 사이로 난 길을 한참 들어가니 폐 공장 같은 건물에 커피 공장과 매장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전기차 충전소를 비롯해 주차장이 얼마나 넓은지요? 제2 주차장은 350m 떨어진 곳에 있다더라고요. 그만큼 차를 몰고 오는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말이었어요.

 

G : 저도 광화문 테라로사 점에 한 번 가봤는데요, 무엇이 젊은이들에게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 것일까요?

P : 저도 아내가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한 번 따라가봤을 뿐이예요. 저는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시는 미국인들을 스타벅스로 끌어들인 하워드 슐츠와 같이 테라로사 창업자에게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구나 생각했지요. 

 

G : 이른바 SNS의 시대, 인스타에 뭔가 색다른 사진을 올리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테라로사의 무엇이 어필했을까요?

P : 직접 가서 보고 찾는 게 좋겠습니다. 서울 근교에서는 양평 수종 점이 핫플이라고 해요.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와 지역 상권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며 양평군수가 감사를 표했다고 들었어요. 사전에 참고가 될 만한 몇 가지 정보만 알려드리지요. 창업자인 김용덕 씨는 시중은행을 20년 이상 다니다가 IMF 때 명예퇴직을 한 분입니다. 그 후 여러 사업에 손댔으나 실패하고 그때마침 강릉에 들어서기 시작한 커퍼점에 주목했다고 해요.

 

* 강릉 테라로서 본사의 매장

 

G :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지자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면서 '함평의 나비 축제'처럼 각 지역마다 특화된 자연특산물을 내세웠지요. 그 때 강릉에서는 보헤미안 커피를 비롯한 신개념 커피숍이 안목 해변을 따라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해요.

P : 김용덕 씨도 엄청난 독서를 통해 쌓은 인문학적 지식과 여기저기 해외를 여행하면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강릉에서 창업을 했답니다. 고향은 묵호이지만, 은행 다니면서 사놓은 강릉시 외곽의 땅에 공장을 차릴 수 있어서 커피 공장과 매장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엔 직접 설계하고 뮤지엄 벽돌건물도 지었어요. 그때 그의 지론은 "고객은 커피의 맛과 향을 오래 기억한다, 그때까지 한국 사람이 먹은 커피는 진짜가 아니다, 고급 스페셜커피를 가지고 승부를 내자"는 것이었다고 해요. 

 

G : 저도 공감이 됩니다. 진짜로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다면 값이 얼마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찾아가는 사람이 있거든요.

P : 오늘의 테라로사는 그의 집념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통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전체 생산량의 10% 정도만 스페셜티 인증을 해준다는 고급 스페셜티 커피에 관심을 가졌어요. 미국 사람들이 전해 준 커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G : 옛날에는 주로 다방에 가서 레지가 주문을 받고 내오는 커피를 마셨잖아요? 어디 손님으로 가서도 커피를 시킬 때에는 원 투 쓰리가 기본이었지요. 남궁원 배우가 광고 모델로 나오는 상표의 그래뉼 커피 한 스푼에 크림과 설탕을 기호대로 타서 마셨어요. 그것을 대량생산 제품화한 것이 봉지 커피고요. 

P : 저도 커피에 관한 최초의 추억은 파월장병인 형님이 귀국할 때 들고 온 C-레이션 박스 안에 들어있던 인스턴트 커피였어요. 그때는 10대였으니 커피보다 코코아, 분말 쥬스에 더 끌렸지만요.

 

* 테라로사 본사 매장에서 브런치로 주문한 크롸상 샌드위치와 카피 아트로 장식된 카푸치노

 

G : 아~, 알겠습니다. 테라로사는 미국식 인스턴트 커피에 입맛이 길들여 있던 기성 세대를 포기한 거예요. 대신 공장 같은 매장에서 오로지 바리스타가 설명을 곁들여 정성껏 만들어주는 커피 맛에 혹(惑)하게 만든 거로군요.

P : 그렇습니다.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더라도 스타벅스에서는 매장의 분위기와 BGM 음악을 중시한 반면 테라로사는 특색 있는 공간에서 오로지 스페셜티 커피 맛에 승부를 걸었고, 그 맛과 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시 찾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테라로사는 매장 바로 옆에 로스팅 공장을 두고 커피 원두를 직접 볶고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를 정규 직원으로 뽑는다고 해요. 그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킨 후 매장에서 손님을 맞도록 한답니다. 경력이 쌓이면 해외 연수를 보내기도 하고요.

 

G :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뉴욕에서 주방 및 생활용품 세일즈를 하다가 커피 용품을 대량 주문하는 시애틀의 커피숍을 찾아가서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블루칼라였던 그는 자기도 세일즈맨으로 고생을 했기에 사원복지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데 테라로사 창업자도 관심사가 남달랐네요~.

P : 네, 테라로사는 직원들에게 바리스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고 사원 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해요. 그러니 이직률도 낮고 회사를 그만 둔 뒤에도 차별화된 기량과 서비스 정신을 발휘할 테니 커피 시장이 계속 확장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균일한 제품과 서비스라면 일찍 포화 상태에 도달했겠지만 커피의 독특한 맛을 새로 선보인다면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G : 그런데 테라로사는 매장의 구조나 레이아웃, 인테리아가 아주 독특합니다.

P : 저도 그 점이 궁금하여 인터넷을 통해 조사해보니 김용덕 창업자는 은행을 그만 둔 뒤 건축 관련 공부도 많이 했다고 그래요. 그리고선 건축과 실내 인테리아에 남다른 열정과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장은 직접 설계하고 현장에서 공사 감독도 한다고 해요. 단적인 예가 해운대에 있는 매장인데 본래 철강공장의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철제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로스팅 공장과 매장을 만들었답니다.

 

*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매장 2층에서 김용덕 창업자. 출처: 매일경제 2017.5.12

 

G : 전국에 하나 밖에 없는 커피 매장이니 인스타나 SNS에 별난 사진 올리기 좋아하는 MZ세대에게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밖에 없겠군요.

P : 바로 이러한 창업자의 관심사를 보고 2021년 UCK 펀드(PEF)가 700억 투자를 제안하여 창업자가 국내 직영 매장을 늘리도록 했습니다. 2024년 5월 UCK는 학산(김용덕이 친지들과 공동 설립한 회사)으로부터 지분 13.1%를 230억원에 추가로 인수하여 50.1%를 확보하고 공차를 경영했던 전문경영인 김의열 대표로 하여금 경영을 전담케 하고, 창업자는 글로벌 사업 총괄을 맡아 파리에 테라로사 커피숍과 한식당을 개점했다고 합니다. 파리 올림픽 특수를 겨냥한 거지요.

 

G : 파리가 비엔나 풍 카페와 살롱의 본고장이지만, 김용덕 씨 같은 발상이라면 테라로사식 커피 맛으로 승부를 겨룰 만 하겠군요. 게다가 손흥민을 앞세운 메가 커피점 같이 K팝 스타들이 테라로사 커피를 지지할 테니까요.

P : 아마도 김용덕 씨는 프랑스와 프랑스인에 관한 폭넓은 독서와 체험을 통해 그만의 솔루션을 찾았을 거라고 봐요. 제가 작년에 파리에 갔을 때 도심의 한국 식당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았던 사람이 겉모양만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으니까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기존 커피 맛과는 다른 향미(香味)의 테라로사 커피를 선보이면 센세이션을 일으키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때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안국훈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어드릴게요.

 

* 강릉 경포 해변의 정중동(靜中動)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사람 - 안국훈

 

커피는 시작의 종소리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거나

먼저 곁에 놓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싸늘한 바람에 가슴까지 시린 날에는

따듯한 추억이 흔들리는 아이리시 커피

한 잔이면 온몸에 온기가 번진다

 

문득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솜사탕처럼 달콤하면서 씁쓸한 카푸치노

그 빛깔로 마음이 그윽해진다

 

커피는 느낌표다

마실 때마다 미소가 번지니

된통 화난 얼굴인데도

잔잔한 행복으로 넘쳐 흐른다

 

잿빛 하늘에 기분까지 우울한 날에는

부드럽고 깊은 맛 우러나는 원두 커피

그 향기로 하루가 맑아진다

 

마음 날아갈 것 같은 햇살 고운 날

잔잔한 행복감에 감미로운 헤이즐넛 커피

그리운 사람을 그립게 한다

 

느낌이 통하는 사람

허전한 빈자리를 남겨둘 때

뜨거운 그리움이 살몃 일렁이면

일상의 빈틈으로 번지는 그윽한 향기여

 

커피 한 잔을 즐기면

일상이 여유로워지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알면

하루가 행복해진다

 

지금 그대와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라

 

* 커피 맛처럼 알쏭달쏭한 표정을 한 여인. 출처: AI Studio

Note

위의 시를 영어로 옮기니 커피 한 잔의 느낌이 더 구체화되는 것 같다.

 

Who Wants a Cup of Coffee   

by Ahn Kook-hoon

 

Coffee is a starting signal.
When reading a book, drawing a picture, or
Waiting for a loved one,
You have to put it beside you first for relaxation.

On days when the cold wind chills you to the bone,
Irish coffee stirs up happy memories, and
One cup is all it takes to warm you up.

On days when the white snow is suddenly falling in flurries,
A cappuccino, soft and bittersweet like cotton candy,
Its color makes my heart soar.

 

Coffee is an exclamation mark.
Every time I drink it, a smile spreads across my face.
Even though I'm all angry,
I'm overflowing with calm happiness.

On days when the sky is ashy and the mood is depressing,
The smooth, deep flavor of coffee beans, and
Its aroma will brighten the day.

On a sunny day when my mind seems to fly away,
Sweet hazelnut coffee with a lingering sense of happiness
Reminds me of someone I miss.

Someone you feel connected to.
When you leave a hole in your heart,
When a hot longing stirs inside,
It's a fragrance spreading through the gap of everyday life.

When I enjoy a cup of coffee,
Everyday life becomes relaxed.
A cup of coffee makes you relaxed, and
The day becomes happier.

Now a cup of coffee 
I want to drink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