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동절 연휴(Labor Day, 2013)

Whitman Park 2022. 3. 5. 11:15

요즘 점심 먹고 종편의 시사 프로를 보고난 후 경인방송(OBS)에서 재방송해주는 <전기현의 씨네뮤직> 특집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옛날 보았던 영화의 기억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처음 보는 영화는 영화음악을 귀 기울여 듣거나[1] VOD로 볼 작정을 하곤 한다.

 

3월 들어서는 전기현 씨가 적을 사랑한 여인의 이야기에 이어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 몇 편을 소개했다. 케이트 윈슬렛(1975~ ) 주연의 <레이버 데이>는 전에 영화를 본 적이 있고, 영화평을 남기질 못했는데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기에 여기 Tistory에 감상평을 올리기로 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Titanic, 1997)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하거니와 2008년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에미 상과 골든글로브 상도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2]

 

 

미국에서 9월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노동절)는 여름철 마지막 연휴이기에 사람들은 못 가본 피서지를 가보거나 가을을 맞기 위한 기분전환 휴일을 즐기곤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감옥에서 탈출한 남자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여자가 등장하여 인생의 여름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수확의 계절을 맞는지 보여준다. 조이스 메이나드의 동명 소설(Labor Day, 2009)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13살 아들 헨리와 싱글맘 아델이 살고 있다. 헨리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는 엄마(케이트 윈슬렛)가 걱정이다. 1주일에 딱 한 번 외출하는 날 슈퍼에 가서 장을 볼 때에도 불안하기만 하다. 하필이면 슈퍼에서 헨리는 어떤 건장한 남자(조슈 브롤린)에게 붙들린다. 엄마한테 말해서 자기를 며칠만 숨겨달라는 것. 아들에게 위해를 가할지 몰라 그를 차에 태우고 집에 온다.

마침 TV뉴스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살인범 죄수가 탈옥했다며 그의 사진을 비쳐준다. 베트남 참전용사 프랭크는 아기를 낳은 신부에게 아기의 아빠가 누구냐고 추궁하다가 그녀를 밀친 것이 그만 쓰러지다가 라지에터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다.

아델도 마음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헨리를 낳은 뒤 여러 차례 유산을 하고 가까스로 여자아이를 임신했는데 그만 사산을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빠진 아델은 남편도 거부하고 부부는 이혼하였다.

 

프랭크는 자기는 무서운 살인범이 아니며 우발적으로 아내를 밀친 것이 죽음에 이르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를 숨겨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경찰이 찾아오면 결박 당해 있었다고 하라고 이른다. 우려와는 달리 프랭크는 자상한 남자였다. 오랫동안 남자어른이 없었던 집이어서 고장난 것, 더러워진 것을 말끔이 고쳐준다. 헨리에게 자동차를 수리하는 법, 또 야구공을 던지고 배트로 치는 법을 가르쳐준다. 마치 친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다.

프랭크는 복숭아를 가지고 파이 만드는 법을 두 모자에게 가르쳐준다. 오븐에서 파이가 구워지는 동안 세 사람 사이에도 남모를 유대감이 깊어진다. 프랭크가 캐나다로 떠날 생각이라고 밝히자 아델도 은행에서 돈을 모두 인출해서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헨리는 자기만 떼어놓고 갈 줄 알았는데 같이 가자는 말에 동의하지만 양육비를 보내주는 친부에게는 쪽지를 남겨놓기로 한다.

 

그 사이 아델의 집을 방문한 이웃집 여자와 헨리를 집까지 차로 태워다 준 경찰관, 헨리의 쪽지를 읽은 친부, 거액을 한꺼번에 인출할 수 없다는 은행원 그들의 의심이 쌓이면서 결국 그들의 도피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경찰이 닥쳤을 때 결박 당한 채로 있던 모자도 무사히 풀려난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성년이 된 헨리는 프랭크에게 배운 복숭아 파이 레시피를 가지고 어엿한 파이가게를 차렸다. 유명해진 헨리의 파이 가게 기사를 읽어본 프랭크가 헨리에게 편지를 보내어머니한테 연락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출소한 프랭크는 옛날 그가 숨었던 아델의 집으로 찾아간다.

 

감상의 포인트

탈옥(prison break)을 소재로 한 영화는 우선 <도망자>(Fugitive) 시리즈가 있다. 성공한 탈옥수 이야기는 <빠삐용>, <쇼생크 탈출>에 나온다. TV드라마, 전쟁포로 수용소까지 포함한다면 미국의 인기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비롯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몸을 호리호리하게 만들어 쇠창살을 비집고 나가 땅굴을 파고 높은 펜스를 넘어 도망간 신창원 탈옥 사건(1997.1.)도 있었다.

왜 사람들은 실화든 허구든 탈옥 사건에 흥미를 느낄까?

 

 

그것은 인력과 장비, 무기까지 갖춘 교도관과 아무 것도 없는 맨몸의 죄수가 대결하는 ‘고양이와 생쥐’의 싸움 같기 때문이다. 만일 죄수에게 처음부터 죄가 없거나 감옥 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었다면 관객들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탈옥수를 응원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인질이 인질범을 동정하고 그와 한편이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3]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신드롬은 자신보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트라우마적 유대(traumatic bonding)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종종 유괴나 납치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용어는 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간헐적으로 괴롭히고, 때리고, 위협하고, 학대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 간에 강한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 경우에 쓰이기도 한다. 2017년부터 시즌3까지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스페인의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에서도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갓난아기까지 잃은 프랭크의 못다한 부정(父情)과 남편의 위로,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워한 모자의 결핍감이 표면상의 인질범과 인질들 사이의 유대를 서로 공고히 했던 것 같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을 되새기게 한다.

 

Note

1] 영화 <레이버 데이>에서 전기현 씨가 소개한 OST 영화음악은 Fernando Sor의 연습곡 b단조(Op.35, no.22)이다. 프랭크가 뒤뜰에서 두 모자와 함께 아버지처럼 야구 게임도 하고 서로 손을 부딪히며 정겹게 복숭아 파이를 만드는 장면(바로 위 사진)에서 흘러나온다.

 

2] 영국 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2022년 2월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28회 SAG(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HBO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Mare of Easttown)의 열혈 여형사 역으로 TV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40대 중반의 윈슬렛은 2021년 촬영한 영화의 베드신에서 그의 몸매를 수정하려는 감독에게 “Don’t you dare!(감히 그러기만 해봐!)”라고 외치며 강하게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변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몸은 아름답다. 그러나 필터와 보정으로 계속해서 지우고 덮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변해가는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지, "베드신 찍던 케이트 윈즐릿이 “감히 그러기만 해봐!” 외친 까닭은?",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민지의 런던매일], 2022.2.26.

 

3]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8월 23~28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의 크레디트은행(Kreditbanke)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강도 두 명이 은행을 습격해, 6일 동안 4명의 직원(여자 1명 포함)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은행 직원들은 강도들과 함께 금고실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매우 친숙해졌고, 정서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은행 강도들을 위해 경찰과 직접 협상했으며, 강도들에게서 풀려날 때에도 그들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들은 은행 강도들이 투항하기로 결정한 후 경찰의 사살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인간 방패 역할을 수행하면서 은행 강도들을 보호했고, 법정에서는 이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웨덴의 범죄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리학용어사전, 20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