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시원해지면서 산으로 들로 야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빨간 꽃 사진을 SNS에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추석 때 고향에 다녀온 사람들은 주로 사찰 주변의 나무 아래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무릇이 애처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여름 내 잎이 무성했는데 때 이르게 잎이 모두 지고 난 다음 꽃대가 올라와 빨간 꽃을 피우는 것이 마치 식물계의 '견우와 직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여느 꽃 처럼 잎과 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피어나는 게 아니었다. 시기적으로 어긋나게 잎이 피었다 지고 그 다음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이 잎과 꽃이 서로 상사병(相思病)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꽃 이름도 상사화(相思花)라 한다던가!
어느 시인은 이러한 상사화에 시인의 감정을 이입(empathy)하여 다음과 애달프게 노래했다.
세 연(聯)으로 된 이 시를 여러 번 읽어보니 각연의 처음 네 줄[行]은 시인의 감정을 담아 상사화의 속성을 묘사하더니 다섯째 줄에서 세 음절로 국면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작별의 서러움, 꽃대의 의연함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였다.
상사화의 특징을 시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터에 이렇게 일정한 패턴을 영어로도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대략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 속에서 나무 아래 무리지어 피는 이상한 꽃들의 정체를 외국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어 영어로 번역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최대한 원문의 정형화된 패턴을 영어번역에서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상사화 - 전원범
Magic Lily by Jeon Won-beom
이·저승을 넘나드는
인연의 끈에 매달려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이 지면 꽃을 피우며
그렇게
애태우면서도
만나지 못해 서러워라
Being caught by a chain of relationship,
they’ve come thru this world and the next world.
After flowers are gone, leaves are coming up.
After leaves are gone, flowers are coming up.
Likewise,
being anxious for their meeting,
they become sorrowful not doing so.
그리움의 성을 쌓고
기다림의 탑을 쌓아
속살까지 물들이며
흔들리고 있더니
서로가
눈에 밟혀서
떠나지도 못하는가
Constructing the castle of longing,
they’ve built up the tower of waiting.
While they’re dyed to the inner parts,
they seem to be swaying.
Altogether,
being in the back of their minds,
they can’t be departed again.
끝끝내 남은 말은
모두 다 불태우고
내리는 잎잎을
아픔으로 받으면서
한 자락
바람을 접어
꽃대만 세우는구나
What’s left behind at last is
to be burnt as a whole.
When they’re falling down,
they receive leaf after leaf with pain,
Once more,
waiting for calming down of wind,
they have only to erect the flower stalks.
1주일 전 KoreanLII의 메인 화면 하단을 장식할 '이 달의 야생화'로 선홍색 꽃무릇에 호랑나비가 날아와 앉은 사진을 골랐다. 상사화 꽃이 잎을 보지도 못하고 절정의 순간을 맞았는데 나비가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꽃무릇 사진만 덩그러니 올리는 것보다 비록 17음절이라는 제한은 있어도 짧은 시[하이쿠]를 나란히 올리니 기분이 '업'되는 것 같았다.
잎도 없이 핀 꽃무릇
나비가 와서 달래주네
With no leaves at hand,
only scarlet flowers bloom.
Butterflies soothe them.
외국인들에게 이 꽃을 소개할 때에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상사화와 꽃무릇[석산화/石蒜花]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것이나 꽃씨가 아니라 알뿌리[球根]로 번식하는 것은 같지만 상사화는 여름(7월 말)에 연보랏빛이나 노란꽃이 피며, 꽃무릇은 가을(9월 중순)에 선홍색 꽃이 핀다.
유독 사찰 주변에 화려한 빨간색의 꽃무릇 군락지가 많은 것은 마늘처럼 생긴 그 뿌리에 있는 독성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예로부터 단청이나 탱화에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발라 좀이 슬거나 벌레가 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사용했던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전북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 군락지가 특히 유명하다.
인터넷에서 '상사화'를 검색해 보니 안예은의 노래 '상사화'부터 쏟아져 나왔다.
2017년 온 나라가 탄핵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 MBC가 방영한 사극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OST였다. 나는 30부작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나 <홍길동전>을 그 당시 시국의 분위기에 맞게 각색한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안예은이 조금 청승맞게 부른 그 주제가는 YouTube에 가사와 함께 많이 올라와 있었다. 홍길동(윤균상 분)과의 인연이 그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는 여주인공의 처지를 상사화에 빗대 노래하는 것 같았다.
상사화 – 안예은 노래
사랑이 왜 이리 고된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고운 얼굴 한 번 못 보고서
이리 보낼 수 없는데
사랑이 왜 이리 아픈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하얀 손 한 번을 못 잡고서
이리 보낼 순 없는데
[A]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 위에 어찌하다 오르셨소
내가 가야만 했었던 그 험한
길 위에 그대가 왜 오르셨소
[B]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긴긴 겨울이 모두 지났는데
왜 나를 떠나가오
[A] 반복
[B] 반복
[B]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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