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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을 읽다가 龍湖를 떠올리다

Whitman Park 2023. 11. 1. 06:01

나에게 새벽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새벽에 배달되는 조간 신문을 읽는 것으로 모닝 루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은퇴 후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는 외부 정보의 대부분을 신문에 의존했던 터라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관 앞에 놓인 조간 신문부터 집어들게 된다.

제1면이 정치면이니 아무리 정치에 관심을 끊으려 해도 국내 정치 헤드라인부터 읽게 된다.

 

11월의 첫 날 1면을 훑어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작년과 달리 낮은 자세로 협조 요청을 했다는 기사가 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에게는 "부탁드립니다" 먼저 손 내밀고 하루 3차례 악수를 나누었다며 두 사람이 악수하는 사진도 실려 있었다.

며칠 전 카톡방 친구 소개로 읽었던 한시(漢詩)가 생각났다.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꼽혔던 김득신(栢谷 金得臣, 1604~1684)이 지은 '용호(龍湖)'라는 제목의 시로 가을비 내린 후 용산에서 한강을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호(龍潭湖 )의 가을 풍경. 사진출처: 국민일보

 

龍湖 - 栢谷 金得臣

      용산에서 - 백곡 김득신

At Yongsan   by Kim Deuk-shin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고목은 차가운 구름 속에 가려 있고

   가을 산자락에 희뿌연 빗줄기가 뿌리네

   저물녘에 강물에서 풍랑이 일어나니

   고기잡는 어부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는구나

The old trees are shrouded in cold clouds.

Autumn hills are sprinkled with white rain.

At dusk, a storm rises in the river.

The fisherman turns his boat in haste.

 

넉 줄의 오언절구(五言絶句)로 비 내린 후의 한강 풍경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해 놓았다.

강둑 위에는 몇 그루의 고목(늙은 나무라기보다 큰 나무라는 뜻)이 서 있는데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있어 하늘의 구름과 함께 계절의 찬 기운이 느껴진다. 멀리 가을빛이 짙어가는 산자락에는 비가 내리는지 뿌옇게 보인다.

날이 저물고 있는데 한강에서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자 고기를 잡던 어부가 서둘러 어구를 치우고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고목과 가을산은 움직이지 않는 배경이다. 그런데 가까이 강물 위에서 풍랑이 일자 어부가 뱃머리를 돌리는 품이 점차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보는 이, 그러니까 시를 읽는 이까지도 귀가를 서둘러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영어로 옮기느라 몇 차례 되풀이 읽는 동안 한편의 알레고리(allegory)라 할까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시 제목도 '용산에서'가 아니던가!

작년 대선 이후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지구 곳곳에서 기후재난이 일어남에도 국내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에서는 도대체 속시원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했다. 그러자 그동안 고압적이라는 말을 듣던 尹 대통령이 자세를 낮추고 민생을 적극적으로 챙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김득신의 시가 묘사하는 풍경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김득신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진주목사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부친도 경상관찰사를 지낸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런데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머리가 둔한 편이어서 59세 되어서야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시문과 가전소설(假傳小說: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소설 환백장군전, 청풍선생전 등) 같은 글을 많이 남겼다. 그는 사마천 사기의 백이열전을 11만회 읽었다 할 정도로 한 가지 책을 1만 번 이상 읽은 다독가로서 유명했다. 위에 소개한 '용호'라는 시는 효종(孝宗) 임금까지도 감탄했을 정도로 당시 인구에 회자(人口 膾炙)되던 백곡의 대표작이었다.

 

* 사진출처: 베이비뉴스

 

다산 정약용이 당대 으뜸가는 시인이라고 칭송했던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오언절구도 생각난다. 그는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조카로 성호학파의 대표적 문인이었는데,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어도 문단의 영수로 통했다고 한다. 다산이 말했다. "이용휴가 몸은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를 이르는 말)로 있었으나 문원(文苑)의 권(權)을 잡은 것이 삼십여년이었다."

이용휴가 연천사또로 가는 신광수를 전송하며 읊었다는 오언절구를 읽어보았다.

 

嬰兒喃喃語

其母皆能知

至誠苟如此

荒政豈難為

   어린아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그 어미라면 다 알아듣는 법

   지극정성이 정말 이와 같다면

   흉년에 정치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Though a baby is babbling,
Its mother has no problem to understand.
If the sincere consideration by politicians is like this,
What's so hard about politics in a bad year?

 

 

⇒ 우리의 아름다운 시가(詩歌)와 전통시를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이용휴의 또 다른 한시 "문주 사또로 가는 김조윤을 전송하며"를 영어로 옮긴 것은  이곳을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