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타 듀오의 드뷔시 "달빛"(2021)

Whitman Park 2022. 2. 21. 08:35

G: 4월 27일 밤에는 금년에 가장 큰 핑크빛 슈퍼문이 떴다고 하죠. 서울에선 구름이 낮게 깔리고 빗방울까지 떨어져 볼 순 없었지만요……

P: TV 뉴스 시간에 이스탄불 등 세계 각지의 보름달 뜨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저는 오늘 오전에 이미 음악으로 달빛을 감상하고 황홀경에 빠졌답니다. 오전에 KBS 1FM에서 우리나라의 세계 정상급 기타리스트 박지형과 김진세 듀오가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을 라이브로 들려주었거든요. 조성진의 YouTube 피아노 연주도 유명하지만 기타 듀오 연주는 처음 접했는데 눈을 감고 감상하니 정말로 달빛 아래 길을 거니는 느낌이 들었어요.

 

* 영국 스톤헨지 위로 떠오르는 April Super Moon. Source: 로이터-연합통신

 

G: 저도 그 느낌을 알 것 같습니다. 달빛이 눈부시지 않고 시선이 가는 곳의 사물을 부드럽게 감싸줄테니까요.

P: 기타 듀오 연주를 들으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멋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To make a good world for all,
it pays to search Beauty and Elegance
.

우리 모두 힘써 가꾸세

아름답고 멋진 세상

 

아름다움이란?

G: 아름답다는 것은 우선 시각적으로 보기에 좋다(nice looking)는 것 아닌가요?

P: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 촉감 등 오감을 만족시켜야겠지요. 그러나 말초신경의 느낌만 좋아서는 안 되고, 마음까지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다른 사람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지요.

 

G: 아~ ① 오감 만족, ② 정서적 감동, ③ 객관적 재현이라는 3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드뷔시의 달빛을 기타 박지형・김진세 듀오 연주로 들었더니 달빛 아래 거니는 느낌이 드셨다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이를 재현할 수 있게끔 기타 음악으로 편곡한 악보가 있어야겠군요.

 

* 기타 영재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박지형(오른쪽)과 김진세. 출처: KBS 1FM
* 드뷔시, "달빛" - 박지형・김진세 기타 듀오, KBS음악실, 2021.4.27.

 

P: 네, 물론입니다. 누구나 느낄 수 없고 자기 혼자만 좋아서는 주관적인 아름다움으로 그치겠지요. 저는 요즘 한국의 아름다운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 아름답다고 느껴서는 안 되고 그 시가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언어로 번역되어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G: 맞습니다. 어제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가 좋은 예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어 대사가 대부분이고 외할머니 역할을 맡은 윤여정 씨의 한국어 대사도 영어 자막으로 전달되었지만 외국의 관객들도 딸네 식구를 위해 애쓰는 한국 할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해요.

P: 그러나 시의 번역은 의미전달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운율도 전할 수 있어야 하므로 훨씬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잘 번역된 시는 그만큼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아름다운 우리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이유

G: 이미 번역되어 있는 시도 많지 않나요? 그 동안 선생님은 몇 편이나 번역을 하셨어요?

P: 마땅한 시가 있으면 영어로 번역된 게 있는지 구글로 이것저것 검색해 봅니다. 우선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셨던 안선재 (Brother Anthony of Taize) 명예교수님의 홈페이지와 지금은 작고하신 송재평 교수의 국영문 시선집을 찾아봅니다. Korean Literature Now라는 KLN 사이트도 있지요.

아쉬운 점은 최근 들어 많은 시가 발표되고 있기도 하지만 오래 전의 대표적인 시들도 번역되지 않은 게 많다는 겁니다. 영어로 된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를 만들면서 법률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그와 관련이 있는 한국의 시를 소개하곤 했어요. 예컨대 '개념정의'라는 Definition 항목에는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을 함께 올리는 식이었지요. 요즘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KoreanLII의 Friendship 항목과 매치된다고 보았습니다. 국제법상의 전형적인 양자조약인 우호통상조약 (Treaty of Friendship and Commerce)이 있잖습니까!

 

G: 아, 그렇겠군요~ 어떤 법률개념을 설명하고 관련 법조문, 법원의 판례와 함께 한국의 시를 소개한다면 외국의 독자들은 마치 한 편의 스토리텔링처럼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네요.

P: 제가 과문(寡聞)해서 그렇지 시인들도 법률 같은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으므로 법률개념과 직ㆍ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우리 시도 많이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라고 꼽는 주요한의 "불놀이"를 번역하면서 찬찬히 뜯어보니까 1919년 발표 당시 약관이던 시인이 4월 초파일 평양의 연등행사를 배경으로 자기 연인이 죽은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섯 연으로 구성된 산문시인데 시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절망감이 퀴블러로스 박사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한국 시에 대한 글로벌한 접근

G: 그 시가 진즉 영어로 번역되어 외국에도 알려졌더라면 주요한의 'DABDA 5단계설'이 될 뻔했군요.

P: 사실 저예산 독립영화인 "미나리"가 미국 헐리웃 블록버스터도 선정되기 어려운 아카데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미국에서 촬영ㆍ제작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영어권 관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여우조연상까지 획득한 것 아니겠어요!

 

* 영국 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 달빛 풍경

 

G: 네, 한국의 아름다운 시도 많이 영어로 소개되면 될 수록 세계의 독자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겠네요. 그럼 몇 편이나 번역했는지 말씀을 아직 안 해주셨는데요? 

P: 선현들의 한시(漢詩)를 영어로 번역한 것 빼고 우리 근현대시를 제가 번역한 것만 120여 편 됩니다. 안선재 교수님 등 외부 번역한 것까지 합치면 총 140편 가까이 되지요. 주제 별로는 KoreanLII의  Literature and art 항목에, 시인 별로는 Poet 항목에 각각 일람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연말까진 200편, 몇 년 안에 총 500편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법률백과사전인 KoreanLII에 올리는 이상 법 개념과 관련 있는 것을 찾는 데 애로가 많습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누구든지 인터넷에서 적당한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KoreanLII에 수록된 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스토리텔링이 남기는 여운

G: 영문학자가 아니시니까 아무 시나 번역하는 것을 꺼리시는군요.

P: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가급적 스토리텔링을 가미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영문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적극 참여하여 고쳐주시면 좋겠어요. 위키피디아처럼 간단히 회원가입만 하면 누구나 수정ㆍ편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주말마다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1970년대에 박인수가 노래한 신중현 작곡의 "봄비", 누구나 노래방에 가면 부르게 되는 동명의 영화 삽입곡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 보았어요. 하지만 관련이 있는 법률 항목을 찾지 못해 한참 애먹었어요. 공통된 주제어가 Springtime이지만 법률과는 무관하기에 임시로 Poems on the waiting list라는 항목에 올려두었지요. 며칠을 고심한 끝에 '상심(傷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KoreanLII에 새로 Broken heart 항목을 만들어 제가 번역한 "봄비"와 이수인의 가곡 "내 맘의 강물"을 함께 올렸어요. 소중한 것을 잃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진실, 신해철 같은 인기 연예인이 세상을 떴을 때 상심한(broken-hearted) 팬들이 요구하여 재발 방지법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다만, 1953년에 나온 "봄날은 간다"는 전쟁통에 뒤죽박죽이 된 우리 삶을 보는 것 같았어요. 스토리텔링 차원에서 그것을 서로 연관을 지었습니다.

 

G: 성의는 가상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우리 시를 우리만 아름답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외국인들도 영어로 읽어보게 하면서 한국 시를 많이 찾아보게 한다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의 노력이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기대하신 성과를 거두시기를 기원합니다.

P: 네, 감사합니다.

 

⇒ [Talks]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의 번역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