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Whitman Park 2022. 6. 27. 17:30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큰 화제를 모았다.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데 이어 2022년 글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1] 일본의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우수작품상, 우수 감독상, 우수 각본상, 우수 남우주연상, 우수 촬영상, 우수 조명상, 우수 녹음상, 우수 편집상, 신인배우상 등 거의 모든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단편소설인 원작을 가지고 3시간짜리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 감독은 '일본의 봉준호 감독'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부산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고 한국 배우가 3명이나 중요한 배역을 맡았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었을 때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3시간 짜리 예술영화로서는 비교적 양호한 흥행성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점이 비평가와 관객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을까?

 

※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은 스포일러가 들어 있는 [영화의 줄거리]는 건너뛰도록 하고, [감상의 포인트]에서도 Q만 읽어보고 영화를 보고난 후에 나머지를 읽는 것을 권해 드린다. 여기서의 스틸 사진은 VOD영화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 <드라이브 마이 카>가 수록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영화의 줄거리

남자(가후쿠/家福, 히데토시 니시지마 분)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여자(오토/音, 레이카 키리시마 분)는 우아한 미모를 자랑하는 방송작가이다. 그들은 교외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빨간색 Saab 900 터보를  몰고 다닌다. 어려서 폐렴으로 죽은 딸 말고는 자녀도 갖지 않고 부부가 대본 읽는 것을 서로 도와주며 연기를 비평해주고 극본의 소재를 들려주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러나 조금만 곁에서 지켜보면 이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집에 들어갈 때 초인종을 누르는 법 없이 자기 열쇠로 열고 들어간다. 연기에 대한 코멘트나 대본 낭독 외에는 시답잖은 사적인 대화가 거의 없다. 부부관계도 의무적으로 행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자는 섹스를 하면서 극본의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그것을 스토리로 만들어 남자에게 들려주는 게 루틴이 되었다. 부부 사이의 빈 칸을 고상한 클래식 음악, 그것도 라디오나 CD가 아닌 LP 음반으로 채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을 마친 가후쿠를 분장실로 찾아와 젊은 배우 다카츠키를 소개하는 오토
* 부부관계 중에도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주인공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

 

남자가 블라디보스톡 국제연극제에 심사위원으로 가기로 한 날 한파로 항공편이 결항된다. 전화연락 없이 집에 가보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큰 음악소리와 함께 그가 들어보지 못한 아내의 교성이 들린다. 침대 위의 상대는 아내가 소개시켜준 젊은 배우 유망주 다카츠키(마사키 오카다 분)가 아닌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남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집을 나와서 나리타 공항 부근의 호텔에 투숙한다. 몇 시간 후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블라디보스톡에 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톡에서 돌아와 일상생활에 복귀한 후에는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후쿠가 연극 대본 연습 삼아 아내가 녹음해 준 희곡 대본을 카세트테이프로 듣고 있는데 현실과 오버랩되고 심지어는 혼동되기까지 한다. 급기야 가후쿠가 운전하던 중 교차로에서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키고 그의 차는 수리를 위해 공장에 보낸다. 가후쿠 역시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사고후유증은 없으나 한쪽 눈에서 이상이 발견된다. 의사의 말로는 녹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어 안압을 낮추는 안약을 하루에 2번씩 넣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차 운전도 시력이 악화되기 전까지만 조심해서 해야 한다.

그가 집에 돌아와 수리를 마친 차를 몰고 외출을 할 때 오토가 굳은 표정으로 저녁에 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녁에 귀가해보니 침대에 누워 있던 여자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비 오는 날 치룬 아내의 장례식에 상간남도 조문을 왔지만 가후쿠는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 목례만 할 뿐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맡아서 하게 된다. 아내가 녹음을 해주어 늘 차 안에서 듣고 다녔던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Uncle Vanya)>란 희곡이다. 그곳에서 주최 측은 상주 아티스트의 안전을 위해 직접 차 운전을 할 수 없고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토코 미우라 분)를 쓰도록 한다. 가후쿠는 그가 15년 동안 아끼며 몰아온 차의 운전대를 선뜻 넘기려 하지 않다가 미사키의 테스트 드라이브를 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그 결과 남자는 미사키가 모는 차의 뒷자리에 앉아 카세트테이프의 연극 대사를 들으며,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세토우치 바다 앞의 숙소와 히로시마 연극회관 사이를 매일 오간다.

 

 

히로시마의 연극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등지의 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 자국어로 연기를 하며 대사는 여러 나라 말로 자막으로 보여줄 참이다. 캐스팅이 된 배우 중에는 수화로 말을 하는 한국인도 있고 오토의 상간남이었던 다카츠키도 있다. 감독인 가후쿠는 놀랍게도 다카츠키에게 중심배역인 바냐 역을 맡긴다. 이들은 극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대본 읽기에 열중하고,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무대연기 리허설까지 진행한다. 그런데 다카츠키가 파파라치의 사진촬영을 막으려다가 손찌검을 벌이고 결국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연배우가 공석인 상태에서 주최 측은 두 가지 옵션을 제시한다. 하나는 공연을 취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냐 역을 오래 연기했던 가후쿠가 맡는 것이다. 한사코 무대에 설 수 없다고 버티던 가후쿠는 동료 배우들이 입을 타격을 걱정하고 주최측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미사키가 5년 전 모친이 산사태로 세상을 떠난 후 무작정 떠나온 홋카이도의 벽촌 마을에 가보자고 제안한다.

남은 시간은 48시간. 쉼없이 달려야 하기에 교대로 운전을 하자고 말하지만 미사키는 차 운전은 자기담당이라며 운전대를 놓지 않는다. 그러자 가후쿠는 앞자리로 옮겨 앉아 딸 같은 미사키와 맞담배를 피우며 산을 넘고(터널) 바다를 건너(카페리) 홋카이도 눈 덮인 폐허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미사키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은 오토와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체호프 원작인 극본을 한ㆍ중ㆍ일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올린 다국어 연극은 가후쿠가 바냐 역을 연기한 가운데 관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며 막을 내린다.

 

감상의 포인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다카마사 오에와 공동으로 각본을 쓰면서 하루키의 원작 못지 않게 긴 여운이 남는 세 시간 짜리 영화를 만들었다.[2] 사실상 영화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3] 소설은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몇 개의 문장이나 단락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나레이션이 없는 영화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영화의 배경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도 '로드무비(road movie)'로서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남자(가후쿠)가 여자(오토)와  어떠한 애증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서사를 풀어내는 데 초반 40분을 소비했다. 출연배우들을 자막으로 소개하는 오프닝이 올라간 다음에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도 소설 못지 않게 많은 복선을 깔고 있는데 한국의 관객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의문을 Q&A식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이것을 잘 마친 사람은 좋은 별점을 준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화가 지루하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 깔끔하긴 해도 온기가 없어 보이는 가후쿠와 오토가 사는 집

 

Q1 : 이 영화에서 가후쿠와 오토는 이른바 '쇼윈도 잉꼬부부'였던 셈인가?

A : 두 사람은 전ㆍ현직 배우로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기에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20년 전 딸을 폐렴으로 잃고 난 뒤 둘째도 갖지 않기로 하면서 부부 사이가 서먹해진 것 같다. 섹스리스 부부는 아니지만, 그것도 오토가 자기는 오르가즘을 느낄 때 이야깃거리가 떠오른다고 계속 자기암시를 하고 이에 가후쿠가 동의함으로써 간신히 유지되는 모양새다. 

    

Q2 : 가후쿠는 오토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자동차의 카세트테이프로 그녀가 읽어주는 대본을 들으며 대사를 계속 연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습관일 뿐인가?

A : 영화 대사 중에도 나오지만, 가후쿠는 아내의 불륜을 질책하기보다도 아내가 저녁에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혹시 헤어지자고 할까봐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던 것을 자책한다. 오토의 사인(死因)이 지주막하출혈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골든타임에 집에 있었더라면 아내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후회막심이다. 따라서 카세트테이프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를 그녀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미안함을 더는 것이라 여긴다. 더욱이 가후쿠는 차 운전이나, 턴테이블로 레코드 음반을 감상하는 게 습관이 된 것처럼 Saab 차를 탔다 하면 카세트테이프를 트는 것이 루틴화된 것으로 보인다.

 

Q3 : 가후쿠가 오토의 불륜을 목격하고도 안 본 것처럼 가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토는 과연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A : 우리나라 고전설화에서 처용(處容)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춤을 추었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남자로서 당연히 벼락같이 상간남의 멱살을 잡고 아내를 혼내주고 싶었겠지만 그녀가 자기 연극인 생활의 중요한 파트너이기에 어찌보면 무책임하게 현장을 피한 것이라 생각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다카츠키는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고, 가후쿠는 그를 자기 통제하에 두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건대) 언젠가 복수를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오토 역시 이러한 미묘한 관계의 변화를 알아채고 남편과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상의하려고 했을 것이다.

 

Q4 : 오토가 남친 방에 몰래 들어가서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 오는 소녀의 이야기를 남편인 가후쿠는 물론 다카츠키에게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카츠키가 그 뒷이야기까지 들은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A : 오토는 섹스를 할 때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하면서 가후쿠와 다카츠키에게 개별적으로 성적 자극제 삼아 그 말을 했던 것이다. 다카츠키가 가후쿠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그와 더 오래 성관계를 가졌다는 말도 된다. 다카츠키가 가후쿠에게 바에서 술 한 잔 하자고 하면서 이 말을 꺼낸 것은 오토에게 확인해볼 수도 없으니 그가 거짓으로 꾸며댄 말일 수도 있다. 그보다는 배우로서 연기생활에 위기를 겪고 있는 다카츠키가 가후쿠에게 "나 이런 사람이요" 하고 과시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Q5 : 오토가 칠성장어 이야기를 한 것은 어떤 무의식의 발로인가?

A : 가후쿠가 칠성장어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칠성장어(lamprey, sucking fish)는 아주 특이한 수생동물이다. 강력한 빨판을 가지고 다른 어류에 기생해서 양분을 빨아벅고 사는 물고기이다. 오토가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자기는 바위돌에 붙어 지내는 칠성장어이며 다른 생물을 괴롭히지 않고 해초처럼 흔들리며 지내고 싶다고 했는데 이 말은 오토의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든 다카츠키든 누군가와 붙어 살지만 그것은 사랑이나 섹스보다도 자기존재의 표현방법으로 택하였다는 것이다.

 

* 다른 어류에 빨판을 붙이고 기생하는 칠성장어
* 바위돌에 붙은 칠성장어처럼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오토 가후쿠

 

Q6 :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다국적 배우들을 기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A : 히로시마는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도시이다. 그 당시 아시아 여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나 무력 공격을 받았기에 과거 청산의 의미에서 다국적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연극판을 벌인다는 것이 연극제의 취지라고 생각된다. 수많은 영화비평가들이 격찬했듯이, 이 영화는 실현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 그런 기획의도를 드러내 보여준 것만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Q7 : 청각장애가 있는 한국의 여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따로 있는가?

A : 이것 역시 영화비평가들이 높이 평가한 대목이다. 극중 청각장애인 유나 역을 맡은 박유림 배우가 한 말이지만 비록 수화로 소통을 하지만, 말로써는 할 수 없는 정신적 교감이라든가 다른 소통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극중 연극의 결말 부문에서 소냐 역을 맡은 유나가 바냐 삼촌을 뒤에서 안고 수화로 그녀의 말을 전하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바냐 역을 맡은 가후쿠가 오토의 생전에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소통방법이었다.

그리고 유나가 장애가 있음에도 연극제에 캐스팅이 되자 주최측 간사인 윤수(진대연 분)가 이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을 사과도 할 겸 가후쿠를 집으로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당연히 운전기사인 미사키도 동석하는데 이때부터 이들 네 사람은 부대등한 고용관계가 아닌 서로 대등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후쿠로서는 윤수가 유나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배웠다는 것은 오토와의 뭔가 불완전했던 부부관계를 되돌아 볼 때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가후쿠 연출가를 집에 초대하여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윤수와 유리 부부

 

Q8 :  미사키가 산사태로 죽은 모친에게 사치라는 또다른 인격이 있었다고 밝힌 까닭은 무엇일까?

A : 원작자인 하루키의 관심사항이기도 하지만, 딸인 미사키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인식방법이기도 했다. 사춘기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편리한 것만 취해 딸을 혹사시키고 거짓말을 일삼는 데다 심사가 뒤틀리면 폭력마저 불사하던 엄마가 잠깐동안 전혀 딴 사람처럼 변하는 것을 미사키는 엄마가 도펠갱어(다중인격자)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거니와 실제로 정신병의 일종인 도펠갱어의 진단은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대부분은 어렵고 힘든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당사자의 짐짓 치밀한 연기라고 보고 있다.

여담이지만 미사키가 산사태가 일어나 집이 매몰된 곳에서 준비해 간 꽃을 던지는 것은 그곳이 엄마의 가상 묘소가 아니라 흙더미라는 파도에 휩쓸려 엄마가 조난 당한 것이라 믿은 까닭이다. 이 점도 영화비평가들이 극찬한 각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미사키는 자기가 노력했으면 두 번째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반파된 집안에서 엄마를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후회막급의 심정이다. 미사키는 담배에 불을 붙여 마치 향을 피우듯이 엄마의 가상묘 앞에 꽂아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후쿠는 미사키를 안아주며 "내가 네 아빠라면 '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고 말했을 것이다"라고 위로해준다. 이 말은 가후쿠가 오토의 죽음을 놓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Q9 : 원작이 하루키의 소설인 것을 감안할 때 하루키적인 특징을 보여주거나 드러낸 것은 무엇무엇이 있는가?

A : 일반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에 나타나는 특징은 ① 부담없이 편한 페이지 넘기기 ⇒ 무리 없는 도쿄-히로시마-홋카이도 장면전환, ② 개성 만점의 보통 남자 주인공 ⇒ 연극연출 겸 배우의 연극무대 , ③ 재즈나 클래식 같은 음악 감상[4] ⇒ 턴테이블이 있어야 하는 레코드 음악, ④ 이상심리 ⇒ 폭력적인 엄마가 상냥한 엄마와 동거하는 도펠갱어 현상 ⑤ 비정상적인 섹스 ⇒ 여주인공이 절정상태에서 무의식 중에 흘리는 이야깃거리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소위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는 빨간색 Saab 900 터보가 등장해 가속이나 감속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운전이란 어떤 상태일까 상상을 하게 만든다.

 

* 원작자인 하루키는 소문난 음반수집가로 그의 집에는 15천장의 아날로그 LP음반이 있다고 한다.

 

Q10 :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각본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우엇이라고 보는가?

A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작도 훌륭하지만 여기서 한두 걸음 더 나아가 무릇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요소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되풀이해서 말하자면 다국적 배우에 의한 다국어 무대, 장애자와 일반인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상상 또는 환상을 이용한 감동적인 장면의 연출, 점차 고조되던 갈등의 원만한 해소 등 원작을 뛰어 넘는 대본작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했다. 

 

Q11 : 이 영화 속에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연극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는 어떠한 장치로 쓰였는가? 다른 대안을 찾을 수는 없었는가?

A : 영화의 주인공이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이기 때문에 연극이 액자소설(frame story)처럼 영화 속에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고전적 화제작도 등장하지만, 이 영화와 스토리 전개가 아주 흡사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채택되었던 것 같다. 더욱이 희곡 속 몇 장면의 대사는 영화 속의 대사와 거의 100% 싱크로나이즈 되고 있다.

 

Q12 : 이 영화가 로드 무비 답게 자동차 주행장면을 오래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시퀀스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가? 다시 말해서 런닝타임 178분은 적당했는가? 아니면 지루했는가?

A : 이 영화를 관광용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영화감독이나 촬영감독, 제작자는 빨간 Saab 승용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다. 주인공이 15년이나 된 차를 새 차처럼 아끼고 또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차종인 데다 차 안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의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차 운전을 싫어하거나, 아무런 액션도 없이 지루하게 진행되는 장면을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초반의 서사와 함께 낮은 별점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 히로시마현의 아키나다(安芸灘) 대교
*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맞담배를 피우며 선루프를 열고 담배재를 터는 두 사람

 

Q13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사키가 가후쿠가 아끼던 차 Saab를 그것도 한국에 와서 타고 다니는 것은 무엇을 암시한다고 보는가?

A : 이미 고용관계에서 대등한 인간관계로 바뀐 뒤에 미사키가 가후쿠를 히로시마의 이곳저곳으로 안내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미사키가 평화공원 옆 쓰레기 소각장을 보여주는 등 전면에서 리드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가후쿠가 홋카이도에 다녀와 중대 결심을 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가후쿠가 가장 두려워하는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미사키가 자기는 '거짓말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가후쿠로서는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서 놓여날 수 있었고 연극제가 성공을 거둠에 따라 더 이상 차 속의 카세트테이프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사키는 죽은 딸이 살아 있으면 그녀와 같은 24세가 아닌가. 그래서 미사키가 한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그가 몹시 아끼던 Saab 차를 선뜻 선물하였을 거라고 짐작된다.

끝으로 일본의 도로는 좌측 통행임에도 이 차는 계속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채로 였다. 15년이 넘은 차를 고칠 필요 없이 계속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으려면 한국같은 우측 통행 나라가 제 격일 것이다.

 

Q14 : 이 영화에서 상해치사 혐의를 받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밖에 법적인 측면에서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 또 있는가?

A : 이 영화는 물론 법률 영화의 장르에 속하진 않는다. 오토의 불륜과 상간남의 처벌은 지금은 폐지된 간통죄, 이혼 소송과 관련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 다카츠키가 대만 여배우에게 '상담'을 한다며 대시하는 것, 그 몰래 사진 찍는 파파라치에게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는 욱 하는 성미,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나 회개를 모르는 성격도 유사시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영화의 전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사키의 모친은 문제 투성이 인간이었다. 미성년 자녀에게 운전을 강요하다시피 한 것, 가정폭력을 일삼은 것, 온갖 거짓말로 현혹한 것은 미성년 자녀학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 가후쿠가 홋카이도 산사태 현장을 찾아간 것은 불가항력적인 死別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 홋카이도 산사태 현장에서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미사키를 위로하는 가후쿠

 

Q15 : 하루키를 잘 모르는 마블 영화 세대에 대해서도 이 영화가 어필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A : MZ세대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보다는 마블 코믹을 볼 기회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앞의 Q9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루키의 소설이 주는 매력에 빠진 사람이라면 템포가 느린 이런 영화도 좋아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같은 이유에서 템포가 느리고 그만큼 관객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에 부담을 느끼거나 화끈한 액션이 없는 영화를 기피하는 사람은 런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것은 보지도 않고 제껴버릴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 가후쿠의 Saab 차를 넘겨받고 한국에 와서 새 삶을 개척하는 미사키

Note

1]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밖에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받았다. 특히 외국영화로서 LA와 뉴욕, 전미 등 메이저 영화비평가협회 세 곳(LAFCA, NYFCC, NSFC)에서 작품상을 받은 것은 Goodfellas, Schindler's List, L.A. Confidential 같은 미국 영화를 빼놓고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가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전세계 36개국에서 번역·출판되어 11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진 탓인지 작가는 발표 후 24년 동안 영화화를 일체 허락하지 않았으나, 영상 시인이라 불리는 트란 안 홍 감독의 4년 간의 구애 끝에 영화화가 결정됐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트란 안 홍 감독의 아름다운 색채와 서정적인 영상에 섬세한 감성을 음악으로 풀어낸 조니 그린우드의 OST가 더해져 ‘하루키 스타일’을 영상으로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출처: 광주드림. 우리나라에서는 〈헛간을 태우다〉(納屋を焼く, 1983) 가 이창동 감독의 미스터리 영화 <버닝>(2018)으로 만들어졌다.

 

*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우치(瀬戸内)의 해변도로

 

3] 이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점은 여러가지다. 하루키 소설에서는 노란색 Saab 컨버터블이지만, 영화에서는 빨간색 Saab 터보이다. 빨간색 차가 히로시마 세토우치의 풍광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차안의 촬영장면이 많은 터에 녹음할 때 바람소리를 피할 수 있고 두 사람이 선루프로 손을 올려 담배재를 터는 가외의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가후쿠가 음주운전과 녹내장으로 차를 운전할 수 없게 되어 대리기사를 고용하여 도쿄 일원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수년 전 연극제 참여 아티스트가 차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주최 측이 전속기사를 두는 것으로, 그것도 예산을 다 써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도 본래 국제적인 영화를 지향하여 무대를 부산으로 설정했으나 코비드19로 인해 히로시마로 변경했다고 한다.

 

4] 하루키는 젊어서 레코드 점에서 일한 이래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부지런히 음반점을 들락거리고 있다. 2022년 3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그의 음악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 의하면, 그의 집에는 부인의 원성을 들어야 할 정도로 많은 1만5000장 정도의 레코드가 있다고 한다. 그중 70%는 재즈, 20%는 클래식 음반이고 나머지는 록과 팝송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1950~60년대 LP 황금기의 음반들에 애착을 갖고 있으며, 오래된 레코드를 꺼내 부지런히 닦거나 오디오 장비를 바꿔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LP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명반이나 희귀반(稀貴盤)보다는 가성비(價性比) 좋은 음반을 사거나 팔며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도쿄FM의 일일 DJ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제는 No War. 직접 선곡한 11곡을 들려주며 하루키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했다. "늙은이들이 멋대로 시작한 전쟁에서 젊은이들이 죽고 있다"고 비판하며 제임스 테일러의 "Never Die Young"을 틀어주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음악이 전쟁을 끝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요?" 어수웅, "라디오 DJ 하루키 對 … ", 조선일보, 2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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