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은 2000년의 전년도라는 것 말고도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 신년 벽두에 언론들은 새로운 밀레니움에 대해 벅찬 희망과 기대를 피력하였지만 세기가 바뀌는 현 시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세계사적으로 세기말이면 유행처럼 번졌던 퇴폐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IMF 체제하에서 향락산업이 크게 위축되었으나, 세계적으로 성개방 풍조가 일반화되면서 매체와 표현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란퇴폐물이 판치고 있다.
법은 이러한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검찰은 형법 조항을 무기로 공연음란물에 철퇴를 가해 왔으나, 지금은 음란성 자체가 시비 거리조차 되지 않고 있다. 최근 개봉되어 중장년층 관객들을 놀라게 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의 줄거리
29살 난 처녀 셋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욕을 식욕처럼 자연스럽게 얘기해보자는 제안에 모두의 귀가 솔깃하다. 그러나 결혼도 안한 젊은 여성이 그것도 남자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애무를 하다보면 '아, 이젠 넣고 싶다' 할 때가 있잖아"하는 말을 거리낌없이 하는 것을 보면 여성들의 내밀한 수다를 엿듣는 것 같다. 오르가즘에 대한 체험담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두 다 '플레이걸'인 것 같지만 일부는 가상체험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디자인 숍을 운영하는 호정(강수연)은 성에 대해 자유분방하다. 지방에 갔다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40대 남자가 찾아오자 거리낌없이 호텔로 들어간다. 결혼하자고 조르는 남자가 있지만 호정은 처음 만난 남자하고 자고도 죄책감이 없다. 호정의 집에 빌붙어 사는 연(진희경)이는 호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남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 공공연히 섹스를 나누곤 하는데 별로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이 남자를 붙잡기 위해 거의 맹목적으로 섹스에 매달린다.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것과 요리, 등산을 좋아하는 순(김여진)이는 진짜 숫처녀다. 외모가 호정이나 연이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그녀는 성에 대한 상상력은 수준급이지만, 마음에 없는 남자와 데이트하느니 자위를 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친구들의 실제 성생활을 동경한 탓인지 순이는 어느날 연이의 남자 친구와 섹스를 하고 임신까지 한다.
이 영화는 세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프리섹스를 즐기는 호정,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불안해 하는 직장여성 연이, 이런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요리와 등산 등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순이는 각각 요즘의 미혼여성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순이 집에서 열리는 세 번의 저녁식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티브다. 맨 처음의 파티에서는 오르가슴에 관한 뜨거운 대화가 오가고, 각 주인공의 성격과 사생활의 단초를 보여준다. 두 번째 순이 집에 모인 것은 연이가 남자 친구로부터 그만 만나자는 말을 듣고 심란해 할 때이다. 세 친구가 함께 나란히 누워 자는데, 순이는 울먹이며 잠 못 이루는 연이를 위로한다. 세 번째 파티는 호정이 중년남자의 부인으로부터 간통죄로 고소 당하여 유치장 살이를 하고 나온 뒤다.
이 나이의 여성들이 직면하는 직장과 결혼, 공부 등 여러 가지 인생 문제를 보여주면서 "열심히 일하고, 정기적은 아닐지라도 틈틈히 섹스도 하고 … 그러면 일단 그 인생은 됐다고 봐"라는 대사에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농축되어 있다. 각본까지 쓴 임상수 감독은 젊은 여성들의 성의식을 잠재된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는 개인적 현상으로 다룬다.
예컨대 연이가 고민하는 것은 집이나 직장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남자 때문이다. 별로 만족감도 못느끼면서 남자 친구에게 매달린다. 남자가 소파에 누워 "하지 말래니까"하고 뿌리치는데 "다 젖었잖아"라고 하며 엉겨붙든다. 팬티를 벗는 것은 예사이고, 온갖 체위의 성행위 장면을 보여준다. 남자의 성기를 젖가슴으로 애무해주고 입으로 구강성교를 하는 장면, 남자의 발바닥을 핥고 깨무는 장면에서는 차라리 어두운 영화관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대부분 전신이 노출되는 섹스 장면에서도 과장된 신음소리 대신 "이렇게 좀 해봐", "힘 좀 빼", "빼지 말고 그대로 있어" 같은 대사가 일쑤로 등장한다.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섹스의 묘사가 아닐 수 없다.
간통죄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호정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에 올랐던 순이는 가까스로 조난에서 구조되지만 임신을 확인한다. 연이는 옥탑의 좁은 방으로 이사한 후 남자 친구를 불러 다시 격렬한 섹스를 나눈다. 바로 그 펜트하우스에서 팬티만 걸친 나신으로 강변 고속도로를 내다보는 연이의 시각에서 이 영화는 끝난다. 어찌 보면 기막힌 상징같기도 하고, 아니면 포르노 잡지 '펜트하우스'의 센터폴드 장면같기도 하다.
감상의 포인트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당연히 음란성 여부가 문제될 만하다. 자유분방한 여대생의 섹스 행각을 그린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한 문서이고, '콜렉터'를 번안한 연극에 출연한 남자배우가 공연음란죄를 범하였다고 칼을 빼 들었던 검찰이 왜 이 영화에서는 침묵을 지켰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먼저 검찰의 공소사실을 거의 그대로 인정하였던 위 두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을 보자. <즐거운 사라> 케이스에서 대법원은 음란성을 정의하기를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전제한 다음 문서(연극공연도 마찬가지임)의 음란성 판단에 있어서는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서술이 행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문서를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관람객들의 好色的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의 여러 점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이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5.6.16 선고 94도2413 판결; 1996.6.11 선고 96도980 판결).
그렇다면 검찰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제작자 및 감독을 공연음란죄로 기소하였다고 가정하고 위의 '96도980 판결문'의 요지를 그대로 대입하여 이 영화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자.
① 여주인공(진희경)이 옷을 모두 벗은 채 누워 있는 남자 주인공의 하복부에 올라타 젖가슴을 드러낸 채 출렁이며 몸부림치는 장면을 3∼4분 동안 연기한 것은 성에 관한 묘사, 연출의 정도가 지나치게 상세하고 노골적일 뿐만 아니라, 위 나체상태의 연기가 상당 시간 지속되어 성의 묘사, 연출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위의 연기는 정상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그 호색적 흥미를 돋구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이 영화는 미혼 여성이 안고 있는 성에 관한 불안심리를 주인공처럼 맹목적인 성행위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상성을 표현하려 하였다고 주장하나, 노골적인 성행위의 묘사가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필요 불가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③ 주제의식의 표출과 카메라 앵글(실제로 전체 분량의 75% 가량이 어깨에 멘 카메라로 촬영된 이 영화는 35mm 장편영화치고는 깔끔하게 만들어졌다는 찬사를 받았다) 및 조명의 조절을 통하여 위 연기로 인한 성적 자극을 완화시켰으며, 위 장면들을 통하여 영화의 사상성과 예술성이 다소간 표현되었고 나체상태의 연기 때마다 카메라워크와 조명으로 이를 커버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객들이 출연 배우들의 나체를 클로즈업된 화면으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적나라한 연기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선량한 사회풍속 또는 도의관념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음란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대법원판결에 입각한 영화검열과 검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불과 몇 년 전과는 달리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이 정도의 노출을 한 리얼한 연기는 '외설적'이라는 비난보다도 오히려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O양의 비디오"가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하에서 이를 법으로 재단하고 형사소추하였다가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보더라도 1973년 '밀러' 케이스 이래 '현재의 지역사회 기준'(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이 제일의 기준이 되고 있다. 즉, 문제가 된 작품을 전체로 보아 현재 지역사회에 통용되는 기준을 적용했을 때 보통의 사람(reasonable person)으로 하여금 외설적인 관심(prurient interest)을 자극하는가 하는 것을 따진다. 두 번째로는 문제가 된 작품이 당해 지역의 법에서 규정하는 성적인 행위(sexual conduct)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세 번째로는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문학적·예술적·정치적·과학적인 중요한 가치(value)를 결하고 있는가 여부를 따진다. 이상 세 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음란성(obscenity)이 없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이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섹스에 매달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므로 이 영화의 섹스 묘사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미 연방대법원의 1991년 '반즈' 케이스)고 할 수 있다. 물론 표현의 내용에 제한(censorship)을 가할 수 있지만 이 영화 정도의 묘사는 각종 영상 및 활자매체 등을 통해 성적 표현이 솔직·대담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성적 표현물이 홍수를 이루는 오늘날에는 크게 문제삼을 게 못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이 영화가 개봉된 1998년 10월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한국 영화로서는 유일하게 부산 국제영화제의 신조류(New Currents) 영화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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