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허용된 이래 세 번째로 개봉된 일본 영화 '우나기'(うなぎ; 뱀장어)는 1997년 제50회 칸느 영화제의 황금종려상(Palmes D'Or)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크게 관심을 모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해외영화제 수상작에 한하여 일본 영화가 소개되고 있는데, 우나기는 어떠한 점에서 프랑스의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노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83년에도 <나라야마 부시코(The Ballad of Narayama)>로 칸느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밖의 해외영화제 수상작으로는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 1951 베니스), <지옥문>(기누가사 데이노스케, 1954 칸느), <무사도 잔혹이야기>(아마이 타다시, 1963 베를린), <하나비>(기타노 다케시, 1997 베니스) 등이 있다.
영화의 줄거리
야마시타 타쿠로(야쿠쇼 코우지 분)는 도쿄의 직장에 전철로 출퇴근하고 주말이면 밤낚시를 즐기는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주말에 귀가하면 그의 아내는 도시락을 싸주고 그는 이것을 받아들고 낚시터로 향한다. 그러던 그에게 익명의 편지가 연거푸 날아든다. 그가 밤낚시를 떠나면 그의 아내는 흰색 승용차를 타고 온 남자와 밤새 정사(情事)를 벌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밤낚시를 가는 척하다가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아니나 다를까. 집 앞에는 흰색 승용차가 서 있고 침실에서는 그의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주방의 식칼을 빼어든 그는 침대 위에서 悅樂에 빠져 있는 두 남녀를 향해 증오의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피묻은 칼을 들고 경찰서로 가서 아내를 죽였노라고 자수한다.
그로부터 8년후 야마시타는 가석방된다. 그의 소지품은 그가 노역중에 잡았던 뱀장어 한 마리. 그의 후견인은 치바(千葉)현 사하라(佐原)에서 사찰을 운영하는 주지스님이다. 사하라는 지명 때문에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비견되는 쓸쓸한 도시이다. 그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변두리 강가의 빈집을 얻어 이발소를 차린다. 그의 주변에는 호기심 많은 이웃들이 찾아든다. 그중의 한 사람 배를 만드는 목수는 족히 1kg는 됨직한 뱀장어가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 그것도 야마시타의 유일한 대화상대라는 데 야릇한 관심을 표명한다. 그리고 UFO를 연구하는 젊은이,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백수청년도 이발소 단골손님이 된다.
매달 그에 대한 관찰기록을 行刑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주지스님을 만나고 오는 길에 야마시타는 묘령의 여인이 음독한 것을 발견한다. 가석방 중에 사고를 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현장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에 입원시킨다. 자살 미수에 그친 하토리 게이코(시미즈 미사 분)는 주지스님에 몸을 의탁하고 그의 생명을 구해준 야마시타의 이발소에 와서 조수로 일하게 된다.
유부남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자살로 끝내려 했던 게이코는 야마시타에게 은근한 관심을 표시하지만 그의 반응은 냉담하다. 어느 날 게이코가 손을 다쳤을 때 야마시타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그녀의 상처난 손가락을 소독하고 정성껏 붕대로 감아준 후 병원에 가야 한다면서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시내로 간다. 그의 정성에 감동한 게이코는 그의 불행한 과거를 잊으려는 듯 야마시타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그 무렵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의 감방동료는 야마시타가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질투심을 일으키고 게이코에게 그의 과거를 폭로한다. 그럼에도 게이코는 야마시타가 밤낚시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다리난간에 서서 그에게 도시락을 건네려 한다. 그리고 게이코는 정신이상을 일으킨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일하던 금융회사에 맡겨놓은 돈을 찾아온다. 그녀의 정부였던 금융회사 토지마 사장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야마시타와 새로운 생활을 설계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어두운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의 장래는 마음먹은 대로 평온무사할 수가 없다. 야마시타의 감방동료는 습관적으로 반야심경을 외우지만 도무지 현실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다. 야마시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게이코마저 강간하려 든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감옥에 다시 돌아갈 작정을 한 것이다.
게이코 모친의 예금은 적잖은 돈이 아니기에 토지마 사장은 깡패들을 앞세우고 야마시타의 이발소로 찾아온다. 그의 고문변호사는 모친으로부터 정당하게 위임을 받은 돈이니 게이코가 임의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며 그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이성을 잃은 토지마가 폭력을 휘두르고 게이코가 얻어맞는 것을 본 야마시타는 토지마에게 면도칼을 휘두른다. 이내 경찰이 달려오고 가석방중의 야마시타는 다시 구속된다.
차가운 감방으로 돌아가는 야마시타는 게이코와 작별하면서 아이를 낳고 자기를 기다려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방생하였던 뱀장어가 적도부근의 바다까지 헤엄쳐 가 알을 낳고 수놈은 그 위에 정액을 뿌리고 누구 새끼인 줄은 몰라도 다시 어미의 고향산천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 그는 게이코와의 희망찬 앞날을 내다본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는 일본의 이질적인 문화 엿보기가 드라마틱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예컨대 직장에 충실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던 평범한 샐러리맨이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다. 그 동기를 파헤쳐 보면 낚시나 다니는 자기에게 불평 한 마디 안하고 도시락을 싸주던 아내가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에 외간남자를 집안에 끌어들여 정사를 벌였다는 배신감에서 식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반면 유부남과의 섹스에 탐닉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자신의 반려자로 택한 후로는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요조숙녀로 탈바꿈한다.
일본인들의 다양한 취미생활도 좋은 볼거리이다. 장어 덮밥을 즐겨 먹었을 중년남자가 살진 뱀장어를 관상용으로 기르고, 젊은이들이 시골마을에서 하릴없이 UFO를 기다리거나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이웃의 일에 참견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장어낚시를 제안하는 이웃집 목수도 본업과 취미생활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 도입부에서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주인집 아주머니일 것으로 암시)도 이웃집 엿보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일본의 절은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다. 묘지의 위패를 관리하고 장례식을 집전하며 가석방 출옥자나 자살미수자 등 사회 부적응자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일종의 후생복리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주지가 대처승인 것은 이러한 사업이 대부분 이권과 연결되어 있기에 대대손손 가업으로 삼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치정살인이 모티브인 만큼 여러 가지 법률 이슈가 등장하는데 영화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기에 별로 중요시되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형법의 가석방 제도(72조 이하)를 보자.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중에 있는 자가 그 행장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1/3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행형법 51,52조;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신청에 따른 법무부장관의 허가)으로 가석방될 수 있다. 다만, 가석방 처분을 받은 자가 감시에 관한 규칙(行刑法시행령 157조, 가석방단속규정)을 위배하거나, 보호관찰의 준수사항을 위반하고 그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가석방 처분이 취소된다. 그래서 야마시타는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삼가고 조용히 살고자 한 것이다.
또 하나는 게이코의 모친처럼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거액의 자금관리를 타인에게 위탁하는 위임장을 작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법원으로부터 한정치산, 금치산의 선고를 받기 전에는 정상적인 의사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효하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가. 이 영화에서는 게이코 모친의 돈을 탐낸 토지마 사장이 위임장을 위조한 것으로 처리해버리지만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끝으로 배우자의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였을 때 법률은 상처받은 남편 또는 아내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그러한 성관계가 배우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형법상 정당방위(21조)가 성립될 수 없다. 오직 간통죄(형법 241조)로 처벌을 구하거나 민법상 이혼을 청구(840조1호)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간통죄가 전근대적이라 하여 이 조항을 폐지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에서 보았듯이 가정에 파탄이 났음에도 부정한 배우자에 대하여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법률은 배우자가 현장에서 부정을 저질렀다 해도 크게 아량을 베풀어 가정을 깨지 말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렇기에 아내의 불륜 현장에서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던 신라의 處容은 그 얼굴 모습만 보아도 귀신이 쫒겨나갔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 영화에서 야마시타는 출옥 후에도 아내의 무덤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증오심이 깊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느날 뱀장어를 작살로 잡는 꿈을 꾸고는 정작 칼에 찔린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줄거리나 영상미를 내세우기보다는 타인을 책망하던 마음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테마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칸느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여겨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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