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서울에서 공연 중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공연을 보러 갔다.
New Alegria - alegria는 스페인어로 '기쁨', '행복'이란 뜻이므로 새롭게 느끼는 기쁨 또는 행복이란 제목의 공연이었다.
Alegria는 이미 1994년부터 전세계의 250개가 넘는 도시를 다니면서 순회 공연을 하던 쇼 프로였다. 여기에 New를 붙인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공연을 새 단원들이 새롭게 만들어 공연을 펼치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다.
그 동안 Quidam, Kooza (상자) 등으로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한 바 있는 태양의 서커스 단은 이번에도 잠실운동장 부지에 빅탑을 설치하고 손님들을 맞았다. 국내 언론에 많이 홍보가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0월 20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하는 공연에 이미 볼 사람은 거의 다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 자리 없이 관객이 가득 들어찼다.
높이 19m의 빅탑 텐트 중앙에 지름 51m의 둥근 무대가 있고 빙 둘러서 약 2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 7시 반부터 펼쳐질 공연을 기다리며 우리는 전에 본 공연과 뭐가 다르길래 '새로운 기쁨'을 안겨준다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 새로운 기술, 도구를 도입한 더욱 스릴 넘치는 공연?
-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세계 투어를 재개하였다는 기쁨?
- 서커스 단원 개인적으로 독보적인 묘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기대감?
태양의 서커스단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장기간 중단됨에 따라 파산위기에 몰렸다가 최근 Sun Life라는 투자회사가 서커스단을 인수함으로써 공연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묘기를 보여줄 직장이 사라지자 청소 일이나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여야 했는데 이제 버젓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아래 소개하는 공연 사진들은 태양의 서커스 <Aglegria> 홈페이지에서 복사하여 올린 것이다.
이윽고 Alegria 쇼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중간 휴식시간 30분)되었다.
스토리는 팬터지 동화 같았다. 한때 매우 번성했으나 지금은 왕을 잃은 왕국이 있었다.
구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 틈을 타서 희망과 쇄신을 추구하는 신흥 세력간에 권력 암투가 벌어진다.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귀족들은 궁정의 어릿광대를 왕으로 추대한다. 반면 신흥 세력은 젊음을 무기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투쟁을 벌인다.
태양의 서커스의 온갖 묘기를 모두 보여주는 Alegria에서 관객들은 숨 막히는 곡예 뿐만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 위트있는 유머, 그리고 신비스럽고 흥겨운 음악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프로그램 해설에 의하면 '권력을 향한 욕망', '변화에 대한 갈망', '어둠에 맞선 빛의 승리' 등의 주제를 다채로운 시각 효과와 화려한 곡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무대 뒷편의 뾰족뾰족한 가시 같은 형상은 왕관이 상징하는 권력의 부자연스러움을 나타낸다는 식이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들이 전부 무대 위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So to speak, 태양의 서커스는 그들의 '되찾은 기쁨'을 맘껏 표출하는 공연이었다.
무대 위에서 놀라운 묘기를 펼치는 곡예사들도 무대가 사라지니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니, 특별한 재주 없이도 직장을 다니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보통의 관객들이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By the way, 며칠 전 우연히 Netflix에서 보았던 일본 영화 <실: 인연의 시작>(糸, 2020)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홋카이도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1989년(平成 1년) 생 주인공이 친구와 같이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가 한 여학생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그녀를 데리고 하코다테 항에서 페리를 타고 아오모리 사과 농장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그녀의 가족에게 붙잡혀 이별을 하고 만다.
아래 포스터 속의 두 사람(현재 일본에서 가장 핫한 스타로 손꼽히는 스다 마사키와 고마츠 나나가 주연을 맡음)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연말의 매우 혼잡한 하코다테 부두에서 첫 사랑의 연인과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바로 2019년(令和 1년) 개막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두 주인공은 흥겨운 왈츠 곡 같은 3박자가 갖춰진 기쁨, 즉 ① 첫사랑의 연인을 ② 극적으로 만나 ③ 모든 장애가 사라진 결혼을 약속하는 기쁨(엔딩 크레딧의 결혼식 장면을 놓쳐서는 아니됨)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우연찮게도, 아침 FM 방송에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1악장을 들었다.
그리고 위와 마찬가지로 3박자가 갖춰진 가슴 뭉클한 기쁨을 맛보았다.
①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는 메아리 소리 같은 아름다운 주제곡 선율에 매료되었다가 ② 그것을 2007년 안식년 기간 중 LA 월트디즈니 필하모닉 홀의 오케스트라 뒷자리(합창대 석)에서 들었던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③ 당시 요세미테,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지로 여행 다녔던 추억과 오버랩 되면서, 내 인생에 있어서 언제 신세계(New World)가 열렸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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