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여간해서는 만족할 줄 모른다.
지난 주말 일본에 온천 여행을 다닐 때에도 비행기 연발에 대해,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에 대해, 투숙한 료칸이 이름난 유황온천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크고작은 불평불만의 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연락선이 아닌 제트여객기를 타고, 또 도보나 마차가 아닌 리무진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녔던가!
동네 목욕탕에만 가도 좋았는데 이젠 수질이 좋고 약효가 있는 온천에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을 찾기에 이르렀다.
김상문 친구가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사자성어와 함께 그 말의 유래, 관련 한시(漢詩)를 소개했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을 풀어서 보면 네 글자에 모두 입 구(口) 자가 들어 있다.
입 구(口)를 가운데 쓰고 상우좌하(上右左下)에 다섯 五(오), 새 隹(추), 화살 矢(시), 그칠 止(지)를 써붙이면 마치 엽전(葉錢, 위 사진의 석조 참조) 모양의 한 글자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오유지족은 나 오(吾), 오직 유(唯), 알 지(知), 족할 족(足)이므로 "나 스스로 오직 만족할 줄 안다"는 뜻으로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안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같은 의미이다.[1] 어찌 보면 만족은 먹고 맛보는 것(食-味)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입 口'를 중심으로 사자성어를 만든 게 정곡을 찌른 것 같다.
眞樂在閑居 참 즐거움은 한가로이 있는 것 - 김정국(金正國)[2]
Really Enjoying Leisurely Life
我田雖不饒 나의 밭이 비록 넓지 않아도
一飽則有餘 한 배 채우기에 넉넉하네
我廬雖阨陋 내 집이 비록 좁고 누추해도
一身常晏餘 이 한 몸은 항상 편안하네
Tho’ I have small plowland,
It’s enough for me to make a living.
Tho’ my house is so humble,
It’s convenient for my own living.
晴窓朝日昇 밝은 창에 아침 햇살 떠오르면
依枕看古書 베개에 기대어 고서를 읽네
有酒吾自斟 술이 있어 스스로 따라 마시니
榮瘁不關予 영고성쇠는 나와 무관하네
When the sun arises through the clean window,
I usually read classic books at bedside.
When I drink several glasses of wine,
Vicissitudes of life are none of my business.
勿謂我無聊 내가 무료하리라 생각지 말게
眞樂在閑居 참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네
Never think of my boring days
‘Cause I really enjoy leisurely life.[3]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욕심이 알아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에 그대로 두면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불만이 쌓이면 처음부터 아니함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만인의 부러움을 자아냈던 이른바 셀렙(celebrity)들의 결혼생활이 파경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욕심을 줄일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비교 대상을 좀 더 낮추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小確幸)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일이다.
이번 여행 중에 고속도로가 한없이 막혀 있을 때에도 조용히 눈을 감고서 노천탕 뜨거운 물속에 앉아 있는 동안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낙엽이 수면 위로 떨어지는 광경을 상상하곤 했다. 이를 위한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로 쓰기 위해 은은한 풍경소리를 동영상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성경 전도서에서는 자기가 힘들여 일하고 얻는 이러한 즐거움을 갖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것을 좋게 여기지도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물과 부요를 누릴 수도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4]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Note
1] 오유지족(吾唯知足)은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마지막 가르침을 담은 유교경(遺敎經)에도 나온다.
한문으로 不知足者 雖富而貧 知足知人 雖貧而富(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 즉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가난하고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부유하다"는 뜻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편(安分篇)에도 “知足者는 貧賤亦樂(지족자 빈천역락)이요,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부지족자 부귀역우)니라”는 말이 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천하더라도 즐겁게 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더라도 역시 근심이 많다"는 위와 같은 뜻이다. 출처: 안종운의 漢字 이야기 - 오유지족(吾唯知足), 한자신문, 2016. 6. 2.
2]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본관은 의성, 자는 국필(國弼), 호는 사제(思齋)였다. 학자로 유명한 김안국(安國)의 동생이자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생으로 1509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지(承旨),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당시 삭탈관직되어 고향에 칩거하면서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1537년(중종 32년) 복권이 된 후 전라감사, 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을 지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문집에 <사재집(思齋集)>이 있다.
3] 옛 선비의 한시를 영어로 옮기고 보니 그 주제가 Leisure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온라인 법률백과사전인 KoreanLII에 싱가포르와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문자들이 크게 늘었기에 KoreanLII에 'Leisure (레저, 여가)' 항목을 만들고 漢詩 원문과 우리말과 英語 번역문을 나란히 싣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레저'는 세계인권선언과 우리나라의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도 중요시하는 개념이기에 법규범적인 측면에서도 쓸 이야기가 많았다.
4]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도서 5:18-19.
Then I realized that it is good and proper for a man to eat and drink, and to find satisfaction in his toilsome labor under the sun during the few days of life God has given him -- for this is his lot. Moreover, when God gives any man wealth and possessions, and enables him to enjoy them, to accept his lot and be happy in his work -- this is a gift of God. Ecclesiastes 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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