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트(The Net, 1995)

Whitman Park 2022. 2. 14. 21:25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보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컴퓨터에 익숙치 못한 나이 든 계층도 컴盲을 면하는 데 그쳐서는 안되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도 수집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1995년 어윈 윙클러 감독이 롭 코완과 함께 만든(컬럼비아 영화사 제작) 테크노 스릴러 영화 <네트(The Net)>는 컴퓨터 통신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비칠지 몰라도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비근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주요 기관의 컴퓨터망에 무단 침입하여 자료를 손상시키는 '해킹'과 소프트웨어 실행 파일의 오류를 일으키고 데이터를 지우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전파가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할 때 크레딧 카드나 전자화폐로써 하는 대금결제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스마트 카드에 각종 인적 사항을 입력시킨 전자주민카드가 자유민주주의 취지에 반하고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가 있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그 시행이 보류되었다. 컴퓨터가 서기 2000년을 식별하지 못하고(이를 'Y2K' 또는 'Millennium Bug'라고 부르고 있음) 오동작을 일으켜 전세계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마비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

이 영화는 국방부 차관이 신체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온 것을 비관하고 워싱턴 근교 포토맥 강변의 헤이네스 포인트 공원에서 권총자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배경의 반쯤 묻힌 사람의 절규하는 모습은 유명한 환경 조각작품 "각성"(The Awakening)임). 뒤 이어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한적한 주택에서 소프트웨어 회사의 재택근무 요원인 안젤라 베넷(산드라 블록 분)이 인터넷을 이용해 채팅을 하고 피자를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여주인공은 사이버 시대의 전형적인 인간상이다. 소프트웨어 제작자가 베타판(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정식 상품화하기 전에 오류를 발견(debugging)하기 위해 공개한 시험판)으로 내놓은 게임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오류를 시정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굳이 회사에 출근할 필요도 없으며 남성들과의 데이트도 인터넷을 통해서 사이버 채팅을 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외출하는 것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면회하기 위해 요양소를 방문할 때 뿐이므로 이웃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하루는 특송우편으로 인터넷 통신용 소프트웨어가 안젤라에게 배달된다. "모차르트의 유령"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인데 연주회(Concert) 항목을 클릭하면 주요기관의 비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이상한 아이콘이 화면 오른쪽 아래 나타난다. 뭔가 프로그램이 잘못 입력된 것이므로 '디버깅'의 필요가 있어 소프트웨어 회사의 동료가 그녀에게 보내온 것이다.

안젤라가 모처럼 멕시코로 휴가를 떠나기로 한 날 비행기를 몰고 찾아오던 동료가 계기고장으로 인한 의문의 추락사를 한다. LA 공항에서도 컴퓨터 고장으로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안젤라가 멕시코 해변에서 노트북을 만지면서 선탠을 하고 있는데 웬 잘생긴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컴퓨터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잭 데블린(영국의 연극배우인 제레미 노덤 분)은 안젤라를 요트로 초대하고 해변을 함께 거닐며 노처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괴한이 그녀의 핸드백을 날치기한다. 괴한을 뒤쫓던 잭은 그로부터 디스켓을 빼앗은 후 그를 소음총으로 처치한다. 실은 잭이 문제의 디스켓을 안젤라로부터 빼앗기 위해 고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잭은 사건을 신고하겠다며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그의 상의 안쪽 호주머니에서 소음총을 발견한 눈치 빠른 안젤라는 그가 무슨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고 요트에서 탈출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안젤라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녀가 묵었던 호텔에서는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음에도 투숙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핸드백을 날치기 당했기 때문에 여권을 새로 만들려고 하지만 미국 영사는 안젤라 베넷 대신 루스 막스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해준다. 컴퓨터 시스템의 고장으로 뉴욕의 주가가 폭락하고, 그녀가 살던 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물로 나와 있다. 그녀의 존재가 컴퓨터 기록에서 깡그리 지워져버린 것이다. 소속회사로 전화를 해보니 그녀의 업무를 감독해 온 상사는 이미 퇴사하였고 엉뚱한 여자가 자신을 안젤라 베넷이라고 밝히며 문제의 디스켓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안젤라는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닥터 챔피언(데니스 밀러 분)에게 도움을 청하고 호텔로 피신한다. 그러나 안젤라의 통화내용은 잭에게 그대로 추적 당하여 그녀에게 도움을 주던 의사마저 페니실린 알레르기로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그녀가 산타모니카 놀이공원으로 채팅 상대방을 만나러 간 사이에 약물사고를 가장하여 살해된다. 병원의 컴퓨터 기록에는 엉뚱하게도 당뇨병 환자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컴퓨터 보안 소프트웨어인 "게이트 키퍼"를 개발한 "프래토리안" 그룹의 제프 그레그가 잭을 비롯한 하수인들과 함께 꾸민 일이었다. 그는 게이트 키퍼가 주요기관에 설치된 것을 기화로 대상기관의 주요 정보를 빼돌려 세계지배의 야욕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니 게이트 키퍼의 도입을 반대하던 국방부차관도 컴퓨터 진료기록을 조작, AIDS 환자로 몰아 자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안젤라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리지만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다. 그녀는 죽은 의사의 차를 타고 가던 중 전과기록이 있는 루스 막스로 오인 받아 그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그녀가 재판을 받기 전에 FBI 요원을 가장한 잭의 동료가 그녀를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와 문제의 디스켓 소재를 캐묻는다.

문제의 디스켓은 이미 멕시코 바닷가에서 햇빛과 바닷물로 훼손되어 버렸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남아 있는 컴퓨터 기록을 찾으러 사무실로 잠입한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거짓 화재신고를 한다. 문제의 소프트웨어를 디스켓에 복사한 다음 가짜 안젤라를 피해 인근 컴퓨터 전시회장으로 가서 법무부에 범죄신고를 하고 문제의 파일을 증거로 제출한 다음 그녀의 뒤를 쫓는 잭 일당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감상의 포인트

<네트>는 법률영화는 아니다. 여주인공이 인터넷을 통해 법무부에 범죄신고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이버 시대에는 증거도 컴퓨터 파일로 제출(이메일에서는 이를 'attachment'라 함)하는 범죄신고 요령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맞춰 법제도 또는 이를 운영하는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여러 각도에서 시사하고 있다.

우선 정보화 시대 정부의 역할이 전자상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법제의 정비 등 인프라 구축에 그쳐야 하는지,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의 개인적인 정보까지 관리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게이트 키퍼라는 통신보안 소프트웨어의 제작자가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해 개인의 컴퓨터 기록을 말소하는가 하면 범죄를 날조해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 컴퓨터 기록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경찰이든 병원이든 금융기관이든 누군가가 이를 조작·오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간업자 대신 정부에 컴퓨터 정보의 관리를 맡길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것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기관(Big Brother)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이를 악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74년 사생활보호법(Privacy Act of 1974)이 제정되어 정부기관이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규율하는 한편 당초 목적 외의 정보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민등록, 범죄기록, 부동산보유 현황은 경찰청, 국세청 등의 국가기관이 관리하고 본래의 목적 이외의 정보이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의료정보, 신용정보, 금융거래 상황 등은 정보의 생산자가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그 업무 목적외 정보의 누설을 통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예컨대 개인의 신용정보를 목적 외로 유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구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28조 및 32조). 몇 해전에는 백화점 고객들의 물품 구매현황이 기록된 컴퓨터 인쇄물이 외부에 외출되어 큰 물의를 빚은 적도 있었다.

이 영화에서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의 예방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하여 전자상거래 및 전자결제는 대부분 암호화된 데이터로 이루어진다. 사기, 탈세, 돈 세탁(money laundering)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암호의 수출규제, 키 에스크로(암호열쇠의 예탁) 제도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경우 우리나라 전자주민카드의 예에서 보듯이 프라이버시 보호상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대처하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이 전세계적인 오픈 네트워크가 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느 한 나라에서만 법적으로 정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기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법제도 측면에서도 상호협조 내지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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