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 들은 듯하지만 새로운 느낌을 주는 광고와 음악, 소설, 영화가 넘쳐나고 있다. 대우자동차 마티스가 고질라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광고, 허리케인 블루의 모창, 디지틀 조선일보를 패러디한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등등. 이를 일컬어 "패러디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영화와 음악, 광고, 코미디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Parody'란 그리스語 'parodeia'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 "다른 사람의 곡조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풍자(諷刺) 효과를 내기 위하여 원작품의 특징적 스타일을 모방하는 문학적·예술적 작품'을 말한다.
최근 개봉된 헐리웃 영화 <롱풀리 어큐즈드(Wrongfully Accused)>는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IMF 구조조정 성공! 24편의 영화를 한 편에 모았다"(삼성영상사업단이 이 영화의 프로모션을 위해 내건 200만원 현상 당선작)고 하는 이 영화가 이처럼 다른 영화 베끼기를 하여도 저작권 보호가 철저한 미국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에서는 패러디 유행의 불을 댕긴 美연방대법원의 1994년 판결(Campbell Aka Luke Skyywalker v. Acuff-Rose Music, Inc. 510 U.S. 569; 114 S.Ct. 1164; 1994 U.S. LEXIS 2052)을 소개함으로써 그 법적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영화의 줄거리
여기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 대신 이 영화를 수입한 삼성영상사업단의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롱풀리 어큐즈드' 의 Neverending Story를 인용하기로 한다.
바이올린의 제왕 라이언(레슬리 닐슨 분)은 신비의 여인 로렌을 만나면서 졸지에 평범하지 않은 혐의('유주얼 서스펙트')를 뒤집어 쓴다. 지옥행 죄수 호송버스가 우디 알렌의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진 틈을 타 '도망자'가 된 라이언. '긴급명령'을 부여받은 외다리, 외팔, 애꾸눈인 악당 '자칼'과 '사이코'같은 냉혹한 경찰과의 별들의 전쟁('스타워즈')을 벌이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 보지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에는 이 '패트리어트 게임'이 불가능한 임무('미션 임파서블')로 다가온다.
이젠 더 이상 그를 믿지 못하는 '양들의 침묵'을 뒤로 하고 강인한 심장('브레이브 하트') 만을 믿은 채 억울한 누명을 벗어보려 발버둥 치는데······ 유일하게 그를 믿는 '죽어야 사는 여자' 케스와의 '위험한 정사'조차 즐겁지만은 않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로 연명하며, 죽기살기('다이하드')로 엎치락뒤치락 얽힌 해프닝 속에서 그가 '꿈의 구장'이었던 '파고'와 '카사블랑카'를 거쳐 도착한 곳은 '타이타닉'호. 그곳에서 라이언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누명을 쓴 피고인이다!"
감상의 포인트
원칙적으로 저작권이 인정되는 저작물을 이용하려면 저작자의 허락을 얻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저작물을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 저작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문화·과학의 향상 발전에도 기여해야 하는 저작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저작물은 저작자의 소유에 속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단 공표된 이상 인류 공통의 문화재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작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fair use)을 보장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향상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작권의 제한은 베른 협약 제10조나 각국의 저작권법에서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공정한 이용이라고 하지만 영국에서는 공정한 처리(fair dealing)라고 하며, 프랑스와 독일은 저작권의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독일의 예에 따라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재판절차 등에서의 복제(22조), 교육기관에서의 복제(23조),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28조), 시험문제로서의 복제(29조), 點字에 의한 복제(30조) 및 私的 이용(private use)을 위한 복제(27조), 그리고 저작물 내용의 일부를 끌어다 쓰는 인용이용(25조) 등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저작자의 입장에서 저작재산권의 제한이 되므로 필요한 범위내에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렇다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저작물에 의한 문화의 발전과 인류복지의 증진을 위하여 어느 범위에서 저작권을 제한하여야 할 것인가. 미국에서 공정한 이용의 관점에서 논란이 되었던 패러디 음악 케이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가. 프리티 우먼 사건의 개요
쥴리아 로버츠,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1990년 헐리웃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은 동명의 테마 송으로도 널리 인기를 모았다. 이 곡은 1964년 로이 오비슨과 윌리엄 디스가 같이 만든 록 발라드 "오, 프리티 우먼"(Oh, Pretty Woman)인데, 1989년 캠벨, 웡원, 로스, 홉스 등 4인조 인기 랩 뮤직 그룹 '투라이브 크루'(2 Live Crew; 이하 소속 레코드사인 스카이이워커社와 함께 "피고"라 함)는 랩 스타일로 이 곡을 패러디할 계획을 세웠다.
피고는 원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어커프-로즈 뮤직사(이하 "원고"라 함)에 대하여 "원곡의 작곡자와 소유권에 대한 크레딧을 명시하고, 그 사용료를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1964년 원작자로부터 저작권을 양도받아 이를 저작권 보호대상으로 등록해 놓은 원고측 대리인은 원곡의 이미지를 해친다 하여 패러디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피고가 제작한 (작곡자와 출판사를 각각 오비슨과 디스, 어커프-로즈 음반사로 밝힌) 패러디版 프리티 우먼이 레코드, CD 모두 크게 히트를 했다.
이에 원고는 1989년 피고를 상대로 저작권침해(copyright infringement)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담당한 테네시 중부지구 연방지방법원은 1991년 피고의 패러디곡이 원곡을 공정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피고측의 신청에 따라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을 선고했다.
원고측의 항소를 접수한 제6지구 연방고등법원은 그로부터 1년후 1심 판결에 대하여 ① 패러디곡이 상업성을 갖는 것은 저작권법상의 공정한 이용이 아님을 추정케 하고, ② 원곡의 주된 멜로디를 그대로 패러디곡의 주제로 사용하는 등 피고가 질적으로 원곡에 크게 의존하였으며, ③ 상업적 용도에 따른 추정력(presumption)에 비추어 과도한 복제(excessive copying)를 함으로써 원곡의 시장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이를 파기하였다.
나. 미국 저작권법의 규정
미국 저작권법(Copyright Act of 1976)은 저작물을 비판, 평석, 시사보도, 교육, 학문연구, 조사의 목적으로 공정하게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 공정한 이용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다음의 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
① 저작물 이용의 목적 또는 성격이 상업적인가.
② 저작물의 성격은 어떠한가.
③ 이용된 부분의 분량과 실질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④ 저작물의 이용이 당해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potential market)에 어떠한 효과를 미치는가.
앞서 말한 연방고등법원의 판결은 피고의 패러디 곡이 상업성을 띠므로 공정한 이용의 ①, ④ 요건에 저촉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법률상(as a matter of law)으로 ①, ④ 요건에 비추어 추정력을 깨지 못하고, 패러디한 것이 ③ 요건의 질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입증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원곡을 과도하게 복제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다. 패러디의 의미
이 사건을 논의하기 전에 팝송 같은 음악도 저작권의 보호대상인지, 패러디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팝송, 가요, 클래식 등 음악에 속하는 저작물도 하나의 창작물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며, 악곡 뿐만 아니라 音的으로 표현된 언어를 수반하는 가사나 오페라, 뮤지컬 등도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공정한 이용 여부가 문제된 패러디란 무엇인가. 피고가 답변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스꽝스러운 가사로 원곡을 풍자(satirize the original work)하는 것'이 전형적인 패러디에 속한다. 피고는 원곡의 가사를 말장난으로 바꿔버림으로써 가사를 예견하기보다는 원곡이 얼마나 나이브하고 진부한지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따라서 패러디는 여느 비평(批評)이나 크게 다르지 않며, 비평의 목적을 갖고 있는 한 저작권침해는 아니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패러디의 결과 새로운 표현과 의미 또는 메시지로써 원작을 바꿔놓는 변경(transformative altering)이 일어났다면 그것이 상업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라. 美연방대법원의 판결
연방대법원은 1994년 3월 본건 상고심(上告審) 사건에서(on certiorari) 전원일치 판결로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연방고등법원이 저작권법에 "저작물을 비판, 평석, 시사보도, 교육, 학문연구, 조사의 목적으로 공정하게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규정되어 있음을 들어 피고가 원곡을 패러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피고측의 변론에 대하여 심리미진의 오류를 범하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심을 맡은 수터 대법관은 원심에서 패러디한 곡의 상업적 성격이 불공정한 이용임을 추정케 한다고 하고 이러한 추정은 저작권법에서 예시한 저작물 이용의 목적을 압도한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판단은 의회의 입법취지에도 어긋나고 판례상으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즉 패러디는 복제(copying)와 비교하여 실질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본건의 원곡과 패러디 곡을 비교해 들어볼 때 첫 소절의 가사가 같고 원곡의 베이스 樂節(bass riff)을 되풀이하는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가사 내용이 다른, 전혀 구별되는 음악을 만들었음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나타난 이슈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牧山嘉道, "米國エンタテインメント法入門 [2]", 國際商事法務 Vol.26, No.9 (1998), 919∼920면).
① 저작권법상 공정한 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비추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지만, 그 시점에서 패러디한 것이 原작품(original)의 대상을 대체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표현·의미·의도가 덧붙여짐으로써 어느 정도 오리지날을 변형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새로운 작품이 변형(transformative)이 되어 있을수록 다른 요건의 비중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② 패러디한 것이 공정한 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패러디된 캐릭터가 합리적으로 패러디로서 이해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패러디가 유머러스한 형태의 비평으로 인정되는 것은 기존 작품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사회적 편익(social benefit)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러디가 질적으로 우수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③ 이용 목적·성격과 관련하여 패러디의 상업적 성격이나 비영리의 교육 목적인지 여부는 패러디가 공정한 이용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④ 오리지날 저작물의 성격에 대하여 패러디가 공정한 이용인지 판단할 때 오리지날 저작물의 성격을 고려하는 것은 패러디가 대개의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작품을 복제한다는 것 이상으로 거의 의미가 없다.
⑤ 오리지날 저작물의 이용이 어느 정도의 분량이고 중요성을 갖는지에 대하여 패러디는 오리지날을 연상하기 쉽고 오리지날 중심부분을 겨냥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문제가 된 작품이 오리지날의 중심부분을 복제한 것만 가지고도 패러디는 공정한 이용이 될 수 있다.
⑥ 잠재적 시장 또는 가격에 대한 이용의 효과는 패러디에 있는 오리지날 저작물의 사용이 전체로서 상업적이라고 하는 사실만 가지고는 손해 받을 염려가 있다고 추정되지 아니한다. 또한 통렬한 비평이 단순히 오리지날 저작물의 수요를 억제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저적권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케네디 대법관은 주심 판단에 동의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의견을 추가하였다. 패러디라 하여 영리를 목적으로 공표되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항상 공정한 이용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원작을 복제하되 유머러스하거나 아이러니컬한 의견을 덧붙인 것이라야 패러디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요건은 패러디한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원작에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 주석(valuable commentary)을 가한 것이라야 한다.
마.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패러디가 저작권 침해행위가 아니라 미국에서와 같이 '문화의 발전을 돕는 비평 내지 풍자'로서 적법하다고 인정되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권을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구분하고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구 저작권법 22∼30조) 외에는 저작물을 복제 또는 인용 등의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는 것은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상세한 규정을 두었다고 저작권이 효율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문학이나 과학, 예술에 있어서 추상적인 의미에서 전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모든 문학, 과학, 예술작품 등은 이미 알려져 있거나 전에 사용되던 것을 차용(借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저작물이 문화적으로 사람들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도 터주는 등 일정 범위에서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호하기 어려운 저작재산권을 엄격히 규정하기보다는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일정한 기준, 예컨대 미국법과 같은 '공정한 이용(fair use)'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에만 저작권침해에 제재를 가하는 등 저작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 점은 본건과 같이 오리지날을 패러디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건전한 비평으로서 저작권침해가 아닌 것으로 굳어졌지만, 우리나라 저작권법상으로는 (아직 저작권침해가 문제된 적은 없을지라도) 몇 가지 자유이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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