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2022)

Whitman Park 2022. 7. 11. 12:05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이비 박스라는 한국적 소재를 가지고 한국 배우들이 주된 역할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브로커>는 같은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 감독은 에큐메니칼(세계기독교)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 소식은 흥행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코로나 거리두기 제한이 없는 가운데 개봉되었음에도 박스오피스 예약 상황을 보건대 제작비 135억여 원을 건질 수 있을까 우려되었다. 다행히 개봉 3주차인 7월 17일까지 손익분기점인 12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하여 박찬욱 감독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치밀하게 설계된 이 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이해하려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여 N차 감상을 하는 매니아급 관객도 늘고 있다 한다.

그래도 박찬욱 감독의 전작인 <올드보이>(326만 명)와 <아가씨>(428만 명), <친절한 금자씨>(365만 명), <박쥐>(223만 명)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어서 박찬욱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장마철인 데다 高물가 시대에 출연배우 및 큰 화면의 볼거리가 화려한 외화 <탑건: 매버릭>,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영화관 입장료 15,000원을 놓고 경쟁을 벌여 다소 불리하였던 게 사실이다.

 

영화의 줄거리

이 영화는 현재 개봉관 상영 중이므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 소개는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한다.

그 대신 주의해서 보아야 할 미장센(mise-en-scène)[1]과 메타퍼(cinematic metaphor) 등 몇 가지만 소개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 다만,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이고, 전반부는 미스테리 스릴러, 후반부는 멜로 로맨스 드라마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도 참고하는 게 좋겠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바위산 절벽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부산서부경찰서의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죽은 사람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에 대해 의심을 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에 가까운 관심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해주의 아내(이정현 분)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어 이들은 주말부부이고, 서래의 죽은 남편은 사고 나기 전까지 출입국심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박찬욱 감독이 정서경 작가와 함께 대본 작업에도 공동 참여[2]했던 만큼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치밀한 계산하에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장면의 로케이션, 배우들의 의상, 스토리 전개, 소품 하나하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의 제목인 '헤어질 결심'이 어느 대목에서 누가 말하는 대사인지 기다림 속에 알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박 감독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탕웨이를 여주인공으로 예정하고 만들었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서래는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 DV)의 희생자이다.

그녀는 한국인 남편과 살았음에도 한국어가 서툴러서 복잡한 내용은 중국어로 말하고 스마트폰의 중국어 번역기를 이용한다.[3] 그런데 한국 사람도 잘 쓰지 않는 '마침내' 같은 부사어를 적절하게 구사해 해준을 놀라게 한다.

서래는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했으며, 한국에 와서는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들을 찾아 다니며 돌보는 사회복지사로 요일제 근무를 한다.

 

해준은 사격술도 틈틈히 연마하면서 강력사건의 단서를 잡기 위해 현장에서 며칠씩 잠복근무를 불사하는 까닭에 불면증으로 고생한다.

해준은 그가 담당했던 미결 사건의 용의자나 사건 관련 사진을 사무실이 아닌 집안 벽에 붙여 놓고 범인을 쫓는다. 다만, 가족을 위해 평소에는 커텐으로 벽을 가려놓는다.

해준은 평소에도 피의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 인품이 좋은 형사로 인식된다.  그가 수사를 맡은 다른 살인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등 수사실적을 인정 받아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1년 뒤 승진을 한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일하는 원전 부근의 해안도시 이포로 전근을 가는데, 우연찮게 그곳 시장에서 서래와 재혼한 남편을 만나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래가 재혼한 남자(박용우 분)가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며 풀장이 있는 빌라에서 상당히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서래 부부가 해안가로 이사를 온 것은 손해를 본 투자자를 멀리 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공자님 말씀대로 지혜를 찾아서 또는 인품 좋은 형사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온 것인가.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같은 국제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비평가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의식하여 제작되었음을 쉬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스토리가 치밀하게 설정되었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날지라도 기본 줄거리가 관객들의 정서나 상식에 맞지 않으면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하지만 안락사(mercy killing)는 살인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관객들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피의자를 불러서 신문하는 도중에 해준이 고급 일식 도시락을 시켜준다든가, 저녁식사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녀의 집을 찾아가 직접 볶음밥을 만들어주는 것은 과잉친절로 보인다. 나중에는 같은 팀에서 일하는 젊은 형사와 그녀의 집에 가서 술까지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등 해준은 직무감찰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한다.

더욱이 사건이 종결(Case closed)되었다는 핑게로 유력한 증거물이 발견되었음에도 서래에게 바닷속 깊이 버리라는 증거인멸의 교사까지 서슴치 않는다. 이 대목에서 이런 사람이 유능하다는 평판을 듣는 형사인지 의아스럽고 피의자와의 불륜(不倫)[4]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서 해준의 행동이 지난 5월 19일부터 시행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저촉되진 않을지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피의자는 수사진행 상황을 알고 사법처리를 면하려 할 것이므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담당수사관의 언행과 관심사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리고자 하는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 큰 사찰의 법고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속내를 탐색하는 서래와 해준

 

해준은 경찰공무원으로서 형법,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물론 이해충돌방지법의 적용을 받는 신분이다. 이 법은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외에 부동산 투자에 관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은 LH공사 직원들의 비리를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해 8년만에 제정되었다. 이 영화에서와 같이 수사를 담당했던 피의자가 속으로 연심(戀心)을 품은 것만으로 사적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의자였던 여자를 아내 모르게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용의자 사진을 붙여놓은 벽면의 보드를 보여주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칫 수사기밀을 알려주는 '공무상 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에 미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수사의 방향과 진행상황의 힌트를 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상식에 맞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점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공자님의 말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논어 옹야편: 知者樂水 仁者樂山)를 모티브로 하여 바위산과 바닷가를 영화의 무대로 택하였다.[5] 그리고 여주인공의 패션과 색채를 통해 각기 상징하는 바를 영화 속에 녹여냈다.

영화는 서래가 월요일마다 돌보는 할머니의 최애곡 정훈희의 "안개"를 통해 이 영화의 주제와 전개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끝으로 A사 휴대폰의 인공지능 시리(Siri)나 웨어러블 컴퓨터인 손목 시계를 통해 이 영화의 소재를 확장한 것도 디지털 시대의 MZ세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제작자의 숨은 의도라고 하겠다.

 

P. S.

2022년 11월 25일 서울 KBS홀에서 열린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헤어질 결심>이 6관왕을 차지했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은 최고상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박찬욱), 남우주연상(박해일), 여우주연상(탕웨이), 각본상(정서경·박찬욱), 음악상(조영욱)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올해 청룡영화상은 2021년 10월부터 1년간 개봉한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계 전문가들의 설문조사와 심사위원 8명의 심사, 네티즌 투표 결과를 거쳐서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했다. 1963년 첫 개최 이후 청룡영화상은 공정한 진행과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매년 시상식이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수상자를 결정한다. 심사위원들은휴대전화를 주최 측에 사전 제출하고, 심사 결과는 시상자들이 무대로 올라가기 직전까지 밀봉된다. 이 때문에 사회자인 배우 김혜수와 유연석, 후보자와 시상자들도 수상자 호명 직전까지는 심사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시상식에 참석한다. 또한 심사위원들의 명단과 투표 결과도 온라인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된다. 조선일보, "‘헤어질 결심’, 작품상 등 청룡 6관왕... 박해일·탕웨이 남녀 주연상", 2022.11.25.

 

Note

1] '미장센'은 영극영화의 용어로 무대 위 또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을 말한다. 이 영화는 특히 영화 촬영의 교본이라 할 정도로 미장센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해준이 첫 장면의 실탄사격훈련을 하는 형사로서 살인 사건을 도맡아 처리한다든가, 서래가 등산전문가가 장비를 갖춰야 오를 수 있는 암벽이나, 조석간만의 차가 큰 백사장을 결행 장소로 택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헤드 램프, 수면중 산소호흡기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훈희의 "안개" 외에도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이 OST로 사용되었다.

 

 

2]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대본 작가는 <친절한 금자씨> 때부터 대본 작업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로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등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한다.

 

3]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다음 대사를 서투른 한국어로 말하면 듣는이는 장난말로 여기거나 매우 어색해 했을 것 같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이 나자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국어를 스마트폰 번역기가 들려줄 때에는 마치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사를 듣는 듯했다.

 

* 변사사건의 피의자와 형사라는 것만 빼면 서로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

 

4] 제목부터 '불륜'을 내건 영화도 있었다. 리처드 기어와 다이안 레인 주연의 Unfaithful (2002)에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여주인공을 무장해제 시켜버린 12세기 페르시아 시인(Omar Khayyám, 1048-1131)의 4행시(Rubai)가 나온다. 지성적인 여성에게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보여준다. 고전적 시가를 통한 간접적인 '사랑의 고백' 내지 '유혹'인 셈이었다.

 

Drink wine, this is Life Eternal.
This, all that youth will give you.
It is the season for wine, roses, and drunken friends.
Be happy for this Moment;  this moment is your Life.

와인을 마셔라.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대에게 젊음을 주리니
와인과 장미 그리고 술 취한 친구들의 계절
지금 이 순간 행복하라. 이 순간이 바로 너의 삶일지니

 

이와는 달리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상대방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들었다고 서래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건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는 것도 이 영화 감상의 묘미라 하겠다. 해준이 틈이 날 때마다 눈에 인공누액을 넣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 인천 앞 바다 무의도의 하나개 해수욕장 해변

 

5] 이 영화는 산과 바다라는 무대가 특이하여 로케 장소가 어디인지 매우 궁금하였다. 극중의 사찰 장면은 순천 송광사에서 찍었다. 사건이 벌어진 구소산은 기름봉 정상부가 평평한 바위산으로 되어 있는데 속초 범바위를 비롯해 서울 백운대 등 여러 곳에서 촬영한 후 정교한 CG 편집을 거쳤다고 한다. 영화에서 가상의 도시 이포는 경주 부근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호미산은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이포의 해변에서는 매우 이국적인 바다 풍경을 보여준다. 인천시의 협조를 얻어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과 그곳 해상관광탐방로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포 해변이 동해 바다라면 밀물이 들어오는 장면은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Oblivion〉을 보며 떠오른 생각  (0) 2022.09.14
스파이 액션 영화 <헌트> (2022)  (0) 2022.09.06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0) 2022.06.27
Finding You (2021)  (0) 2022.05.23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 2013)  (0)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