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 2013)

Whitman Park 2022. 3. 12. 17:18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 수집가인 삼성(이건희)과 간송(전형필)의 명암(明暗)이 엇갈렸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 후 고인이 수집해 온, 이루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이건희 콜렉션을 유가족이 아무 조건없이 국가에 기부를 해 우리 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에 정부는 송현동 경복궁 옆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간송미술관에서는 2022년 1월 소장 국보 불상 2점을 K옥션 경매에 내놓았으나 유찰되고 말았다. 2020년에도 보물 2점을 내놓았다가 유찰되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약 30억원에 매입한 적이 있어 간송 미술관의 처사에 설왕설래가 많았다.

 

재방송[1]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2013년작 <베스트 오퍼>(伊 La migliore offerta, 英 The Best Offer)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삼성과 간송의 컬렉션 역시 누구 소유로 하는 것이 좋은가? 진귀한 예술품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더라도 일반 대중도 이를 감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유명 콜렉터들은 진품을 발견하면 값을 따지지 않고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팔아서 그것을 사들인다는데 영화의 주인공처럼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청약 조건(the best offer, 최고입찰가)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음악(OST)은 노년의 엔니오 모리꼬네가 담당하였는데 멜랑콜리한 멜로디 위로 신비스러운 여성들의 스캣송이 유령처럼 흘러나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은 유럽에서 첫손에 꼽는 경매소를 운영하면서 미술품 감정도 하고 스스로 수집도 하는 아주 까다로운 노신사이다. 경매장에서 그의 수족이 되어 올드먼이 점찍은 미술품을 사들이는 역할은 전직 화가인 빌리 휘슬러(도널드 서더랜드)가 수행한다.

어느날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젊은 여성 클레어(실비아 획스)로부터 부모에게 물려 받은 미술품과 골동품을 감정한 후 경매로 팔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아직 미혼인 올드먼은 그녀에 호기심 반 직업의식 반으로 그녀의 고풍어린 빌라를 찾아간다. 일단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는 그녀의 요청을 수락하고 그녀한테서 받은 매우 진귀해 보이는 자동인형(automation)의 수리를 로버트(짐 스터게스)에게 맡기면서 젊은이들은 어떻게 상대방의 호감을 얻고 사귀는지 은근슬쩍 물어본다. 지금까지 어떤 여자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사랑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 미술품 감정사 올드먼은 빌라에 가득찬 앤틱 가구보다 신비스러운 클레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미술품 감정사이자 수집가인 올드먼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그는 평소에도 위조한 미술품을 전문감식안으로 보면 어떤 위조품에도 진품의 가치가 들어 있기 마련이며 여기에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이 드러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진품은 800만 파운드를 호가함에도 가품이라고 단정하고 9만 파운드로 헐값에 경매에 넘긴다. 그러면 빌리가 경매에 뛰어들어 250만 파운드에 사겠다고 하면 올드먼은 아주 싸게 고가의 진품을 장만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날 비가 내리는 밤에 클레어의 집을 찾아간 올드먼은 그집 문 앞에서 강도를 당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창밖으로 밖을 내다보던 클레어가 달려나와 올드먼을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자 올드먼은 감격한다.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 있어서 은둔 생활을 하던 클레어가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온 것이라 믿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감사의 표시로 그녀를 자기 집에 초대한다.

 

* 노련한 경매사 올드먼의 베스트 오퍼는 과연 그녀에게 통할 것인가?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비밀의 방으로 그녀를 안내한다. 그가 수십년 간 빌리와의 협업을 통해 수집한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화 콜렉션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올드먼은 이 그림들을 보며 감격해 하는 그녀를 힘차게 포옹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타인과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았던, 장갑조차 벗지 않았던 그로서는 놀라운 발전이었다.

올드먼은 클레어와 동거를 결심하고 같이 살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날 올드먼이 집에 와서 보니 클레어도 비밀의 방에 걸어두었던 수많은 초상화들도 모두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올드먼이 로버트에게 맡겼던 자동인형은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드먼 덕분에 위조품에도 진짜가 포함될 수 있었다며 클레어의 모친을 그린 초상화가 실은 빌리가 그렸던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사건은 자기가 형편없는 화가라고 깔보았던 빌리 휘슬러가 클레어, 로버트와 짜고 그를 속이고서 그의 컬렉션을 송두리째 훔져간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도 미술품 위조 사기에 가담했으므로 경찰에 신고를 못할 것이라고 믿고 그들은 허름한 빌라를 잠시 빌려서 앤틱 가구와 골동품이 많이 있는 것처럼 꾸며놓고 대담한 사기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한 사기 사건의 충격으로 쓰러진 올드먼은 한참 후에야 정신병원에서 퇴원한다. 그리고 올드먼은 클레어가 전에 이야기 했던 프라하에 있는 시계 카페를 찾아간다. 클레어가 말한 카페가 과연 실재하는지, 그를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진심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를 보면 여러 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 주연의 <스팅>(Sting, 1973)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 두 사람은 복수를 위해 상대를 골탕 먹일 3단계 작전을 세운다. 우선 그가 포커와 경마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한 다음 거액을 걸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네가 희생하는 척하면서 돈을 모두 가로채고 상대를 쫓아버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올드먼의 취약점은 최고의 경매사이자 빈틈 없는 미술품 감정사라는 허울 속에 감춰진 여성에 전혀 무지한 남자라는 것이다. 평소 그에게 무시 당했던 여러 사람이 그에게 골탕을 먹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타격을 가하게 된다.

 

여기서 영미법 규범인 "손이 더러운 자는 형평법상의 구제를 받을 수 없다(Equity must come with clean hands.)"는 '클린 핸즈 법칙(Clean hands doctrine)'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올드먼이 빌리와 클레어 일당을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고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위법한 일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가? 올드먼이 그의 컬렉션을 도난 당한 것은 사실이므로 신고를 접한 수사기관은 일단 수사에 착수하여 사기절도범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컬렉션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올드먼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예컨대 초상화를 위조품이라고 속여서 헐값에 매입한 것 등) 별건(別件)으로 처리하면 된다. 이 영화에서 노련한 경매사 올드먼이 경찰서에 갔다가 되돌아 나온 것은 클레어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올드먼이 평소의 직업의식에 따라 행동했다면 경찰이 아닌 사립탐정을 고용하여 범인들의 행적을 쫓게 했을 것이다. 그가 여러 가지 사태의 추이를 좀더 냉정하게 판단하였다면 미술품 진위의 식별, 의심스러운 금전거래, 탈세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에 기부[3]하겠다고 선언했을지 모른다. 사기절도단 일당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어 추적이 가능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노추(老醜)'라고 할까 미모의 여인 클레어가 한 말이 진심이라고 실낱같은 믿음을 가졌던 탓이 아닐까. 그러니 그에게 주어진 답은 시계 카페의 "째깍 째깍"하고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만일 버질 올드먼이 프로페셔널답게 복음서에 나오는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처럼 혼신을 다해 감정을 했는지, 온 재산을 팔아서라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긍정적인 결론을 얻었다면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원죄(原罪)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천국(Kingdom of Heaven) 밖에는 없는 게 아닐까.[4]

 

* 여자뿐만 아니라 기계에 대해서도 무지한 올드먼이 자동인형기계 때문에 로버트를 만난 것이 함정이었다.

Note

1] 2022년 3월 들어서도 평일 오후면 경인방송(OBS)에서 <전기현의 씨네뮤직> 특집을 재방영하고 있다. 그 시간 중에 전기현 씨의 해설로 <베스트 오퍼>의 주요 장면을 회상할 수 있었다. 과연 내 인생의 소중한 것을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손에 넣겠다고 오퍼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2] 현재 간송미술관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운영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야  정부에 박물관으로 등록하여 국보・보물과 같은 국가지정 문화재에 대해 정부로부터 관리 및 보수비용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성북동에 있는 보화각(葆華閣)에는 수장고를 짓고, 비지정 문화재에 대해서도 보존처리 및 훼손예방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22년 1월에는 대구에서도 국비와 지방비를 투입해 간송미술관 건립 공사에 착수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국보 2점 시장 내놓은 간송미술관, 굴욕당할 만했다“, 신동아 2022.3월호.

 

3] 외국에서는 미술품 컬렉션을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려 정부 또는 국립미술관에 기증한 사례가 많이 있다. 기증자의 이름을 붙인 전시홀이 그러한 케이스다. 반 고흐의 유족인 요한나 봉허도 빈센트 반 고흐의 모든 작품과 빈센트와 테오 형제간에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네덜란드 정부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양도하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그의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밤의 테라스" 같은 반 고흐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도 독립 미술관의 건립, 상속과 세금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소장품을 모두 네덜란드 정부에 넘겼다고 한다.

 

4]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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