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가을이 되면 들려오는 노랫소리(2021)

Whitman Park 2022. 2. 28. 19:45

계절이 바뀌면서 풀벌레 소리가 커졌다.

영화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의 OST도 많이 들려온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이 영화(1994)는 브래드 피트, 안소니 홉킨스, 줄리아 오몬드가 출연하여 미국 몬태나 주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러드로우 가족의 애증과 성쇠를 보여준다. 본래 원제는 한 가족의 몰락이 그 고장의 전설이 되었다는 의미였는데 한국에서는 산악지형인 몬태나 주의 가을풍경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냥 '가을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 Source: 'Legends of the Fall' film poster
*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몬타나 주는 'Land of Shining Mountains'라고도 불린다.

 

영화의 주제가 같은 "집으로 가는 길"은 OST에는 없는 가사의 노래로 한국의 젊은 성악가들이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다. 강직하고 근엄한 러드로우 예비역 대령과, 성격이 각기 다른 3형제가 광활한 대자연의 몬태나에서 우애좋게 살다가 막내의 약혼녀가 등장하고 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맞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큰형은 부상을 입고 둘째는 전투 중에 동생이 처참하게 죽는 광경을 목격한다. 둘째 트리스탄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귀국을 했으나 몬태나의 집을 떠나 유랑을 한다. 동생의 약혼녀인 수잔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국의 작사가 문주원, 김정호은 극중 집을 떠나 방랑하는 트리스탄의 심정이 되어 제임스 호너가 작곡한 OST 러드로우 가문(The Ludlows)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가사를 붙였다. 원곡 못지 않은 감동을 주는 편곡은 김진환이 맡았다. 케이블 방송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 싱어즈 시즌 2에 등장한 네 명의 성악가가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다. Miraclass의 Romantica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집으로 가는 길 - 작사 문주원ㆍ김정호, 편곡 김진환

On the Way Home

회색 빛 짙게 물든
가을 길목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 떠난 그 날
날 오라는 그리움에
가슴 벅차도 돌아보지 않았네

Around the early autumn
The sky was in a dark gray tone.
When I departed despite the voice calling me,
I didn’t look back feeling a lump in my throat
Even though it was “Welcome home”.

나 홀로 외로이 보낸
수많은 시간을
오래 참아온 간절한 기억을

I had to spend
Plenty of times.
Also I endured long suppressed old memories.

때론 멀리 돌아온 길들도
가끔 멈춰선 발걸음도
그대가 머무는
그곳으로 향하네
그댈 잊으려 해도

Sometimes I had to take a long detour.
Often I stopped walking on foot.
I moved toward the place
Where you stay
Even though I tried to forget you.

그대 모습을 지우려 애써도
눈만 감으면 아른거려
집으로 가는 길
익숙한 그 풍경과
아직 슬픈 향기

I exerted myself to erase your shape only to fail
Because you appeared in my closed eyes.
On the way home,
I was accustomed to the landscape
As well as still sorrowful fragrance.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돌아오기 위해 떠난 걸
멀리 더 멀리 떠나보니
선명해진 기억들
그리움의 발자국을 남기고 가네

Maybe I knew it from the beginning
That I departed so as to return to home.
As I went far away from home,
I’ve got clearer memory than ever.
So I left the footsteps of longing for home.

집으로 가는 길
익숙한 그 풍경과
아직 짙은 향기

On the way home,
I’m accustomed to the landscape
As well as still thick fragrance.

때론 멀리 돌아온 길들도
가끔 멈춰선 발걸음도
이제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으리
내가 지나온 길
후~ 후~ 후~

Sometimes I had to take a long detour.
Often I stopped walking on foot.
But I won't look back
Any more from now on
The road which I‘ve trodden.

Hoo~ Hoo~ Hoo~

 

* 시인은 땅에 떨어진 낙엽들도 누구에겐가 부친 편지라고 보았다.

 

가을이 되면 누구든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아침이슬"의 김민기는 누구든지 수신자가 되어달라는 "가을 편지"[1]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는 뚜렷한 형태가 없는 편지가 등장한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는 종이일 수도 있고,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일 수도 있다. 편지 꼴이 아니고 우표도 붙어 있지 않으므로 우체부가 가져가지도 않는다. 혹여 우체통에 잘못 들어간 휴지나 낙엽일 수 있으나 우체부는 흘낏 쳐다보고 버릴 것이다.

하지만 가을에 쓰는 편지는 그것이 땅에 떨어진 낙엽에 쓰였을지라도 "그리운 당신에게"로 시작할 것임에 틀림없다.[2]

 

편지 - 이성복

Letter  by Lee Seong-bok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1

I write a letter to her everyday.
The postman would not pick it up. My brother used to
scrumple it. Neighbors unknowingly trample on it, too.
Nevertheless, I write the letter everyday. On the street,
I usually see it stuck to a wall of other person. It is hung
between the willow branches. Children like to make
a paper plane. Nonetheless, I write the letter everyday. The postman
would not pick it up. When he picks it up, the postman
would read it loud while drinking. Dear Beloved, . . . . . . Damn it,
Decisively today, I write a letter.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2

Hello,
I'll discard my memory with you within today.
So I must meet you within today. Do you know
the reason why I have to? It's because I believe I can do something.
I'll be a teacher. I believe so. In fact, I have
nothing to teach. If I become a teacher, the world will be
cheated. Shame on me. And It's not fair. We can't get married.
But I believe we'll get married.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Hi, there,
Within today,
I have to see you.
I have no option to send this letter.

 

I wish you're not well.
My Beloved . . . 

 

* 코로나 집콕 시대에 지구상 어디엔가 실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게 그림엽서처럼 날아왔다. Source: YouTube

 

가을에 쓰는 편지는 꼭 연애편지가 아니라도 좋다.

다만, 찬 바람이 불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편지가 꼭 도달해야 한다.

편지를 써보낼 연인이 없다면, 그 편지를 받아볼 사람은 지금 잘 있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계절에는 내가 만나서 위로를 해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그 관계가 센치(sentimental)해야 할 테니까.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위에서 살랑살랑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연애편지'라고 본 앞의 시인이 있는가 하면 겸손함을 배운다는 또다른 시인도 있다.

새 잎이 돋고 커지면서 점차 푸르러지고 사람을 위해서는 그늘을 만들고 자기를 낳은 나무와 대자연을 위해서는 열심히 광합성을 했다. 한 잎의 나뭇잎일지언정 그의 한 주기 삶(lifecycle)이 소소해보이긴 해도 정녕 위대하였다. 

 

 

가을 엽서  - 안도현  

Autumnal Postcard   by Ahn Do-hyun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One leaf, two leaves
Are falling down
To lower places
As if they have many things to give to others.     
I want to give you something
Tho’ I have few things to share.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Please,
At this moment of autumnal evening,
Ask falling leaves
Why your love is located
At lower places.

Note

1] 김민기가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가을편지"는 주로 샹송을 부르던 최양숙이 불러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었다. 시 구절을 분석해 가면서 영어로 번역해 보니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낙엽이 쌓인 길을 홀로 걸으며 외로움을 타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헤매였고, 마침내 낙엽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는 전혀 모르는 상대를 만나게 된다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가을 편지 - 고은 작시, 김민기 작곡, 박훤일 번역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 낙엽이 쌓이는 날 /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 낙엽이 흩어진 날 /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 낙엽이 사라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In Autumn, I'll write a letter to whomever it's about to reach.
  The day when falling leaves are piled up, a lonesome woman looks beautiful.

In Autumn, I'll write a letter to whomever it's about to reach.
  The day when falling leaves are scattered, a wandering woman looks beautiful.

In Autumn, I'll write a letter in which my wandering mind is carried on.
  The day when falling leaves all fade away, an unknown woman looks beautiful.

 

2] 위에서 소개한 이성복의 "편지"나 안도현의 "가을 엽서"는 누가 곡을 붙여 노래하는 것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명훈이 지휘하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1악장을 함께 듣는다면 가을의 정취와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