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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느끼는 행복

Whitman Park 2023. 6. 26. 09:30

정부가 코로나 위기상황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했을 때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잠시 행복을 느꼈다. 

날도 더워지는데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 전 아내가 심한 기침 감기를 앓았다.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거의 잠겨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기를 여러 날, 마침내 목소리가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전에는 몰랐던 기쁨을 느꼈다.

나 역시 건강검진을 위해 며칠 금식을 하면서 생수 한 모금의 고마움을 절실히 깨달은 바 있다.

 

이런 일을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 별것 아닌 것,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알았던 일상(日常)의 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매일같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즐겨 노래한 시인이 있다.  

 

* 어린 딸과 함께 디즈니랜드에 놀러간 어느 딸바보 아빠

 

행복 1  - 나태주

Happiness 1    by Nah Tae-ju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는
뚱뚱한 아내를 바라볼 때
잠시 나는 행복하다

저의 엄마에게 긴 머리를 통째로 맡긴 채
반쯤 입을 벌리고
반쯤은 눈을 감고
꿈꾸는 듯 귀여운 작은 숙녀
딸아이를 바라볼 때
나는 잠시 더 행복하다.

When I look at my fat wife
Combing her daughter's hair,
I am happy for a moment.

A dreamy cute little lady is
Leaving her mom with a head of long hair
With her mouth half open,
with her eyes half closed.
When I look at my daughter
I am happier for a moment.

학교 가는 딸아이
배웅하러 손잡고 골목길 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면서
꼭 식모 아줌마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사는 것 같애
놀려 주면서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I follow in an alley behind my wife
Who holds little girl's hands to see off 
Her daughter on the way to school.
When I tease my wife, saying
You look like a housemaid 
Who serves the landlord's lady,
I become a little happy.

딸아이 손을 바꿔 잡고 가는 나를
아내가 뒤따라 오면서
꼭 머슴 아저씨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가는 것 같애
놀림을 당하면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꿈꾸는 듯 귀여운 작은 숙녀
딸아이를 바라볼 때
나는 잠시 더 행복하다.

I take my daughter's hand instead of her mom.
As my wife follows me, saying
You look like  a servant
Who serves the landlord's lady.
Even tho' being teased,
I become a little happier.
A dreamy cute little lady -
When I look at her,
I am a little happier for a moment.

 

* 사랑이를 안고 함박 웃음 짓는 추성훈. 출처: SEGYE.com

 

행복 2  - 나태주

Happiness is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When it's at dusk,
Having a home to go back to.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When you have hard times,
Having someone to think about.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 있다는 것.

When you're lonely,
Having a song to sing to yourself.

 

여행 중에 숙소가 있다는 것과 Vacancy 켜진 모텔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건 얼마나 큰 차이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큰 문제에 부닥쳤을 때 집에 돌아가 걱정을 나누고 상의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가?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서 그는 작가답게 몇 가지 소확행(小確幸)의 예를 들었다.

젊어서 뮤직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기에 그의 소설에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음악이 반드시 등장한다.

시인처럼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없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곡[1]을 맘껏 들을 수 있다면 그런 대로 행복할 것 같다.[2]

 

In this world looking for
Adventurous things,
Who knows my little pleasure?

다른이는 몰라도
홀로 즐기는
소소한 기쁨

 

Note

1] 외로울 때 혼자 듣기 좋은 음악을 고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이 자체가 소확행임을 알았다.

마침 요즘 TV광고의 BGM으로 자주 나오는 무디 블루스의 Nights in White Satin도 옛날에 즐겨 듣던 노래였다. 옛날 고시공부하던 시절에는 킹크림슨의 Epitaph와 바그너의 Tannhäuser 서곡을 거의 매일 듣곤 했다. 그리고 영화를 즐겨 보았기에 엔니오 모리코네, 존 베리, 프란시스 레이의 OST 영화음악은 나의 LP와 CD 콜렉션 리스트의 앞줄에 올라 있었다. 나중엔 <서편제>의 김수철 천년학, <기생충>의 정재일 OST로도 확장되었지만. 위의 본문에서는 여러 곡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폴 모리아의 Best Collection을 연결시켰다. 그러나 딱 한 곡만 골라야 한다면 영화 <Out of Africa>에 삽입되었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의 선율이 아닐까 싶다. 

 

2]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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