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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안 소년의 개망초 소원

Whitman Park 2023. 7. 5. 11:00

국내외 詩를 소개하는 '한사람 시와 마음' 블로거 친구가 보내준 동시 "개망초 봉고"를 읽고 가슴이 울컥해졌다.

시인처럼 나 역시 엄마가 베트남에서 한국에 시집 온 다문화 가정의 한 소년으로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요즘은 동남 아시아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를 '코시안(KOrean aSIAN)'으로 부른다고 한다.

 

여름철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망초[1] 꽃을 꺾어 계란처럼 생긴 꽃은 바퀴로, 길다란 줄기는 차체로 삼아 봉고차를 만들어 동생과 같이 논다. 그런데 그 봉고차는 개울을 건너 바다를 건너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엄마의 고향 니짱(=나트랑, Nha Trang) 에 가서 피부가 까만 외할머니를 뵙고 시원한 수박을 한 덩이 선물하기로 한다.

그러면 돈을 많이 모아서 베트남 고향을 찾아가기로 한 엄마의 소원을 간단히 이루어줄 수 있는데 ······.

  

* 개망초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들판. 이하 사진 제공: 김상문

 

개망초 봉고  - 김동원

Erigeron-made Bongo    by Kim Dong-won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여름 방학만 되면,

일곱 살 동생과 함께 나는 들판에 앉아

개망초 봉고차에 엄마 아빠를 태워

개울 건너 바다 건너

외가 가는 놀이를 해요.

후끈후끈 숨 막히는 사십도 비닐하우스 속에서

엄마 아빠는 종일 블루베리를 따요.

매미 소리를 들으며

구름이 만든 솜사탕 먹으며

동생과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나라 베트남 니짱 외가를 그려요.

엄마 아빠가 일 나가면

날마다 동생은 자꾸 개망초 봉고차에

수박 한 통을 싣고 가자고 그래요.

사진 속 웃는 까무잡잡한 외할머니께

갖다 드리자고 그래요.

까만 수박씨는 뱉어 꿈속에 심고

쪼갠 수박은 붉그적 붉그적 마음껏 먹자고 그래요.

이다음 돈 많이 벌면, 엄마는 꼭 외할머니 보러 가자며

밤마다 눈물을 이불 속에 숨겨요.

It's summer vacation
when friends don't play with us.
Sitting in the field with my seven-year old brother,
I usually make a wish to visit Mom's hometown in Vietnam.
Taking Mom and Dad in a bongo car of erigeron flowers
we travel across the creek, across the ocean.

In a stifling, forty-degree greenhouse.
Mom and Dad pick blueberries all day long.
Listening to the cicadas and
eating a cotton-like candy made of clouds,
my brother and I imagine a place we've never seen
a faraway exotic country, Nichan, Vietnam.

After Mom and Dad go to work,
every day my brother would ask me to make a bongo car
with a bundle of erigeron, and not to forget a watermelon.
He says, "Let's take it to our dark-skinned Grandma"
who is smiling in the picture.

I spit out the black watermelon seeds and plant them in my dreams,
and eat the sliced watermelon until it remains red, red.
Mom says we'll go visit Grandma after we make a lot of money,
and used to hide her tears under the bed sheet at night.

 

 

여기서 망초와 개망초는 19세기 구한말 북미에서 들어온 외래종으로 알려져 있다.

망초는 물망초(勿忘草)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혹자는 이 풀이 들어오고 나라가 망했다며 '亡草'라고 우기지만,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기에 풀 우거질 莽자를 쓰는 '망초(莽草)'가 딱 들어맞는다.  개망초는 망초보다 뒤에 국내에 들어왔는데 먼저 자라고 꽃이 일찍 피어 망초 밭을 개판으로 만든다 하여 '개망초'라 불린다. 서양에서는 이 풀로 빈대를 잡는다 하여 'Fleabane'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꽃 중앙이 노랗고 흰꽃잎이 둘러싼 모습이 마치 계란 후라이를 닮았다 하여 '계란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위 동시에서 형제는 개간지고 묵정밭이고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개망초를 보며 계란 후라이가 아니라 봉고차부터 떠올린다. 두 형제는 논으로 밭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실어나르는 봉고차를 늘상 보아왔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되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일곱 살 동생하고 늘 붙어 다닌다. 매미 소리를 벗삼아 하늘의 뭉게구름을 솜사탕처럼 먹어보기도 하고 개망초의 길다란 줄기를 엮어서 봉고차처럼 만들어 놀기도 한다. 

개망초꽃을 가상(假想) 봉고차의 수륙양용 바퀴로 쓴다면 강과 바다를 건너 단숨에 엄마의 고향 베트남에 당도할 것만 같다.

동생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외할머니에게 선물할 달고 시원한 수박도 한 덩이 꼭 싣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수박 씨를 심어 놓으면 금방 자라서 돈 받고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수박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밤이면 고향이 그리워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 농촌에 가보면 힘든 일은 이주노동자들이 한다. 농촌 총각들과 국제결혼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숫적으로 늘어나면서 농촌 마을의 중추 세력이 되었다고 한다. 전에 미국 이민자들을 '코메리칸'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코시안'(Kosian)이라고 부른다.

 

외래종 망초와 개망초가 산과 들에서 왕성하게 자라난 것을 보았듯이 그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해리 시인이 개망초꽃을 노래한 시는 하나의 해결방안(one of solutions)이 될 수 있을 것 같다.[2]

 

 

개망초꽃  - 이해리

Daisy Fleabane    by Yi Hae-ri

 

모양이나 빛깔이 화려해 보이는 꽃을

아름답다 하는 건 쉬운 일이다

가령, 양귀비나 장미를 아름답다 하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다

해 질 녘 외롭게 버려진 공터 아무렇게 피어

자욱한 안개 물결 이루는 개망초꽃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헤아려 주고 싶다

먼지 쌓인 삼거리 점방

가장 안 팔리는 상품 하나를 사 주고 싶다

가장 인기 없는 가수의 노래를 들어주고 싶다

이름 없는 시인의 시를 읽어 주고 싶다

한 포기만 피면 볼품없고 초라한 꽃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가슴 두근거리도록 한들거리는

초라함이 눈부신 꽃

사람에게도 그 같은 비밀이 있는 것 같아

금방 보면 알 수 없는 어떤 낯익음의 낯설음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흔들리고 싶다

It's so easy to say
flowers that look fancy in shape or color are beautiful.
For example, it's really easy
to call a poppy or rose so beautiful.

At dusk, in a lonely, abandoned lot,
when I see lots of daisy fleabane flowers look like a dense fog,
I want to understand the beauty of something that is not beautiful.
Dropping in a store at the dusty three-way stop,
I want to buy the one thing that doesn't sell.
I want to listen to the least popular singer.
I want to read a poem written by a nameless poet.

A single blossom is an ugly, shabby flower.
But when it's in a bunch, it's heart-pounding
flowers whose shabbiness is dazzling.
I think people have secrets like that too.
I can't recognize the strangeness of a certain familiarity at a glance.
I want to look at it for a long time and sway.

 

Note

1] 여름철 들녘 어디서나 개망초꽃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개망초가 등장하는 시가 적지 않으며 그 중에는 신경림의 "돌 하나, 꽃 한 송이"도 있다.

 

2]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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