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영화가 즐겨 다뤄온 변호사 주인공은 항상 정의(正義)의 사도인가. 그가 하는 일은 무고한 사람을 도와 억울한 누명을 벗고 권익을 되찾게 해주는 일인가. 만일 그들이 돈만 밝히면서 분명히 죄지은 사람도 처벌을 면케 하고 백주에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얼마 전 미국의 축구스타 O.J. 심슨이 전처를 살해한 것이 거의 명백함에도 최고의 변호인단에 사건을 맡겨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자 사람들은 모두 "유전무죄(有錢無罪)"라고 수군거렸다. 이 경우 변호사에게 죄책은 없는가. 1997년 워너브라더스사에서 만든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은 그러한 변호사를 '악마의 변호인'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 징계권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을 둘러싸고 의론이 분분하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금까지 대한변호사협회가 행사해 온 변호사 징계권을 법무부 또는 대법원에 귀속시키고 변협은 내부 규정에 의한 자체 輕징계권이나 징계 건의권만 갖도록 했는데, 이는 변호사의 활동을 국가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재단한다는 취지이다. 그만큼 변호사들의 자율기구(SRO)에 맡겨놓았더니 징계 받아야 할 사람이 버젓이 활동하고 다닌다는 정부의 불만표시인 것 같다. 그렇지만 1993년 문민정부가 인권변호사에 대한 탄압 등 징계권 남용을 막기 위해 변협에 이관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한국일보 1998.11.10자).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으로 우리와도 친숙한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법조인들이 악마의 대변인이 될 수 있음을 미국 시골의 변호사가 법정 휴정시간에 잠깐 꿈을 꾼 동안 보여주고 있다. 무대를 오늘의 미국 맨해튼으로 옮겨놓은 파우스트 또는 중국의 고사인 한단지몽(邯鄲之夢; 당나라 때 한 서생이 한단 땅에서 할아비의 베게를 빌려 잠을 자다가 80년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줄거리
플로리다의 소도시 게인즈빌에서 주로 형사사건을 취급하는 케빈 로맥스 변호사(키아누 리브스)는 기록적인 64연승(連勝)을 거둔다.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학교 교사를 위하여 변론을 하는 것이 떳떳하지는 않았지만 연승기록을 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대신문을 통해서 배심원들에게 피해자인 여학생이 평소에도 불량기가 있고 그의 증언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법정에서 그가 하는 말은 배심원들에게 마치 최면과 같다.
승소를 기뻐하는 케빈에게 뉴욕의 낯선 변호사가 찾아온다. 맨해튼의 로펌에 가서 중요한 사건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교회에 열심인 그의 어머니는 뉴욕은 "마귀들이 우굴거리는 큰 성 바빌론"이라며 뉴욕행을 만류한다. 그러나 시골에서 채권추심 일을 하는데 싫증이 난 그의 아내 매리 앤(샤를리즈 테론)은 대찬성이다.
그를 스카웃한 뉴욕의 로펌 '밀턴·채드윅·워터스'는 부유한 고객들과 외국 정부기관을 주고객으로 하는 법률회사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밀턴 사장(알 파치노)은 그에게 뉴욕시 보건위생법 위반 사건을 맡긴다. 그에게 제공된 아파트는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고급 맨션이다. 매리 앤에게 남편의 성공이 비로소 실감나게 느껴진다.
케빈은 집에서 염소를 밀도살해 쓰다가 기소된 유사종교의 흑인 교주를 위하여 유태인에게 적용되는 특례법을 찾아내고 뉴욕에서의 첫 사건을 승리로 장식한다. 승소를 기념해 열린 파티에는 다마토 상원의원(1998년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맨하튼 고급아파트에서의 파티 장면에 기꺼이 출연한 것이 이색적이다)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룬다. 파티 석상에서 매리 앤에게는 밀턴 사장이 접근하고, 케빈은 이상한 매력을 풍기는 크리스타벨라에 이끌려 테라스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갑자기 케빈과 크리스타벨라를 서재로 호출한 밀턴 사장은 케빈에게 부인과 가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의 사건을 맡긴다. 언론은 이미 그를 진범으로 단정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은 케빈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강박관념으로 다가온다. 점차 일에 쫒겨 아내와 대화조차 못나누는 케빈 대신 매리 앤은 다른 변호사 부인들과 어울린다. 그러나 "변호사 남편을 만나기 어려우면 그가 벌어온 돈이라도 써야지"하며 쇼핑을 즐기는 그네들이 시골 출신의 순박한 매리 앤한테는 마귀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케빈은 맨해튼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매리 앤과 오랜 만에 정사를 나누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크리스타벨라에게 가 있다.
케빈의 어머니가 성공한 아들의 모습을 보러 뉴욕에 오지만 케빈의 주변 모습을 보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도다"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매리 앤은 신경쇠약증이 점점 심해지고 밀턴 사장은 부인이나 돌보라며 짐짓 케빈에게 이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권유한다. 그러나 케빈은 "집사람이 건강을 회복하면 그녀가 미워질 터이니 일을 더 열심히 한 후에 가정에 헌신하겠다"고 답한다. 그의 사건은 소송의뢰인이 "외간 여자와 통정하면 남편의 재산은 부인의 것으로 한다"는 혼전(婚前)계약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인을 살해한 치정극으로 밝혀진다. 피의자가 권총을 소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그로부터 총을 빼앗은 케빈은 내연관계의 여비서를 증언대에 세워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결국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이 통하여 케빈은 어렵사리 승소를 한다.
마침 법률회사의 비리에 고민을 하던 전무이사 바준이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하던 중 걸인에게 살해 당한다. 창밖으로 이 장면을 목격한 매리 앤은 이 모든 일이 악마의 장난으로 여겨진다. 점차 그녀를 옭죄오는 마귀에 짓눌려 매리 앤은 "밀턴의 환영(幻影)에 겁탈 당했다, 꼬마 귀신이 난소를 떼어 갔다, 마귀가 온몸을 할퀴었다"는 등 알 수 없는 말을 하여 정신병원으로 실려간다.
바준의 장례식장 밖에서는 법무부의 조사관이 케빈을 보고 밀턴의 법률회사가 국제적인 범죄와 비리에 연루되어 있으니 당국에 협조하라고 제의한다. 그가 변론하여 석방시킨 성추행 교사가 결국 10살 먹은 소녀의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체포되었으니 이제 올바른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웬일인지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한다. 매리 앤을 간호하러 병원으로 간 케빈은 문병온 어머니를 보고 화를 낸다. 사생아인 자신의 아버지가 밀턴이라니 도무지 혼란스럽다. 정신착란을 일으킨 매리 앤이 유리조각으로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자 그는 이 모든 일을 연출한 것으로 믿어지는 밀턴 사장을 만나러 간다.
지옥의 입구에서 케빈을 맞은 밀턴은 "자신은 무대만 마련했을 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스스로 열심히 연기한 것"이라고 말한다. 케빈 역시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허영심, 아편과도 같은 이기심에 도취되어 아내도 저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한 눈 팔지 않았느냐며 따져 묻는다. 아내보다도 자신을 더 사랑하였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케빈을 보고 밀턴은 자신의 딸인 크리스타벨라와 관계를 가져(근친상간?) 하나님에 맞설 적(敵)그리스도를 만들라고 채근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위험한 본능을 안겨주고는 "보지도, 만지지도, 먹지도 말라"는 계율을 주었으니 무책임한 방관자요 새디스트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밀턴은 케빈이 원하는 것은 배심원의 미소, 승소의 희열, 코카인 같은 황홀감, 낯선 여인의 침실,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변호사는 모든 것을 이루게 만드는 새로운 성직(聖職, new priesthood) 같은 것 아니냐, 변호사보다 법대생의 수가 많다는 것은 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는 뜻 아니냐"며 조롱하는 밀턴을 보고 케빈은 자신은 이런 일에는 동참할 수 없다며 갖고 있던 권총으로 머리를 쏜다.
플로리다 게인즈빌 법원의 화장실에서 잠깐 동안의 꿈에서 깨어난 케빈에게 젊고 매력적인 자기 아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는다. 중생(重生)을 한 그의 자유의지는 성추행 교사의 변호에서 당장 손을 떼게 만든다. 비록 연승기록이 깨지고 변호사자격을 박탈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기쁘기 그지 없다. 이처럼 용단을 내린 케빈을 신문에서 크게 다루겠다고 제의하는 기자의 얼굴이 밀턴(악마)의 얼굴로 바뀌는 것은 그가 또다른 허영심을 부추기는 까닭이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도입부의 사건에서 주인공에게 죄책(罪責)을 물어야 할 것인가이다. 케빈이 여학생을 성폭행한 담임선생을 변호할 때 그가 유죄임을 알면서도 피해자인 증인의 진술에 신뢰성이 없다는 것을 부각시켜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평결을 얻어내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호사윤리강령(ABA Code of Professional Responsibility, ABA Model Rules of Professional Conduct)에 의하면 변호사가 법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면서도 허위진술을 하는 것,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는 것은 징계사유가 된다.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은 대부분 소송의뢰인이나 제3자에 의한 사실의 기술이지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기재하는 것은 드물다. 그럼에도 변호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법원에 사실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허위의 진술(misrepresentation)로 간주된다.
그러나 변호사는 소송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힐(volunteer harmful facts) 의무는 없다. 본래 소송은 대립당사자 구조(adversary system)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검사 또는 반대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이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케빈은 검사측 증인의 신뢰성을 문제삼아 배심원들로 하여금 문제의 교사가 유죄라는 결정적인 심증을 갖지 못하게 한 것이지 결코 의뢰인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갈등구조는 돈 많은 부동산개발업자의 살인 사건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미국 헌법상 형사피의자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수정헌법 6조), 자신에 반하는 증언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수정헌법 5조), 그가 능동적으로 허위사실을 증언하는 경우 변호사는 과연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영화 속에서도 케빈은 그의 의뢰인이 치정 살인극을 벌였다는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밀턴 사장의 부추김을 받아 그의 무죄 석방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경우 변호사윤리강령에서 요구하는 정답은 소송의뢰인에 대한 정보를 절대 비밀로 해야 하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으로 하여금 허위진술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든가 변호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물론 사건이 종결된 다음에는 이러한 위증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밝힐 의무가 없다.
케빈이 뉴욕에서 돈 많은 고객들의 변호에 열중할 때에는 비극이 잇따르지만, 그가 꿈을 깨고 성추행 교사에 대한 변론을 포기하자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녔음에도 열에 아홉은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악마는 본능, 자유,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편한 길을 가라고 하지만, 성경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강권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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