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크릿 가든과 명상음악

Whitman Park 2022. 2. 28. 18:45

북구의 혼성 그룹 '시크릿 가든'의 앨범을 들으며 명상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여러 차례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는 시크릿 가든은 노르웨이의 작곡가 롤프 뢰블란(Rolf Løvland)와 아일랜드 태생의 바이얼리니스트 피오뉼라 셰리(Fionnuala Sherry)를 주축으로 한 그룹이다.[1]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을철 국민가곡이 되다시피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시크릿 가든이 본래 "Serenade to Spring"(봄의 소야곡)으로 발표한 곡을 성악가 김동규 씨가 개사를 하여 우리의 애창곡이 된 것이다.

또 시크릿 가든의 "You Raise Me Up"은 찬송가처럼 불리기도 한다.  2005년 10월 시크릿 가든의 서울 공연 때 아일랜드의 유명한 시에 곡을 붙였다는 설명과 함께 직접 연주를 들었던 이 곡에서는 깊은 종교적인 감동을 받기까지 하였다.

 

 

오래 전 시크릿 가든의 "Dawn of a New Century"(신세기의 여명) CD에 수록된 13곡을 들으면서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그동안 CF의 배경음악이나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들은 터라 아주 귀에 익은 선율이 가슴에 와 닿으면서 온갖 어수선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크릿 가든 3집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In Our Tears"(눈물 속에서)를 들어본다. 어쿠스틱 피아노의 조용한 선율이 흐른 뒤 애상적인 바이올린이 뒤를 따른다. 한없는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만 삭이는 것 같다. 뒤 이어 나오는 남녀 혼성 코러스는 이 슬픔을 조용히, 그러다가 점차 격하게 토로한다.

 

소월의 "진달래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이와 같을까. 아니 그보다 슬픔이 너무 진하여 마치 친한 벗을 멀리 떠나보내는 레퀴엠(鎭魂曲)처럼 들린다. 합창이 조용히 잦아들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테마 멜로디를 가지고 끝을 마무리한다.

 

시크릿 가든의 두 메인 연주자의 출신지는 노르웨이와 아일랜드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들은 산림(山林)과 표르드 사이로 울리는 그리이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그리고 바닷가 초원 위로 들려오는 "오 대니보이" 멜로디를 연상케 한다. 켈트족의 한(恨)스러움과 북구의 어두컴컴한 신화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운데 흐르는 동양적인 선율이 우리의 귀에도 친숙하게 들린다.

 

 

내친 김에 같은 계열인 아일랜드의 싱어 엔야(Enya)의 곡들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가운데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시크릿 가든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코러스("Aria")는 엔야와 비슷하지만 경쾌하게 울리는 리듬("Divertimento")과 바닥(心底)에서 끌어올리는 바이올린의 저음("Moongate")은 분명히 다른 그 무엇이다.

 

아크로폴리스와 자금성에서의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유명해진 그리스 출신의 키보드 연주가 겸 작곡자 야니(Yanni)의 음악과도 구별된다. 풍부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셰리의 바이올린 선율은 야니가 즐겨 내세우는 흑인 바이올리니스트("The End of August" 중간의 현악독주)나 바네사 메이("Theme from Caravans"에서 낙타의 걸음걸이를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테크닉)의 그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어른의 팔뚝 길이에 불과한 조그만 악기가 그처럼 변화무쌍한 감정의 이입(empathy)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시크릿 가든이나 엔야, 야니의 음악을 처음 접하였을 때의 느낌은 원초적인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레코드점에 가보면 시크릿 가든, 엔야, 야니의 앨범이 모두 뉴에이지(New Age) 음악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 점은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책뿐만 아니라 CD도 판매하는 아마존.com에서도 시크릿 가든의 앨범 세 개(첫 번째 "Songs from a Secret Garden", 두 번째 "White Stones")를 모두 뉴에이지 음악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것은 이들의 음악이 조용히 틀어놓고 명상하기 딱 좋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하여는 이 블로그 기사를 참조.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는 시크릿 가든, 엔야, 야니의 음악은 모두 클래식과 팝이 만나는 크로스오버 내지 뉴에이지 음악의 장르에 포함시키고 있다. 조용한 음악 듣기 또는 명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서정적인 음악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다만, 비판론자들이 조용하고 신비주의적인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다 보면 우울해지고 허무함을 느끼게 되며 생활의 활력을 잃고 먼 하늘만 쳐다보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크릿 가든 신보 앨범의 "Aria"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다. 엔야의 "그대의 해변에서"(On Your Shore)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야니의 대표곡 "열정의 그림자"(Reflections of Passion)도 종교적인 명상이 아니라 사랑의 추억을 키보드를 통해 노래한 것일 뿐이다.[2]

 

처음부터 명상에 몰두하려고 뉴에이지 음악만 듣는 것은 곤란하지만, 시간에 쫒기며 긴장 속에 보낸 하루를 정리하면서 서정적인 음악을 듣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계열의 음악을 '힐링 음악(Healing music)'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김수철의 "서편제" 삽입곡들을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곡들이 아무 종교와도 관계없이 우리 민족의 정과 한을 잘 표출한 것으로 감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이다.

 

Note

1] 1995년 결성된 시크릿 가든은 같은 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객원 보칼이 가사를 넣어 부른 "Nocturne"이 우승을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Nocturne" 외에도 "Song from a Secret Garden", "Serenade to Spring" 등이 수록된 정규 1집 <Song from a Secret Garden>은 노르웨이와 한국에서는 플래티넘 레코드, 전 세계적으로 100만 이상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빌보드 New Age 차트에서 101주 동안 머무르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 야니의 "Reflections of Passion" 뮤직 비디오에서 야니가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수영을 하는 장면은 실제로 그가 수영선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리얼하게 곡의 유래와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