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슈베르트, 바위 위의 목동

Whitman Park 2022. 8. 19. 10:10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양치기라는 직업을 심지어 선망하기조차 했다.

오죽하면 그 무대가 된 뤼베롱 산지가 있는 프로방스 지방을 찾아가보기를 열망했을까!

사실 크리스천이라면 시편 23편을 늘 암송하는 터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아무튼 목동(shepherd)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에는 곳곳에 서 있는 면양 관련 동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퀸즈타운 호숫가에는 1830년 영국에서 면양을 처음 들여온 이민자 목부와 메리노 양의 동상이, 별을 관측하기에 좋다는 테카포에는 목양견의 동상이 세워진 것을 보았다.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으면 동상까지 세워놓고 감사의 마음을 길이 간직하려 했을까?

 

클래식 성악곡에 눈을 뜨게 한 것도 "오베르뉴의 노래"에서 계곡물이 불어 위험하다며 목동을 부르는 노래 "바일레로"였다. 캉틀루브가 현지의 민요를 채집하여 연작곡으로 만들었는데 소프라노의 고음 파트로 그처럼 길게 부를 수 있다는 게 아주 신기했다.

또 슈베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작곡한 다른 목동의 노래 "바위 위의 목동"(소프라노 임선혜, 클라리넷 김한)을 듣고서는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슈베르트가 자기의 마음을 목동의 입을 빌어 메아리 밖에 상대할 이 없는 외로움을 탄식하다가 봄을 맞아 새로운 희망에 부푼 심정을 노래하고 있었다.

 

* 요한 찬트, 해질녘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과 산의 풍경(1886). 출처: 보카치오

 

I. Wilhelm Müller, "Der Berghirt"[1]

Der Hirt auf dem Felsen

 

Wenn auf dem höchsten Fels ich steh',

In's tiefe Tal hernieder seh',

Und singe.

 

Fern aus dem tiefen dunkeln Tal

Schwingt sich empor der Widerhall

Der Klüfte.

 

Je weiter meine Stimme dringt,

Je heller sie mir wieder klingt

Von unten.

 

Mein Liebchen wohnt so weit von mir,

Drum sehn' ich mich so heiß nach ihr

Hinüber.

 

The Shepherd on the Rock

 

When, from the highest rock up here,
I look deep down into the valley,
And sing,


Far from the valley dark and deep
Echoes rush through, upward and back to me,
The chasm.


The farther that my voice resounds,
So much the brighter it echoes
From under.


My sweetheart dwells so far from me,
I long hotly to be with her
Over there.

 

내가 가장 높은 바위 위에 설 때면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네
그리고 노래하네
멀리 깊고 어두운 계곡으로부터
메아리가 위쪽으로 울려 올라오네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내 목소리가 더 멀리 스며들수록
그 소리는 다시 내게 더욱 밝게 들리네
저 아래쪽으로부터
내 연인은 내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있기를 열망하네
저 너머에

 

 

Varnhagen – "Nächtlicher Schall"[2]

 

In tiefem Gram verzehr ich mich,

Mir ist die Freude hin,

Auf Erden mir die Hoffnung wich,

Ich hier so einsam bin.

 

So sehnend klang im Wald das Lied,

So sehnend klang es durch die Nacht,

Die Herzen es zum Himmel zieht

Mit wunderbarer Macht.

 

I am consumed in misery,
Happiness is far from me,
Hope has on earth eluded me,
I am so lonesome here.


So longingly did sound the song,
So longingly through wood and night,
Towards heaven it draws all hearts<
With amazing strength.

 

나는 깊은 슬픔에 야위어 가네
내 기쁨을 잃었네
세상에서 희망은 나로부터 멀어져만 가네
여기서 나는 정녕 외롭네
노래는 숲 속에서 그토록 갈망하며 울렸네
노래는 밤 동안에 그토록 갈망하며 울렸네
노래는 마음들을 하늘로 이끄네
놀라운 힘으로

 

* 태카포 호숫가의 목양견 콜리의 동상

 

Wilhelm Müller – "Liebesgedanken"[3]

 

Der Frühling will kommen,

Der Frühling, meine Freud',

Nun mach' ich mich fertig

Zum Wandern bereit.

Je weiter meine Stimme dringt,

Je heller sie mir wieder klingt.

 

The Springtime will come,
The Springtime, my happiness,
Now must I make ready
To wander forth.

The farther my voice resounds,
So much the brighter it echoes back to me.

 

봄이 오리라
봄, 나의 행복
이제 나는 준비해야겠네
원족 길을 나서기 위해
내 목소리가 더 멀리 스며들수록
그 소리는 다시 내게 더욱 밝게 들리네

 

Note

1] 슈베르트의 가곡 "바위 위의 목동"(바바라 보니-데이빗 시프란)은 아주 이색적으로 클라리넷 반주가 등장한다. 높은 산 위의 목동에게는 친구가 메아리 밖에 없기에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를 닮은 클라리넷을 배치한 것 같다. 노래 가사는 모두 3부 7개의 연(verse)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3부의 가사는 이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 의 가사(=시)를 지어 유명한 19세기 독일의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aller, 1794-1827)의 작품이다. 1부의 가사 전체는 뮐러의 시 “산의 목동"(Der Berghirt)에서, 3부의 가사 처음 네 줄은 뮐러의 시 “사랑의 생각"(Liebesgedanken)에서 가져왔다. 노래 가사의 해설은 블로그 'Una voce poco fa - 보카치오' 참조. 1~3부 가사의 영역은 Wikipedia에서, 우리말 번역은 보카치오를 각각 인용함.

 

2] 2부의 가사는 독일의 여성 시인이자 극작가인 헬미나 폰케치(Helmina von Chézy, 1783-1856)의 시 "저녁의 소음" (Nachtlicher Schall)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1부에서 목동이 바위산에 올라 연인이 사는 계곡 아래를 향해 노래를 부르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내용인데, 2부에서는 연인을 만나볼 수 없어 몸부림치는 목동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3] 3부의 가사는 역시 뮐러의 다른 시  “사랑의 생각"(Liebesgedanken)에서 가져왔는데 마지막 두 줄은 1부 가사의 세 번째 연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톤이 서로 다른 가사에 맞춰 작곡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슈베르트는 놀랍게도 수미일관의 스토리텔링을 이루면서 희망에 가득 찬 심경을 노래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작곡가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되어 더욱 애청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