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보았다.그리고 뜬금없이 가곡 '바위고개'가 생각 났다.
영화가 끝났을 때 객석에서 느닷없이 박수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에서 기다리던 님
7080세대는 어렸을 적에 인자한 모습의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집에서, 학교에서 늘상 보았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박수를 친 어르신들이 마치 고개 위에 숨어서 님을 기다렸던 비련의 女주인공처럼 여겨진 것이다.
바위고개 - 이서향 작사[1] 이흥렬 작곡
Rocky Pass composed by Lee Heung-ryeol
바위고개[2]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납니다
While crossing the rocky pass alone,
I'm crying because I miss my old lover.
I was waiting for him while hiding above the pass.
I miss him, miss him, and I'm crying.
Azalea flowers blooming at the rocky hill
Are the one that my old lover used to pick for me.
Tho' he is gone, those flowers are in full bloom.
Even tho' he's gone, they've bloomed well.
While crossing the rocky pass alone,
I'm at a loss because I miss my old lover so much.
I'm so sad to hear that he had to work for hire for a decade.
I'm crying while holding azalea flowers.
이승만 박사의 공과(功過)
다큐 영화의 주인공 이승만 박사가 과연 '바위고개'의 옛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노래가 애창되었던 1930년대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도 옛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국이 국권을 상실하자 이를 되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 광복 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들 말이다.
구한말 열강의 야욕 앞에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생각하며 프린스턴 대에서 공부를 하던 청년 이승만은 우국충정의 걱정에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마침 프린스턴 대 교수이던 우드로 윌슨이 미국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하여, 다시 말해서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조국의 광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 길이 바위 투성이 고갯길처럼 험난했지만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는 동포들을 생각하며 불철주야 조국 광복을 위해 힘섰다.
그러나 조국은 주권을 잃은 뒤였으므로 그가 미국과 중국, 하와이, 유럽을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벌인 것은 자기 일을 할 수 없는 '머슴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꽃, 봄철이 되면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는 분홍색 '진달래꽃'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상징이었다.
그런 진달래 꽃다발을 옛님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을 한 후에야 가능했다.
그러니 일제 강점 하의 조국 동포들은 바위고개 위에서 옛님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위고개'의 가사를 〈건국전쟁〉 영화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새롭게 이해가 되었다.
진달래꽃도 꺾어줄 만큼 다정하던 사람이 왜 일찍 떠났을까?
10여 년간 머슴살이를 해야 할 정도로 그는 무능했나? 아니면 누적된 빚이 많았나?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라도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왜 그는 존경받을 권리와 자격을 누리지 못하고 뒤에 남은 사람들이 눈물 짓게 만들었는가?
지금까지 功은 덮고 過만 부각
조국 광복 후에 이승만 박사는 나름대로 잘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 수습, 정부 수립 과정, 토지개혁, 한국 전쟁의 수행, 반공포로 석방, 한미 동맹관계의 수립, 평화선 선포 등 그의 판단은 옳았고 국가 장래를 내나본 현명한 처사였다.
그러나 1954년 말 사사오입 개헌을 한 이래 집권 후반기로 갈 수록 그의 판단력은 흐려지기 일쑤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왜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처럼 대통령을 두 번만 하고 물러나지 않고 노욕을 부리다가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하였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평생 쌓아올린 명성과 위업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린 게 아닐까!
그러니 그의 사후 60년이 지나서야 온 국민들에게 빌듯이 권리와 명예를 되찾는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라고 한다면 이승만 박사도 과오가 많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만든 건국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강대국을 움직여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였던 외교의 신(神)이었고,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제일로 내세우고 사심 없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였던 위대한 정치인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박사에 관한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을 놓고 부당한 의혹을 씻어줄 방안을 널리 강구했어야 했다.
1970년대 이후 중동 건설수출과 원자력 산업의 발전은 이 박사가 어느 정도 국제정치적 기반을 닦아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위고개' 가사처럼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진달래꽃을 안고서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니다.
그것은 1960년대 우리나라에 절대 부족한 외화(임금)를 벌기 위해 서독에 파송되었던 광부ㆍ간호사의 눈물로 족하기 때문이다.
앞 세대가 피땀 흘려가며 돈 벌러 갔던 그 나라에서 잘 생긴 우리 젊은이들이 춤과 노래와 연기로 그 나라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질 좋은 한국 상품을 팔고 있는 것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Note
1] 바위고개는 일본에 유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한 이흥렬(1909~1980)이 당시 중학생이던 이서향이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다. "10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란 가사는 일제 치하에세 우리 민족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일종의 애국가요처럼 불려졌다고 한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피난민과 이산가족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많이 애창되었다.
그런데 작사자인 이서향이 월북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작사자 작곡자가 이흥렬도 표기되었다.
2] 노래 제목의 바위고개가 어딘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서울 우이동에 있는 오봉 아래의 소귀고개(우이령)가 맞다며 그곳에 이흥렬의 '바위고개' 시비(詩碑, 위의 사진)가 세워지기도 했다.
작곡자 이흥렬은 그의 생전에 일제강점기 하에서 한반도의 모든 고개가 바위고개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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