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Whitman Park 2022. 5. 10. 09:50

얼마 전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나시더니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타는 목마름으로" (With Burning Thirst)의 민주화 운동의 투사 김지하 시인이 별세하였다.

바로 사월초파일을 하루 앞둔 5월 8일 81세를 일기로 영면하신 것이다.

시인과 같은 투사 덕분에 우리 사회는 훨씬 민주화가 되었고, 386세대가 주축이 되어 촛불혁명이 일어난 데 이어 진보정권이 집권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임 대통령은 평등(平等)을 앞세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었으나 퇴임 후 어찌 될까봐서 그런지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시키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을 공포하고 물러났다.

5월 10일 새로 취임한 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自由)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위한 도약과 빠른 성장, 그리고 국제적 연대를 추구할 것임을 밝혔다.  

온 국민을 2년 이상 옥죄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신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자유민주주의의 활력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넘쳐나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엄혹한 시대에 서대문 형무소의 담벼락 안에서 인왕산을 밝힌 연등을 보고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수인(囚人)의 몸으로 읊었던 시 "초파일 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과연 시인이 목메어 불렀던 꽃밭 같은 세상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인가? 

 

 

초파일 밤 - 김지하

At Night of Buddha's Birthday  by Kim Chi-ha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1]

It looks like a flower.

It looks like a flower bed.

It's like a paradise in my wet eyes.

May I get to the place?

Someday in the flower garden over there,

If I can't go there, if I can't go there, while living,

I'd be supposed to go there on the way to Hades.

May I go there after crossing the River of Lethe?

Over the high brick [prison] wall, it's the world of Lantern Lighting.

 

*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 사진: OmnisLog Blog diary.

 

시인의 곡절과 부침이 많은 삶을 되돌아보며 신경림 시인이 말했던 돌과 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보았다.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번역해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2] 우선 '비구', '농투성이', '중로'의 뜻부터 정확히 알아야 했다.[3] 

나도 처음엔 칠순을 맞아 험한 일 겪지 않고 살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마치 2등 열차표를 가지고 1등 칸에 앉아 편하게 여행을 한 것만 같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 하동에 갔을 때  금오산에 올라 새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4]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꽃들도 형형색색 여러 종류가 있어야 하지만 양분이 많고 배수가 잘 되는 흙과 크고 작은 돌이 있어야 함을 알았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좋은 일, 슬픈 일, 괴로운 일을 겪어봐야 인생이 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돌 하나, 꽃 한 송이 - 신경림

One Stone, One Flower  by Shin Kyeong-nim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 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I like flowers.

So I used to enjoy plum flowers in snow equipped with two or three humble shoes.

I was amazed to see wild flowers at white flower-covered reclaimed land.

So I used to be associated with hard working farmers.

I like popular songs.

So I used to travel on a shoe vendor truck across the country.

I favored a deserted coal mine

Where I used to made friends with a middle-aged bar hostess.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 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Likewise, I was afraid of being thrown away to the world like a useless stone.

Likewise, I also dreamt of lovely flowers blooming in the world.

 

* 꽃바구니 제작: 장서원

 

어버이날 꽃바구니를 받았다. 핑크빛 작약과 해바라기가 풍성하게 꽂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작약 꽃의 붉은색이 옅어지더니 힘없이 뚜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경림 시인의 꽃도 꽃 나름이다. 영랑의 시도 있거니와 때가 때인지라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꽃은 마치 반짝 인기와 관심을 모았던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퇴장을 보는 것 같았다.

 

Note

1] * 삼도천(三途川):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큰 내

   ** 벽돌담은 시인이 수감되어 있던 서대문 형무소를 말한다.

 

2] 영어로 번역된 아름다운 우리 시를 더 많이 읽어 보려면 이곳을 클릭

 

3] 비구(扉屨): 짚신 또는 싸구려 신발. 출가한 남자 스님을 이르는 비구(比丘)로 볼 수도 있으나 먼길을 떠나면서 짚신 두어 개를 더 챙긴다는 의미에서 전자로 해석하였다. 

    두엇: 두세 개를 이르는 말

    농투성이: 농사꾼

    중로(中老):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40~50대의 사람

 

4] 내가 칠십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 인터넷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돌아다니고 있었음을 발견하고 영어로도 한 번 옮겨 보았다.

Here are funny and witty maxims about daily life prevailing on the Internet in Korea

• What hardly exists in reality: Free lunch, Secret, Correct answer

• What cannot be restored, once lost: Trust, Friendship, Respect

• What cannot be returned, once departed: Time, Words, Opportunity

• What can be improved while doing best: Thought, Habit, Character

'Tal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Place Where Course of Life Shifted  (0) 2022.08.31
한강 바람 소리를 듣다  (0) 2022.05.15
피렌체人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0) 2022.03.17
이 시대의 진정한 위인(Great Men)  (0) 2022.03.07
로마 제국과 기독교  (0)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