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지난 7월 6일 영면한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세계 최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겨레 시네21, 예술의 전당이 발빠르게 공동 개최한 추모공연이었다.
영화 <미션(Mission)>의 OST인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는 우리나라 TV 방송(KBS <남자의 품격>)에서 "넬라 판타지아"라는 합창곡으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었었다. 해설자인 오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모리코네의 선율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할 정도로 영화의 분위기와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
코로나가 아직 진정되지 않아 손소독, 발열체크, QR코드에 의한 관람자 등록, 한 자리씩 떨어져 앉기 등 방역수칙을 지키면서까지 많은 팬들이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나 역시 500편이나 되는 그의 영화음악 OST를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었기에 가족과 함께 큰 기대를 갖고 참석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음악이 왜 인상적이고 감동적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제1부의 첫 곡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박상현의 지휘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첫 번째 비밀을 알았다. 오리지널 OST는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말 타고 가는 주인공(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휘파람과 채찍 휘두르는 소리 - 전자기타와 타악기, 소편성의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곡이었다. 오히려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한 줌의 달러(A Fistful of Dollars, 황야의 무법자)만으로 사람 목숨이 오가는 느낌을 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통 서부극과는 다른 저예산의 마카로니 웨스턴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이태리 출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미국에서 서부극을 찍을 때 존 웨인 식 정통 서부극을 따라 할 순 없었다. 빠듯한 제작비로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총잡이들이 나와서 무자비한 살육을 벌이지만 아름다운 OST로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 클래식한 음악수업(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졸업)을 받았으면서도 실험정신이 강한 같은 고향친구 엔니오 모리코네가 적역이었고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도 이 점을 알았기에 엔니오 모리코네와 협업(Once Upon a Time in the West 등)을 할 때에는 시나리오 각본에 따라 먼저 영화음악을 만들고 촬영장에서 음악을 틀어주고 배우들이 연기하도록 했다고 한다.
제2부에서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대표곡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에 가사를 붙인 "넬라 판타지아"를 뮤지컬 가수 옥주현이 열창(?!)을 하였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원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OST하면 이것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그의 OST가 널리 알려진 게 얼마나 많은가.
"La Califfa" (무슬림 지도자 칼리프의 부인), "Chi Mai"와 "Le vent, le cri" (장-폴 벨몽도 주연의 영화 Le Professionnel의 주제곡), "Deborah's Theme"(브루클린 게토의 러시아계 이민자 갱스터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첫사랑 테마), "Malena" (시칠리아 섬 비운의 여인을 그린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영화), "Love Affair"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재회를 약속한 영화의 테마), "Una Vita Venduta"(아프리카 내전에 참전한 이탈리안 용병을 그린 영화의 테마, 초반의 하모니카 연주가 매우 애수를 띰)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 엔니오 모리코네의 OST를 모아놓은 공식 웹사이트
이날 시네 콘서트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대 스크린을 통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의 명장면도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크게 기대했다. 그러나 저작권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영화음악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래픽이 연출되어 실망스러웠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차라리 미국 서부의 황량한 들판이 좋았을 것을 권총과 탄창, 화산폭발 같은 재구름을 연속으로 보여줬다. 그나마 비싼 티켓 값이 덜 아까웠던 것은 오동진 평론가의 유머 섞인 해설이었다. 3주간의 준비기간 중에 영화 장면을 쓸 수 있게 저작권 협의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면서 자신이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무대에 올라왔노라고 말해 응원의 박수를 받았다.
바로 이것이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무리 영화의 내용이 무자비하고 잔혹하더라도 그의 OST가 스토리와는 전혀 다르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내용의 영화로 탈바꿈시켜주기 때문이었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헨리폰다가 악역으로 나와 못된 짓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OST 멜로디는 앙드레 류 연주 버전의 배경처럼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전원풍경을 연상하게 해준다.
사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 아니었으면 영화 미션('예수회 선교활동'이란 뜻) 자체는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을 다룬 영화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덕분에 마지막에 원주민들은 밀림 속으로 쫒겨갈지라도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들이 가브리엘 신부에게 배운 찬송은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헐리웃 영화를 포함해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들었음에도 그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것은 88세이던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Hateful Eight"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추모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로부터 최고의 음악상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엔니오 손 끝에서
흘러나오는 천상의 선율
From the fingertips of Ennio
A celestial melody
Is flowing.
아무리 잔혹한 영화도
아름답게 탈바꿈시켜주는
황홀하고 감미로운 그의 음악
His enchanting music has made
Even the ugly films
So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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