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Whitman Park 2022. 2. 14. 21:45

 

정보화 시대에 개인의 사생활(privacy)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얽혀 있는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은밀하게 보호되어야 할 프라이버시가 무방비 상태로 공개되는 것은 문제이다.

극소형 카메라 등 첨단 장비를 적은 비용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인터넷 등을 통해 내용물을 상업적으로 유통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가정부가 돌보는 유아, 유치원에 가서 뛰어 노는 어린이들을 인터넷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은 좀더 야하고 센세이널한 쪽으로 쏠리고 있다. 고성능 장비와 기술을 활용하여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이다. 촬영감독 출신인 호주의 영화감독 피터 위어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년 파라마운트 제작)에서 누구나 그리워하는 꿈의 동산에서 프라이버시가 노출된 사람이 벌이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

한 성인 남자의 삶이 하루 24시간, 1주일 내내 TV 생방송으로 중계된다고 해보자.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 재미있고, 때로는 드러매틱하여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면 광고주가 붙게 마련이므로 상업적인 방송도 가능해진다.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배우 아닌 배우가 그의 연출의도를 충실히 따라준다면 마치 창조주와 같은 희열을 맛볼 것이고, 시청자들로서는 그들과 비슷해 보이는 보통 사람의 생활에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기 좋은 외딴 섬 시헤이븐(Seahaven)에 사는 트루먼 버뱅크(짐 케리 분)는 10,909번째의 날을 유쾌하게 시작한다. 그러니까 만으로 서른 살이며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산다. 보험회사 출근 길에 이웃 사람을 보고 반갑게 "굿 모닝"을 하고 신문 가판대에서는 아내를 위한 살림잡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한 낙천가에게도 고민은 있다. 대학 다닐 때 사귀던 여자가 그만 피지 섬으로 떠났는데, 바닷물 공포증이 있어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부랑자 모습의 아버지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함께 보트를 타다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 줄 알았는데 홀연히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파도 속에서 바다에 빠진 아버지의 손을 놓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놀랄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는 의외로 태연하다.

그는 대학 다닐 때 헤어진 실비아를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해 만든 가짜"라며 "모든 사람이 너를 잘 알고 있다"고 한 말이 알쏭달쏭하다. 그녀가 찬 뱃지의 글귀 "어떻게 끝날 것인가"(How's It Going to End)도 수상쩍다. 그녀가 떠난 피지에 갈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궁금증이 풀릴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출근 길에 라디오 방송에 혼선이 생기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누군가 눈여겨 보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때부터 섬 주민들이 모두 이상하게 보이고 그의 주변의 기이한 현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는 거리를 방황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저지른다.

 

 

죽마고우 친구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찾아간 트루먼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섬을 떠나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친구는 이만한 곳이 없다며 극구 만류한다. 이날 따라 저녁놀이 신비할 정도로 아름답다.

트루먼은 그의 고민도 몰라주고 병원에 출근한 아내에게 '피지로 떠난다'는 메모를 남겨놓고 여행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여행 포스터는 '당신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겁주는 내용뿐이고, 피지행 항공권은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여행사 직원의 답변이다. 다시 시카고행 버스를 타지만 그가 타자마자 버스는 고장을 일으키고 모든 승객은 한 마디 항의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하차한다.

그는 퇴근한 아내를 기다렸다가 무슨 수를 쓰던지 시헤이븐을 떠나기로 한다. 아틀란틱 시티를 목적지로 한 것도 도박하려는 게 아니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그곳이 그냥 가보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그의 차 앞을 가로막고 교통체증을 야기하는 동네 차들을 따돌리고 그는 공포의 연륙교를 맹목운전으로 건너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갑자기 산불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방사능 누출사고가 생겼다며 도로가 차단된다. 일면식도 없는 그를 보고 경찰관이 "트루먼씨"라고 부르자 의심이 공포로 바뀐다.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집 안에 연금된다.

그 주변의 모든 일이 음모로 비친다. 그의 아내가 난 데없이 코코아 병을 들고 맛이 좋다고 하는 것은 일련의 CM 방송이다. 그는 아내더러 "마음에도 없이 왜 나와 결혼했느냐"며 음모자와 한패라고 쏘아붙인다. 울적한 마음에 친구를 찾아가지만 죽마고우인 그 친구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이어폰으로 프로듀서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뿐이다. 곧이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 극적인 해후를 하고 전세계 트루먼 쇼의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그때까지 트루먼 혼자만 모르고 있었지 모든 것이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 분)라는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와 엑스트라였던 것이다.

 

시헤이븐 섬은 우주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인공 세트장이다. 그의 집을 비롯하여 섬 곳곳에 있는 5천대의 카메라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춘다. 그가 섬 밖으로 나가면 곤란하므로 크리스토프는 마치 예방주사를 놓듯이 트루먼의 무의식 속에 바닷물 공포증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시청자와의 토론시간에 트루먼의 첫사랑 실비아가 크리스토프에게 전화를 통해 거세게 항의한다. "동물원 원숭이같은 트루먼이 가엽다"는 그녀에게 연출자는 "부정과 탐욕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벗어나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는 트루먼은 행복하다. 그는 이 생활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탈출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사이 트루먼은 카메라의 감시를 피해 몰래 바다로 탈출한다. 전 주민들이 트루먼 수색에 동원되고, 요트를 타고 홀로 항해에 나선 트루먼 주변에는 TV 제작팀이 만든 인공 폭풍우가 몰아닥친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나를 막으려거든 차라리 죽이라"고 외치며 탈출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마침내 거대한 세트장의 가장자리에 도달한 트루먼은 "당신은 수백만 시청자의 희망과 꿈"이라는 크리스토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세트장 밖으로 걸어나가고 실비아를 비롯한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그리고 트루먼 쇼는 방송 30년만에 막을 내린다.

 

 

감상의 포인트

항공기 추락사고의 피해를 다룬 <피어리스(Fearless)> 등 문제작을 연출한 피터 위어는 이 영화에서도 방송사가 키우고 돌보며(이를 "adopted"했다고 한다) 전세계의 시청자에게 그의 사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어느 정부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매스미디어의 독선을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갖는 한 결국 에덴 동산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선악과는 편안한 일상(comfortable routine)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베가본드(vagabond)적 기질인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섬뜩한 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 트루먼과 같은 위험에 빠지기 쉬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몰카(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O양의 비디오'처럼 상업적으로 유통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전자 메일을 주고받거나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개인의 신상 정보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출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개인의 사생활(프라이버시) 보호가 법적으로도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법제상 어떠한 보호장치가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중요성을 더하는데, 일반적으로 정보통신을 이용할 때 ▷개인 자신의 프라이버시 ▷사적인 데이터의 프라이버시 ▷통신의 프라이버시 ▷익명성이 침해될 위험이 큰 것으로 밝혀진다면 누구나 그 이용을 기피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기본권 조항에 프라이버시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우선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하며(17조),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18조). 또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21조4항 전문)고 하여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도 타인의 권리로서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상으로는 트루먼 쇼와 같이 언론이 개인의 사생활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공표하는 것은 금지될 뿐만 아니라 민·형사 책임까지도 져야 할 것이다.

1999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전자거래기본법'에서도 전자거래 당사자가 전자거래와 관련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는 그 목적을 미리 상대방에게 명시하도록 하고, 수집한 정보는 당초 수집한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13조1, 2항) 하였다. 전자거래 당사자는 처리, 전송, 또는 보관되는 정보에 대하여 부당한 접근·이용·정보의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13조3항). 또 전자거래 당사자는 본인이 개인정보의 열람을 요구하면 지체없이 이에 응하여야 하고, 잘못된 정보에 대하여 증빙자료를 제시하며 정정·삭제를 요구하면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13조4항).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 영화가 다른 극작가의 연극을 몰래 훔쳐봄으로써 프라이버시를 해쳤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앤드류 니콜은 저작권 침해 혐의로 2백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였다. 이는 1992년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프랭크의 인생(Frank's Life)>이라는 연극을 상연한 극작가가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자기 연극을 보지 않고서는 108군데나 베껴가며 대본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문제의 브로드웨이 공연 1년전에 이미 몰카로 사생활이 침범 당하는 사람의 이야기 "말콤 쇼"를 집필한 것이 밝혀짐에 따라 결국 이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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