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가요무대의 팬덤: 김호중 판타지아

Whitman Park 2022. 9. 11. 18:20

* 힌남노가 지나간 9.6 아침 한눈에 들어온 서울 주변의 명산. 사진: Jenny Chang
* 9.7 평창 고루포기산 능선 위로 떠오른 만월-1day. 사진: 이기윤

 

2022년 추석은 슈퍼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는 바람에 온 국민이 불안감 속에 맞았다.

9월 6일 새벽 거제 부근에 상륙하여 경남 일부 지역만 스치고 울산으로 빠져 나갔으나 포항 지방은 집중호우로 적잖은 인명피해가 났다.

나라 곳곳에서 태풍과 호우의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9월 9일 추석 연휴가 시작하던 날 저녁 SBS에서는 아주 다채롭게 꾸민 <김호중: 한가위 판타지아>를 방영했다. SBS는 2009년 예능 프로인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네순 도르마"를 부른 김호중을 '고등학생 파바로티'로 이름을 떨치게 한 바 있다. 김호중은 이를 계기로 영화 《파파로티》의 주인공인 '이장호'의 모티브가 되어 장래 성악가로 촉망을 받았다.

 

* 9.9 SBS의 김호중 단독쇼 무대. 이하 SBS방송 캡쳐

 

우선 한가위 특집 쇼라고 하지만 그 구성과 무대장치, 관객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케이블 방송사의 <미스터 트롯> 가수로 선정되었음에도 TV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다른 '미스터 트롯'들과는 달리 군에 입대(사회복무요원)하여 한동안 관중들로부터 멀리 오래 떨어져 있었다. 그가 입영 전에 녹음한 성악곡이 간간히 CD[1]로 발매되어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뿐이었다.

 

그런 만큼 김호중 단독 쇼에 대한 팬들의 호응과 성원은 무대 앞 오프라인, 온라인을 막론하고 매우 뜨거웠다.

이 날은 지상방송사의 압도적인 물량공세와 더불어 김호중이 클래식 성악곡에서 트로트 유행가까지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무대였다. 노래 잘하는 찐 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서도 있었다.

 

* 열성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트로트 가수-성악가 김호중

 

이 날 단독 쇼를 한 김호중은 이도령 한복을 입고 곱게 한복을 입은 트로트 가수 송가인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 열띤 반응을 얻었다. 두 사람이 부른 조용필의 "한(恨) 오백년"은 관중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 다음 차례로 김호중의 롤 모델이라는 가수 최백호가 무대에 올랐다. 그의 곡절 많은 삶 자체가 구슬픈 곡조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는 내 처지와 비교가 되면서 한동안 내 숨이 멎는 듯했다.[2]

 

낭만(浪漫)이 살아 있는 한
그의 청춘도 살아 있네

The youth is not over
as far as his Romanticism stays alive.

 

전에 직장생활을 할 적에 노래방에 가면 최백호의 낭만적인 인기곡들은 다른 사람이 먼저 선곡을 하는 바람에 줄곧 듣기만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 당시 비슷한 분위기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도 그런 노래 중의 하나였는데 다행히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내 18번이 될 수 있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노래도 한 번 불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 노래가 외국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게끔 영어로 번역해 보았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Regarding Romanticism  by Choi Baek-ho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On a gloomy rainy day.
I sit in an old-style coffee house
sipping a glass of Korean whiskey
while listening to the melody of a saxophone.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Toward the madame de cafe who beautifies herself
with her lips colored with a scarlet lipstick
I make some silly jokes
while listening to the melody of a saxophone.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Now at the age of mine,
how can I imagine the sweet break-up?
But I have to think about something lost forever
in my broken heart
with some spots still empty.

 

밤 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At a harbor late at night,
I stand on a pier of ferry boats
waiting for nobody to arrive
while listening to the sad sound of a boat horn.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 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About the girl of my first love,
I guess she’s getting old like me somewhere
becoming sorrowful by the flying time
while listening to the sad sound of a boat horn.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Now at the age of mine,
how can I hold the lingering sentiment of youth?
But I have to think about something forgotten
in my broken heart
with some spots still empty
regarding such romanticism.[3]

 

초로(初老)의 가수는 어느 날 일필휘지로 이 노래의 가사를 짓고 곡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 노래는 하루의 시간에 비추어 본다면 해가 질 무렵에 해당할 터였다.

마침 9.10 추석 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저녁노을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 9.9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 위로 펼쳐진 저녁노을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시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Note

1] 가수 김호중은 한국의 파바로티 같은 트로트 가수라는 의미에서 팬들에게 '트바로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2020년 3월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에 뽑히자 마자 그해 9월부터 2년 가까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어 가수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테너로서 가수 활동을 하였기에 2020년 12월에는 클래식 앨범 제1집 My Favorite Arias, 2022년 7월에는 Panorama라는 타이틀로 이태리 풍의 성악곡부터 크로스오버 발라드와 라틴음악까지 망라하는 '주마등' 같은 제2집 앨범을 발매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2] "낭만에 대하여" 노래 가사 중에서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하겠냐마는" 구절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 나이 또래의 어떤 이는 "내 나이가 어때서?"하고 외치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이 여기저기 탈나기 시작하는 중고 자동차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을 "나이듦에 대하여"로 고쳐서 읽고 필자가 운영하는 KoreanLII의 'Ageing' 항목에 이 노래 가사를 한-영 대역으로 올려놓았다.

 

3] '낭만에 대하여'를 영어로 옮김에 있어 적잖이 고심을 했다.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까지 한 가수가 구식 다방에 앉아서, 또는 늦은밤 연락선 부두에서 '낭만'을 노래할 때에는 단발성 연애담(romance)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초로의 나이임에도 낭만(romanticism)에 젖었을 때의 옛 추억을 되살리며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노래한 것이었으리라. 그렇기에 그러한 감정 내지 심적 상태는 뭔가 잃어버린 것, 다시 못 올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곡의 제목을 추억 속의 몇 차례 연애담 'About Romance'가 아니라 다소 딱딱하긴 하지만 초로(初老)의 나이에 생각해보는 'Regarding Romanticism'이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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