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존 다운랜드 뮤비(John Downland MV)

Whitman Park 2022. 2. 28. 19:20

영국의 존 다운랜드(John Downland, 1563~1626)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에 살았던 류트 연주가, 작곡가, 음유시인이었다. 서양의 바로크 시대와 겹치는 영국 르네상스 古음악 시대의 궁정음악가였다. 그의 대표곡 "흘러라 나의 눈물이여(Flow My Tears)"는 스팅의 노래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우연찮게 그의 또 다른 곡 "나의 비탄이 열정을 움직일 수 있다면(If My Complaints Could Passions Move)"을 비올라 연주로 들어본 후에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Complaints(뭔가 잘못된 것을 불평하고 호소하는 것)와 Passions(열정과 의욕)의 인상(impression)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만, 첫 줄의 영어 문장에서 동사와 목적어가 도치된 것은 영시의 라임(rhyme)을 맞추기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poetic license)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불만에서 열정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랬을까?

⇒  YouTube에서 감상

 

존 다운랜드의 이 노래의 원문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If my complaints could passions move,

Or make Love see wherein I suffer wrong:

My passions were enough to prove,

That my despairs had governed me too long.

O Love, I live and die in thee,

Thy grief in my deep sighs still speaks:

Thy wounds do freshly bleed in me,

My heart for thy unkindness breaks:

Yet thou dost hope when I despair,

And when I hope, thou mak'st me hope in vain.

Thou say’s thou canst my harms repair,

Yet for redress, thou let'st me still complain.<

 

Can Love be rich, and yet I want?

Is Love my judge, and yet am I condemned?

Thou plenty hast, yet me dost scant:

Thou made a god, and yet thy pow'r contemned.

That I do live, it is thy pow'r:

That I desire it is thy worth:

If Love doth make men's lives too sour,

Let me not love, nor live henceforth.

Die shall my hopes, but not my faith,

That you that of my fall may hearers be

May here despair, which truly saith,

I was more true to Love than Love to me.

 

* 2010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M. Wadsworth의 류트 반주에 맞춰 소프라노 Carolyn Sampson이 노래하고 있다.

 

그 다음은 이 가삿말을 내가 처음 느꼈던 인상에 따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일견 사랑의 노래(Love Song)였으므로 뭣 때문에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시인은 오랫동안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연인의 고통이 절절하고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를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탓이었다. 시인은 연인의 냉담함에 마음이 상하지만 그가 절망할 때 연인이 희망을 불어넣어주어 헛된 소망을 갖게 된다고 불평하였다. 전형적인 '밀당'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연인이 풍족해짐에도 나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연인이 재판관이라면 자기는 죄인처럼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여기서의 연인은 단순한 남녀관계가 아님을 짐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연인(Love)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Lord)과의 관계인 것이다.

주님께 좀더 가까이 가고자 했음에도 열정만 앞섰을 뿐 실제 행동은 그와 달랐음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섬겼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의 불평과 원망이 열정을 움직일 수 있다면

아니 사랑하는 이가 나의 고통을 알게 한다면

나의 절망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왔음을

나의 열정이 입증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 안에서 살고 지고

나의 한숨 속에 그대의 비탄이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대의 상처는 내 안에서 피를 흘리고

그대의 냉정함에 내 가슴은 찢어집니다

내가 절망할 때 그대는 희망을 주지만

내가 소망할 때 그대는 헛된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대는 나의 상심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인지 나로 하여금 불평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풍족할 수 있다면 나는 왜 허전한가요?

사랑이 재판관이라면 나는 유죄인가요?

그대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나는 항상 부족합니다

그대는 신이 되어 그대의 권능으로 죄를 묻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은 그대의 능력이고

나는 그것이 보람 있음을 열망합니다

사랑이 남자의 삶을 씁쓸하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사랑을 못하거나 더 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대가 나의 추락을 듣게 될지라도

나는 죽음을 원하겠지만 내 진정은 아닙니다

여기 절망 가운데 진정으로 말하기를

나는 그대가 날 사랑한 것보다 훨씬 진정으로 대했습니다

 

 

존 다운랜드의 멜랑콜리한 노래 가사는 연인을 향해 부르기에는 너무 장중하고 엄숙하기조차 하다.

그는 왜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 그의 일대기를 보니까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국교도가 아니었으므로 영국 궁정에서는 자격제한에 걸려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가족은 고국에 둔 채 프랑스로 덴마크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야 했다. 그가 제임스 1세의 궁정에 류트 연주가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1612년 나이 쉰이 다 되어서였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데도 현실 세계에서는 차별을 받는 것이 불만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노래를 통해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늘 부족한 신앙심을 탓하는, 한없이 겸비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처럼 낮아지는 땅 '다운랜드'는 주님을 향한 열정만큼은 이해해 달라는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올린 게 아니었을까?

⇒ KoreanLII 회개(悔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