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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바라본 상사화

날이 시원해지면서 산으로 들로 야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빨간 꽃 사진을 SNS에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추석 때 고향에 다녀온 사람들은 주로 사찰 주변의 나무 아래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무릇이 애처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여름 내 잎이 무성했는데 때 이르게 잎이 모두 지고 난 다음 꽃대가 올라와 빨간 꽃을 피우는 것이 마치 식물계의 '견우와 직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여느 꽃 처럼 잎과 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피어나는 게 아니었다. 시기적으로 어긋나게 잎이 피었다 지고 그 다음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이 잎과 꽃이 서로 상사병(相思病)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꽃 이름도 상사화(相思花)라 한다던가! 어느 시인은 이러한 상사화에 시인의 감정을 이입(empathy)하여 다음과 애달프게..

Talks 2022.10.05

C. S. 루이스의 밤

9월 29일 저녁 서빙고 온누리교회에서 C.S. 루이스의 밤 행사가 열렸다. 이재훈 담임목사가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팬이고 설교 중에도 그의 어록을 자주 인용하시기에 이날 토크쇼 출연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9월 27일 개막한 제19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관련 행사의 일환이었다. 연 극_스크루테이프의 편지 (The Screwtape Letters 일부) - 연출 이석준; 출연 황만익, 이은주, 김동민 - 제작 야긴과 보아스 미니스트리 노련한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인 신참 악마 원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 편지로 조언을 해준다. 스크루테이프는 편지 속에서 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가까운 인간관계 속에 침투해 삶의 모든 ..

공연 2022.09.30

한 대학동기의 사부곡(思父曲)

대학동기인 구충서 변호사가 시집을 한 권 보내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퇴직한 후 정부법무공단에서 소속 변호사들을 지휘하면서 서울대학교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까진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이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고, 특히 언론매체를 통해 귀환 국군포로와 전시 납북자 유가족의 북한 상대 손해배상 소송,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여온 것으로 전해듣고 있었다. 얼마 전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그의 부친 송랑(松郞) 구연식(具然軾, 1925~2009) 시인의 시집을 한 데 모아 엮었다면서 《영원을 넘어》라는 제목을 붙인 8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보내 온 것이다. 두꺼운 시집(詩集)을 보는 것도 처음이려니와 고인이 펴낸 시집 한 권, 시 한 수까지 소중하..

전시 2022.09.18

영화 〈Oblivion〉을 보며 떠오른 생각

9월 11일 추석 특선영화로 OBS(경인방송)에서 〈오블리비언〉(2013)을 보았다.2077년 외계인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SF영화였다. 살아남은 인류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모두 이주하였고 지구 상에는 스캐빈저(scavenger)라고 하는 일단의 무리가 외계인의 재침공에 대비하면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래픽 소설 Oblivion (망각)을 쓴 저자 조지프 코신스키가 감독으로서 직접 연출을 맡고, 톰 크루즈, 올가 쿠릴렌코, 모건 프리만 등이 출연하였다. 그리고 IMAX로 상영되어 관객들로부터 크게 호평을 받았다.[1] 이 영화를 연휴 기간 중 집에서 화면과 음향효과를 최대한 좋게 해서 감상하노라니 전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旣視感, déjà vu..

영화 2022.09.14

가요무대의 팬덤: 김호중 판타지아

2022년 추석은 슈퍼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는 바람에 온 국민이 불안감 속에 맞았다. 9월 6일 새벽 거제 부근에 상륙하여 경남 일부 지역만 스치고 울산으로 빠져 나갔으나 포항 지방은 집중호우로 적잖은 인명피해가 났다. 나라 곳곳에서 태풍과 호우의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9월 9일 추석 연휴가 시작하던 날 저녁 SBS에서는 아주 다채롭게 꾸민 를 방영했다. SBS는 2009년 예능 프로인 에서 "네순 도르마"를 부른 김호중을 '고등학생 파바로티'로 이름을 떨치게 한 바 있다. 김호중은 이를 계기로 영화 《파파로티》의 주인공인 '이장호'의 모티브가 되어 장래 성악가로 촉망을 받았다. 우선 한가위 특집 쇼라고 하지만 그 구성과 무대장치, 관객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케..

공연 2022.09.11

스파이 액션 영화 <헌트> (2022)

추석에 앞서 극장에 가서 딱히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단지 평판이 좋은 화제작이라는 점에 끌려 이정재 감독 데뷔작 를 보았다. 집에서 VOD로 보지 않고 영과관에서 큰 화면으로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1]이라면 시나리오는 "남산"이라는 제목으로 7년 전에 나왔으나 감독과 제작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는 것, 배우 이정재가 영화화 판권을 사서 각색을 한 끝에 직접 메가폰을 잡고 친구 정우성을 끌어들여 함께 주연을 맡아 만들었다[2]는 것 정도였다. 의 스타가 만든 이 영화는 예상 밖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개봉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칸에 이어서 캐나다 토론토와 스페인 시체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2시간여에 걸친,..

영화 2022.09.06

연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무덥고 폭우까지 몰고 온 여름 바람이 걷히고, 조석으로 서늘함을 안겨주는 바람이 분다. Where the sultry wind went away, here comes autumn breeze in a cool mode. 불교적 분위기의 미당(未堂 徐廷柱, 1915-2000)의 시에 김주원이 현대적 감각의 곡을 붙인 가곡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듣고 또 들었다. 이 곡이 화제가 된 것은 소프라노 박혜상이 우리말로 불러 독일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음반으로 발매했기 때문이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Like the Wind Coming back after Meeting the Lotus by Seo Jeong-ju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Fee..

공연 2022.09.01

The Place Where Course of Life Shifted

필생의 각오라 할까 인생의 행로를 바꿀 만큼 새롭게 결심을 한 장소가 어디 있었던가? 동해의 일출을 지켜보던 어느 해변가? 제주도 산방굴사 앞?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의 빙하호? 미국 그랜드 캐년의 전망대? 영어로 번역하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Would you tell me the place where your course of life has shifted?" 8월 말 동해 바다의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똑 같이 푸르지만 수평선 아래는 짙푸르고 가끔 흰 포말을 이고 해변으로 파도가 밀려와 투명해 보이는 하늘과 차이가 날 뿐이었다. * 동해안 강릉 연곡 해변 여름의 끝자락, 해수욕장도 문을 닫았고 백사장에는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긴 채 갈매기만 몇 마리 앉아 있을..

Talks 2022.08.31

슈베르트, 바위 위의 목동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양치기라는 직업을 심지어 선망하기조차 했다. 오죽하면 그 무대가 된 뤼베롱 산지가 있는 프로방스 지방을 찾아가보기를 열망했을까! 사실 크리스천이라면 시편 23편을 늘 암송하는 터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아무튼 목동(shepherd)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에는 곳곳에 서 있는 면양 관련 동상을 보고 깊은 인상..

공연 2022.08.19

헤어질 결심 (202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이비 박스라는 한국적 소재를 가지고 한국 배우들이 주된 역할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는 같은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 감독은 에큐메니칼(세계기독교)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 소식은 흥행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코로나 거리두기 제한이 없는 가운데 개봉되었음에도 박스오피스 예약 상황을 보건대 제작비 135억여 원을 건질 수 있을까 우려되었다. 다행히 개봉 3주차인 7월 17일까지 손익분기점인 12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하여 박찬욱 감독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치밀하게 설계된 이 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이해하려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여 N차 감상을 하는 매니아급 관객도 늘고 있..

영화 202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