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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 없는 계절의 순행

Whitman Park 2023. 9. 13. 17:30

더위가 수그러들지 않은 채 처서가 지났다.

9월 백로는 선선한 날씨를 예고하는 절기임에도 낮에는 여전히 30℃가 넘는 늦더위가 계속되었다. 이젠 기상이변을 탓하기보다 지구열화(Earth boiling)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9월이 중순에 접어드니 귀뚜라미 소리도 요란하고, 밤에는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어와 창문을 닫아야 했다.

 

* 고창의 람사르 습지 운곡 저수지

 

늦 팔월의 아침  - 김영남

A Late August Morning  by Kim Young-nam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알고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잠깐 머물다
금새 떠날 것을 알면서도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을 치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고 정색을 하며
가을을 반기겠지

It's hot, so hot.
Even if I don't push summer to go away,
the summer knows when to stay and when to leave,
and has already prepared for parting.

It would stay for a while.
Even though we know it will leave soon,
we were shouting in a hysterical frenzy.
We've changed our face, asking when we did that,
and we'll welcome the autumn.

 

짧디 짧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마치 가을이 영원히 있어 줄 것처럼 칭찬하다가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고

 

어느 샌가 입김 호호 불면서
또다시 추위를 나무라며
문지방 너머 목 길게 빼고
봄이 오기를 마냥 기다릴 거다

Before we can even feel the short autumn mood
without knowing that it will disappear like a shadow,
we praise autumn as if it would stay forever.
I don't even know when it left.

 

Suddenly, while breathing warm air to our hands,
and blaming the cold again,
we'll look forward over the threshold
to seeing spring come.

 

그러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투덜거려도 보고
용기 없어 하지 못했던 것에
미련도 되씹어 보며

 

커다란 나이테 하나를
또 끙끙 둘러메고 앉아

 

문밖 건너 진달래 붉은 향기
가슴에 밀려들면
혹 서러워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And we used to say
we're only getting older,
or we would complain that time flies too fast.
To what we couldn't do because of little courage,
we look back at our regrets.


Like one big growth ring of a tree,
we sit around another grunt.


When the red scent of azalea across the door
flows into my heart,
maybe I'll shed a tear of sadness.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나 말고
어여 오라고 손짓이나 말지


그냥 혼자 조용히 흐르는 세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만큼
가만히 놓아두고 때를 즐기며

덥던 춥던 깃털처럼 가볍게
하루 또 하루를 즐겨 살아주면
그것이 행복이고 참살이가 아니련가?

Don't hope it passes so quickly,
nor wave at the season to come over.


Just let the years flow by alone and quietly.
Come as it comes, go as it goes,
Leave it alone and enjoy the time.

Hot or cold, light as a feather,
If we enjoy another day and another day,
Isn't that happiness and well being?

 

망개 열매를 따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데
지금 살아 숨쉬고 머무는 여기 산천이
천국이고 낙원이 아니면
그 어드메가 무릉이고 도원인가?

 

창너머 수세미 꽃에 벌이 드나드는
늦팔월의 아침이다

Even if we live to eat the Manggae fruits,
this life on earth seems much better.
Isn't this mountain area where we breathe and stay
a heaven or paradise?
Otherwise, where is the so-called paradise?

It's a morning when bees come and go from flowers beyond the window.
It's a late August morning.

 

* 피서객이 모두 떠난 변산반도 격포 해수욕장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난관을 무릅쓰고 점프하려는 기백이다.

 

위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어쩌면 지금 우리의 처지를 이와 같이 잘 묘사했을까[1] 경탄하며 무릎을 쳤다.

그래서 의미와 맥락으로 보아 다섯 단락으로 구분한 다음 영어로 번역해 보았다.[2]

늦더위에 푸념하던(1,2연) 시인은 이내 가을이 오고 겨울이 닥칠 것(3,4연)을 알고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5~7연). 그러다가 조용히 흐르는 세월, 때를 즐기며 하루 하루를 살자고 다짐한다(8,9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임을 깨닫고 나니 꽃이 지기 전에 열심히 꿀을 따는 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10,11연)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구열화(地球熱化) 현상이 기정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그저 하루 하루를 즐긴다며 시원한 계곡이나 해변으로 한 번 더 피서를 떠나자 하면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집을 떠난 사람들과 고속도로 통행량만 증가시킬 뿐이다.

이번 여름의 특징이 장마가 길고 강수량도 많았으며, 폭염과 열대야가 오래 지속되고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1℃ 높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러한 만큼 앞으로 이사할 집을 구하거나 국내외 여행을 계획할 때 반드시 고려할 사항이 늘어난 셈이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서 열대성 폭풍의 위력이 더 강해졌다고 하니 여름철에 수변(水邊) 지역이나 태풍 다발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 되었다. 풍수해로 인한 정전에 대비하여 뷰(view)가 좋다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그밖에도 장기적 안목으로 어느 산업분야에 수요가 몰릴지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시인은 (빈천하게) 망개 열매를 따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3]고 말했다. 이와 같이 현실 인식을 제대로, 그것도 생산적으로 한다면 꿀벌이 열심히 채밀(採蜜)하는 것을 거울 삼아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돈벌이 아이디어가 떠오를 법 하지 않겠는가!

 

달력 넘기면 여름 더위도 끝
또 그리워질까

엘니뇨도 계절순행의 이치
막을 순 없어라

Come September, summer is gone.
Can I miss the season still more?

Truly, powerful El Niño can’t suspend
the change of the season.

 

⇒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Note

1] 위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 한 편의 알레고리(allegory)가 아닌가 느껴졌다.

그저 4계절의 순행(順行)을 이야기한 듯 싶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판에 대입해 보면 모모(某某) 정치인들의 언행이 선연하게 연상되었다. 가슴을 치게 만든 구절은 "용기 없어 하지 못했던 것에 미련도 되씹어 보며"였는데 우리 같이 나이 많은 서민들이야 '여론'의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고 '선거'를 통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고창과 부안으로 가을 들녘을 보러 갔을 때 양떼 목장에서 목격했던 어느 용감한 양(위의 맨아래 사진)의 행동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시인이 강조했듯이 "지금 살아 숨쉬고 머무는 여기 산천이 천국이고 낙원"이 되려면 거짓과 내로남불은 사전(辭典)에만 들어있고 자유민주주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우리 자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2]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너무 길고 어려워 영어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에 밝힌 바 있거니와 금년 3월부터는 KoreanLII와 블로그의 영문 번역은 일차적으로 DeepL, Papago 같은 인공지능 번역기에 맡기고 있다.

주어, 술어가 불분명한 우리 시의 특성 상 제 아무리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많이 한 고성능 AI라 해도 그 번역 결과물은 50~60% 밖에 건지질 못한다. 그러나 난해한 한국의 시를 불과 몇 초 만에 뚝딱 번역해 내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Papago가 아무리 한국어로 된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을 많이 했을지라도 "문지방 너머 목 길게 빼고", 특히 독일의 DeepL은 "그 어드메가 무릉이고 도원인가"에서 어드메를 지명 Adme로 해석하는 등 완전 헤메는 것을 보았다.

 

3] "망개열매를 따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 말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우리에겐 더 익숙하다.
'망개나무'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황색꽃이 6월에 피며, 열매는 타원형으로 8월에 붉게 익는다. 충청북도 속리산, 화양동계곡, 경상남도 주왕산 등지에서 자라는 희귀식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옛날 많이 먹었던 '망개떡'은 망개 열매로 만드는 게 아니라 떡을 찔 때 나무잎으로 싸서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망개나무잎이 아니라 청미래덩굴(Smilax china L.)의 잎인데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에서는 이것을 망개나무로 혼동하여 부르고 있다. 참고: 김상문, 네이버블로그 한사람 시와 마음. 202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