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미스트롯2 - 인생곡 "붓"(2021)

Whitman Park 2022. 2. 21. 08:20

G: TV조선의 오디션 프로 <미스트롯2>(2021. 3. 4) 보셨습니까?

P: 네, 다 보진 못했지만 하도 여러 군데서 문자투표하라고 성화여서 하이라이트 장면은 보았어요.

전국민 문자투표에 5백만 명이 넘게 참가했다니 TV시청률을 떠나서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이지만 중국 사람이 보기에[1]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노래 부르며 놀기 좋아하는 흥겨운 민족이었답니다. 출연자들 모두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요~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노래방에도 못가니 오죽 답답했으면 오디션 프로를 보면서 대리만족[2]을 구할까 생각했지요.

 

* <미스트롯2> 결승전 무대. 출처: TV조선 캡쳐

 

G: 저는 다른 식구들 덕분에 처음부터 죽 보았는데요, 마지막에 미스트롯 진(眞)이 된 양지은 씨는 12명을 뽑는 준결승전에서 떨어졌거든요.

P: 네, 그 일이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다지요? 한창 인기몰이하던 한 참가자가 학창 시절 학폭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물러나면서 막판에 합류했다고요. 20시간 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준결승 과제곡을 잘 불러서 Top Seven 결승전까지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G: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는 대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 좋은 사람한테는 못 당하는 것 같아요.

P: 네, 일전에 말씀드렸던 인생의 성공방정식 《꿈 × χ = 성공》을 놓고 풀이해보죠.

여기서 χ = (어떤 계기를 실천으로 옮기는 힘 ①) + (일단 세운 목표를 피드백 해가며 끈기있게 지속하는 집념 ②) +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 행운 ③)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도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배우는 등 소리꾼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①고 하더군요. 아버지에게 신장을 이식한 후 배에 힘을 줄 수 없어 소리꾼의 길은 포기했지만, <미스트롯1>에서 마미부 노래를 듣고 가수의 꿈을 키우다가 남편이 <미스트롯2> 지원서를 갖다 주며 격려하는 것에 힘입어 출전했다고 해요. 12명 뽑는 결선에서는 떨어졌어도 워낙 준비가 잘 되어 있었기에 추가합격 연락을 받고 제대로 노래를 불렀다②는 겁니다. 타이밍도 기막히게 좋았어요. 때마침 온 나라가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국민을 위하여", "국민에 의하여"를 부르짖는 터에 주최 측이 '마스터' 심사제의 공정을 기한다고 국민투표의 비중을 높인 데다③ 일부 지역 향토민들이 몰표를 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저까지 연락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애초에 문자 투표할 마음이 없던 사람들까지 나선 셈이지요.

 

* <미스트롯2> 결선 제2 라운드에서 열창하는 양지은 씨. 출처: TV조선 캡쳐

 

G: 저도 "하늘이 문 하나를 닫을 때는 다른 문을 열어주신다"(When God closes one door, He opens another.)는 영어 속담을 생각했어요.

P: 기본적으로 양지은 씨는 심성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제주도의 이름난 효녀'라는 것은 많이 알려졌지만, 마지막 제2라운드 '인생곡'[3]은 사실상 사회생활이 처음인 나이 많은 자기를 격려해주고, 추가로 합격한 자기를 따뜻하게 맞아준 동료 경쟁자들을 생각하며 골랐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그 가사를 찾아 영어로 옮겨 보았습니다.

K-Pop이 전세계를 휩쓰는 마당에 외국인들도 한국인들이 열광하는 트롯 노래가 뭔지, '붓'이란 말도 생소한데 그 가사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 <미스트롯2> 진(眞) 양지은이 노래하는 "붓" 감상하기 (출처: TV조선, YouTube)

 

어쩜 그리 잘 할까!
모두 트롯 여왕이고 공주
저마다 많은 사연
삭이고 삭여 심금을 울리네

How wonderful singers they are!
Everyone is a trot queen or princess.
So many behind stories [of applicants]
have touched watchers’ heartstrings.

 

G: 그런데 '붓' 하나 가지고 과장이 너무 심하지 않나요?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글씨를 쓰고, 한라산 상공의 구름을 화폭 삼아 그림을 그린다니요?

P: 우리는 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부르고 있으니 이 정도는 약과지요. 찬송가에도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4]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70년이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년인데"라는 구절이 저에겐 더 놀라웠어요. 처음엔 가수가 '인생곡'으로 골랐다기에 70년의 '한 많은 인생살이' 정도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70년은 남북 분단의 역사이고 5천년은 한민족 배달겨레의 역사 아닌가요? 영어로 번역하면서 찬찬히 음미해보니 이 곡의 작사자는 더 나아가 분단의 상처를 잊고 다 용서하자고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두산 천지 물을 먹물 삼고 한라산 상공의 구름을 화폭 삼아 화합(和合)의 붓을 쓰자고 남북의 상징을 인용하고 있는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나훈아의 "테스형"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장래 남북 화합의 시대가 오면 이 노래도 새롭게 각광을 받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동요이지만, 이 곡은 한국인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트롯 아닙니까!

 

--  강진 [5]

Brush   originally sung by Gang Jin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

이리 오게 고생 많았네

칠십 년 세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 년인데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

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

여보게 친구여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After I pass through the hard times,
I can see the day like this.
How can I explain the past agony?
Come here. You’ve done good job.
Tho' seventy years seem too long, 
it’s almost nothing.
We’ve lived together for five thousand years.
Forget it. Let’s forgive all.
We have to live together.
With the water of Mt. Baekdu sky lake as ink, 
let’s write down line by line.
Hi, my friend.
Would you bring me a writing brush?
Would you bring me a writing brush?

칠십 년 세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 년인데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

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

한라산 구름을 화폭 삼아

한 점 한 점 찍어나가세

여보게 친구여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여보게 친구여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Tho' seventy years seem too long, 
it’s almost nothing.
We’ve lived together for five thousand years.
Forget it. Let’s forgive all.
We have to live together.
With the clouds over Mt. Halla as a canvas, 
let’s draw a picture spot by spot.
Hi, my friend.
Would you bring me a drawing brush?
Hi, my friend.
Would you bring me a drawing brush?
Would you bring me a drawing brush?

Note

1] 옛날 역사 시간에 익히 배웠던 것이지만,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쓴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의 관련 기록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부여(夫餘, BC2세기 경 만주 쑹화강 유역에 한민족의 뿌리인 예맥족이 세운 부족연맹국가로 3세기 말 선비족의 침략을 받은 후 왕과 귀족, 백성들이 고구려로 집단 이주하였음)에서는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 이때 사람들이 성대한 모임을 갖고 날마다 먹고 마시며 윷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길을 갈 때도 낮이든 밤이든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온종일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2] 사실 <미스터 트롯>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을 바꾼 계기는 초등학생 정동원이 불렀던 "희망가"가 아니었나 싶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다는 '이 풍진세상' 가사의 첫 소절은 이 땅에서 살아온 한민족의 유전인자(DNA) 속에 들어있는 가치관, 세계관을 압축시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TV조선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에서는 오디션 리얼리티 쇼답게 단지 "누가 노래를 잘 부르는가"만 보지 않고 "누가 다른 가수와 '콜라보'(collaboration)를 잘하는가", "제한된 시간 안에 신곡(新曲)을 잘 소화해서 부르는가"(결승 제1 라운드 미션), 또 "자기의 인생과 혼(魂)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가"(결승 제2 라운드 미션)를 마스터 심사위원과 방청객(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는 문자투표에 참여하는 전 국민)이 심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승 제1 라운드에서 신곡은 나름대로 기량을 뽐낼 수 있지만 제2 라운드에서는 가족, 은인, 꿈 등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주제가 담긴 노래를 스스로 골라서 불러야 한다. 따라서 가수로서의 인간적인 면모가 다 드러나게 마련이며, 이 점이 이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30%가 넘는 시청률이 허수가 아닌 셈이다.

 

4] 찬송가 제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3절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과장어린 표현의 기원은 AD70년 예루살렘 함락 당시 유대 교육의 보전에 전력을 다했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자기의 스승인 유대교 대학자 힐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령 온 하늘이 양피지, 모든 나무가 펜, 모든 바닷물이 잉크라 해도 스승님으로부터 내가 배운 것을 다만 일부라도 기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5] 본명은 강옥원이며 1956년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1986년 가수로 데뷔하였고, 2001년 발표한 "땡벌"이 영화 "비열한 거리"(2006)에서 조인성이 운전대를 잡고 부르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19년 발표한 "막걸리 한 잔"은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영탁이 불러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SNS를 중심으로 크게 논란이 일었다. 예컨대, 백두산(북한)의 먹물로 한 줄 한 줄 글을 쓴다는 의미가 무엇이냐, 6.25 전란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그 후 70년의 분단 세월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웠음에도 이것을 대수롭지 않다고 표현한 저의가 무엇이냐는 등의 비판이 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