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 35

배롱나무와 연꽃

2023년 8월 교회 공동체 아웃리치 행사로 찾아간 부여는 두고두고 배롱나무 꽃과 궁남지 연꽃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마치 지난 봄 프랑스 여행이 모네 정원에서 본 등나무 꽃과 색색깔의 튤립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이 수도권과 충청도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떠난 탓에 부여 부소산에는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 부소산성 공원 경내는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우리는 입장하기 전에 우선 단체사진부터 찍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에 붉은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젯밤 묵었던 숙소의 정원에는 흰 배롱나무 꽃이 있었는데 역시 배롱나무는 진붉은 색이 제격이랄까? 비유하자면 붉은 배롱나무 꽃이 충절의 ..

Talks 2023.08.14

코시안 소년의 개망초 소원

국내외 詩를 소개하는 '한사람 시와 마음' 블로거 친구가 보내준 동시 "개망초 봉고"를 읽고 가슴이 울컥해졌다. 시인처럼 나 역시 엄마가 베트남에서 한국에 시집 온 다문화 가정의 한 소년으로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요즘은 동남 아시아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를 '코시안(KOrean aSIAN)'으로 부른다고 한다. 여름철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망초[1] 꽃을 꺾어 계란처럼 생긴 꽃은 바퀴로, 길다란 줄기는 차체로 삼아 봉고차를 만들어 동생과 같이 논다. 그런데 그 봉고차는 개울을 건너 바다를 건너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엄마의 고향 니짱(=나트랑, Nha Trang) 에 가서 피부가 까만 외할머니를 뵙고 시원한 수박을 한 덩이 선물하기로 한다. 그러면 돈을 많이 모아서 베트남 고..

Talks 2023.07.05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

정부가 코로나 위기상황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했을 때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잠시 행복을 느꼈다. 날도 더워지는데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 전 아내가 심한 기침 감기를 앓았다.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거의 잠겨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기를 여러 날, 마침내 목소리가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전에는 몰랐던 기쁨을 느꼈다. 나 역시 건강검진을 위해 며칠 금식을 하면서 생수 한 모금의 고마움을 절실히 깨달은 바 있다. 이런 일을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 별것 아닌 것,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알았던 일상(日常)의 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매일같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

Talks 2023.06.26

챗GPT와 운명론

어느날 잠자리에 누워 애써 잠을 청하던 중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는가, 이것이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영어로 번역[1]하기에 앞서 질문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챗GPT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할까? 1. 동서고금 인간의 지식과 지식을 통틀어 운명이란 과연 존재한다고 보는가? 이를테면 태어난 시간에 따라 무슨 에너지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작용한다는 것인가? 2. 운명론을 떠나 어떤 사람이 누구를 부모로 하여 그곳, 그 시간에 태어난 것이 오로지 그가 짊어져야 할 그만의 책임인가? 이것을 누가 결정하고 지배한다고 보는가? 3. 동양 특히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태어난 시각(생일생시)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음양오행에 기초한 사주팔자를 ..

Talks 2023.03.05

AI가 좁혀주는 법률가와 시인의 거리

오늘 블로그의 주제는 심리학의 이슈가 아니다. 12년째를 맞은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에 우리의 아름다운 시를 번역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콘텐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해외에도 자랑하고 싶은 우리의 서정시와 가곡의 가사를 영역하는 데서 출발했다가 K팝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면서 그밖의 유행가 가사와 민요, 동시에까지 손을 뻗쳤다. 이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지금은 양적으로 시집 몇 권의 분량에 이르렀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향가와 같은 시가(詩歌)를 담고 있어서 국보(National Treasure)가 된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줄곧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외도(外道)를 한 것 같은 자격지심(自激之心)에 다음과 같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1. 일반적으로 말해서 法과 詩는 어..

Talks 2023.02.17

AI의 사고 능력과 도덕 수준

은퇴 후에 굳이 시간에 매인 생활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일정한 모닝 루틴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대를 놓침으로써, 이를테면 헬스 운동이나 아침 산책을 거르게 되면, 마치 숙제 안한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찜찜해진다. 그때 마침 FM 방송에서 이런 말(名言)을 들었다. 첫 술에 배부르기를 꿈꿔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사고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이를 통해 생각과 감정, 행동 다스리는 능력을 키우면 우리의 행동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영국의 과학 작가인 데이비드 롭슨(David Robson)이 '인간의 의지력'에 대해 쓴 글의 한 부분이다. 롭슨에 의하면 그 동안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의지를 일종의 배터리 같다고 판단했었다. 많이 쓰면 쓴 만큼 고갈되고 비워진다는 거다...

Talks 2023.02.02

미련이 많은 미련퉁이

작년 11월 분변검사 결과 대장암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소견이 나와서 동네 가까운 병원에 예약을 하러 갔다. 평소 혈압약과 함께 복용하는 어린이 아스피린을 며칠 전부터 끊고 갔는데 대장내시경 검사 사흘 전부터는 삼가야 할 음식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한 마디로 내시경 검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섬유질이 많은 채소류와 잡곡, 해조류, 씨있는 과일, 견과류 등이다. 이틀 후에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어제부터 식이조절을 했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김치와 견과류 외에는 딱히 문제될 만한 게 없어 13일 금요일 아침으로 예약을 했다. 주말에는 식사 약속이 잡혀 있는 점도 고려했다. 또한 금년은 홀수 해로 위장 내시경검사도 예정되어 있던 터라 진정(수면) 대장 내시경검사를 할 때 동시에 위 내시경검사까지 받기로 하니 모..

Talks 2023.01.14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우리의 삶

며칠 전 친구로부터 시대가 바뀌었음을 실감케 하는 사진과 만평을 받아보고 "과연 그렇구나" 무릎을 쳤다. 아래 소개한 스마트폰 말고도 TV와 PC 모니터가 얇아진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몸은 비대해진 것, 학원내 총기사고와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태도, 성평등 의식의 제고, 태투의 성행 등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 것을 비교 적시한 내용이었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이어서 설명과 함께 내 코멘트를 곁들여 기왕이면 저작권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영문으로 작성했다. 그러나 블로그의 영문기사와 일러스트레이션은 흥미로운 내용임에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반면 필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에는 Smartphone 항목이 따로 없었기에 블로그의 영문 기사를 통째로 옮겨 Korea..

Talks 2023.01.07

吾唯知足: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현대인은 여간해서는 만족할 줄 모른다. 지난 주말 일본에 온천 여행을 다닐 때에도 비행기 연발에 대해,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에 대해, 투숙한 료칸이 이름난 유황온천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크고작은 불평불만의 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연락선이 아닌 제트여객기를 타고, 또 도보나 마차가 아닌 리무진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녔던가! 동네 목욕탕에만 가도 좋았는데 이젠 수질이 좋고 약효가 있는 온천에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을 찾기에 이르렀다. 김상문 친구가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사자성어와 함께 그 말의 유래, 관련 한시(漢詩)를 소개했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을 풀어서 보면 네 글자에 모두 입 구(口) 자가 들어 있다. 입 구(口)를 가운데 쓰고 상우좌하(上右左下)에 다섯 五(오), 새 隹(..

Talks 2022.12.03